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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지난 2주 동안, WBC가 거의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 온갖 환경이 모두 악화되어가는 가운데서도 연일 승전보를 터뜨려 주는 김인식사단이야말로 온 국민의 영웅 칭호를 받을만 한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위대한 승리는 승리 그 자체보다 장면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1회 WBC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미국과의 대결, 이승엽을 고의 4구로 거르는 메이저리그 투수의 모습이었습니다. 전화를 걸어서 사방에 얘기하고 싶은 장면이더군요. "이봐, 지금 봤어? 미국이 한국에게 지지 않으려고 이승엽을 고의 4구로 거르고 있다고!"

이런 감동적인 장면은 매일 봐도 좋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장면을 다시 보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런 대회만 거치고 나면 일본과 한국의 야구 환경 비교, 저변의 부족 등등이 시리즈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팬들은 할 일이 없을까요? 그래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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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저변'은 공짜가 아니다

하라 다쓰노리. 현역 시절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붙박이 4번 타자. 미남형 얼굴과 호쾌한 홈런포를 장착한 80년대 일본 프로야구 최고 스타 중 한명. 감독 데뷔 후에는 거인군을 세 차례나 센트럴리그 1위에 올려놓은 명장.

현대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얼굴' 중 하나인 하라 감독의 얼굴에 이럴 수가 없다는 당혹이 스쳤다. 지난 24일 열린 WBC 결승 9회말, 2사 1,2루에서 이범호의 좌전적시타가 터져 스코어가 다시 3-3 동점으로 돌아갔을 때였다. '이렇게 또 한국에게 당하는구나' 하는 심정을 그대로 대변해 주는 듯 했다.

이런 표정을 끌어낸 것만으로도 한국 야구는 제몫을 했다. 결과는 한국의 석패로 끝났지만 '져도 이렇게만 지라'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한국은 불타는 투지로 한사코 달아나려는 일본을 옭아맸다. 하지만 전력차는 분명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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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국이 따르지 못할 두터움을 갖고 있었고, 상대 전력을 분석하는 힘에서도 한 수 위였다. 일본을 상대로 세번째 등판하는 봉중근의 구질이 분석됐을 거란 사실은 한국 코칭스태프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외의 대안은 없었다. 마쓰자카가 안되면 다르빗슈, 그래도 안되면 이와쿠마가 나오는 일본과는 달랐다.

이런 두터움의 차이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 모르는 야구 팬은 없다. 그건 바로 저변의 차이다. 일본의 고교 야구 팀 수는 한국의 80배다. 동네마다 어린이들도 뛸 수 있는 야구장이 있다. 반면 출범 28년째의 한국 프로야구는 여전히 흑자 구단 하나를 내놓지 못했고, 고교야구와 유소년 야구 팀은 날로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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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저변을 말할 때마다 흔히 간과되는 사실이 있다. 바로 저변에는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물론 정부나 기업의 투자도 필요하지만, 팬들의 사랑 없는 생존은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는 식물인간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돔 구장 하나 없는 한국 야구가 이만치 성장한 데에는 자기 돈으로 표를 사서 경기장을 찾은 수많은 관객의 투자가 절대적인 힘이 됐다.

한데 가끔 공짜로 성과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교야구가 열리는 경기장은 텅텅 비는데도 프로 야구의 젖줄인 학원 야구가 융성하기를 바라는 건 꿈일 뿐이다. 생전 콘서트 장 한번 가지 않고 음반 한 장 사지 않으면서 세계 수준의 싱어송라이터가 나오길 바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서편제'나 '쉬리'에 한국 관객들의 사랑이 몰리지 않았다면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대작들의 출현은 감히 꿈꿀 수 없었을 것이다.

스포츠건 대중문화건 스타들은 팬들의 사랑과 투자를 받아 자란다. 한국인의 유전자가 아무리 우수하다 한들 김연아와 박태환의 기적은 매번 일어나지 않는다. 스타의 출현을 기대한다면, 2013년 WBC의 우승을 꿈꾼다면 '팬으로서의 투자'를 시작하자. 기업이나 정부는 절로 따라올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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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WBC가 끝나고 수많은 '앞으로 할 일' '일본을 넘어 정상에 서려면' 시리즈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의 고교야구 팀 수가 4천개가 넘고 한국은 60개도 안 되는데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는 아마 요즘 너무 많이 들어서 신물이 나실 겁니다. (물론 '야구 직업훈련원'화 되어 있는 한국의 고교야구가 일본의 고교야구만큼 건강하냐...는 것은 다른 얘기가 될 겁니다. 이런 얘기는 나중에 다른 기회에.)

혹시 관심있는 분은 2006년 WBC를 마쳤을 때 나왔던 이런 시리즈들을 찾아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과연 그 중 바뀐 내용이 얼마나 있는지도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거의 똑같은 내용이 반복되고 있을 겁니다.

정부든, 기업이든, 투자는 이익이 있을 때 이뤄집니다. 지금까지의 야구에 대한 투자는 '모기업의 홈보'라는 차원에서만 이뤄져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선 팬들의 사랑이 아직 부족했는지도 모릅니다.

한마디로 야구건, 축구건, 한국 스포츠가 최정상에 오르는 데 공짜는 없다는 겁니다. 김연아나 박태환도 물론 개인적으로는 공짜가 아니었지만, 팬들의 입장에선 어느날 맞아 떨어진 로또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런 천재들이 잇달아 나타나기를 기대하지 말고, 팬들도 팬들로서의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온 국민이 보여주는 사랑이 시즌 내내 계속된다면, 무슨 변화가 있어도 있지 않을까요. 8개 구단 중 가장 팬들의 사랑이 뜨거운 걸로 유명한 롯데에서부터 흑자 구단의 기미가 슬슬 보이는 걸 보면 말입니다. 하고 싶은 얘기는 참 많습니다만, 여러가지 사정상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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