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꽃보다 남자'가 끝난 뒤 MBC TV '내조의 여왕'이 월-화요일 밤의 강자로 부각되면서 KBS 2TV '미녀들의 수다'가 MBC TV '놀러와'에 밀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큰 차이는 아니지만, 아무튼 바로 앞서 방송되는 드라마의 시청률이 11시대 예능 프로그램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시청률 1, 2%를 떠나서 '미수다'는 '놀러와'나 '야심만만 2'와 비교할 수 없는 프로그램입니다. '글로벌 토크쇼'라는 자체 슬로건은 지금까지는 약간 과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전까지 없었던, 그리고 앞으로 생겨날 프로그램들의 전범이 될 토크쇼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 '놀러와' 든, '야심만만 2'든, '야심만만'이든, 그 전까지 수없이 명멸했던 수많은 연예인 출연 토크쇼들과 다를 것도 없습니다. 이건 '해피투게더'도, '샴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별다른 의미도 없습니다. 하지만 '미수다'에는 이들과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20일 방송을 보다가 생각난 겁니다.
제목: 태국에선 왜 월요일에 노란 색을 입어야 할까?
20일 밤 방송된 KBS 2TV '미녀들의 수다'에서 문득 귀를 잡아 끄는 발언이 있었다. 태국 미녀 차녹난이 "태국에서는 월요일마다 노란 옷을 입는다"고 말한 것이다. 얼마나 자세히 설명을 하려나 봤지만 뒤의 설명은 편집됐는지 보이지 않았다.
사실 태국과 색깔 이야기는 실제 상황이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태국 정국을 좌우한 색깔이 바로 노란 색과 붉은 색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태국의 시위 세력은 노란 옷을 입었다. 반면 최근까지 열기가 뜨거웠던 시위대는 한국의 붉은 악마 응원단을 연상시키는 빨간 옷차림이었다. 대체 빨간 색과 노란 색이 무슨 원수가 졌길래?
이건 태국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지 못하면 얘기가 안 된다. 태국인들은 본래 색깔에 민감하다. 심지어 요일마다 모두 고유색이 정해져 있다. 월요일은 노란 색, 화요일은 분홍색, 수요일은 녹색, 목요일은 오렌지색, 금요일은 파란색, 토요일은 보라색, 일요일은 붉은색이다.
어떤 요일에도 장례식이 아니면 검은색은 기피색이다. 해외의 유명 가이드북들은 "토요일에 보라색 옷을 입은 태국 사람을 만나면 패션 감각을 칭찬하라. 그러면 당신은 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은 훌륭한 이방인으로 존경받을 것이다"라고 권장하고 있다.
지난해 시위 세력이 노란 옷을 입은 것은 푸미폰 국왕을 지지하는 세력이기 때문. 월요일에 태어난 국왕의 상징색은 노란 색이고, 같은 이유로 현 왕비의 상징색은 파란색이라는 것이다.
물론 탁신 전 총리를 지지하는 최근의 시위자들이 붉은 색 옷을 입은 것은 이 요일색과는 관련이 없다. 그렇다고 사회주의자들인 것도 아니다. 그저 붉은 색이 가진 '개혁과 저항'의 의미를 높이 샀다는 설명이다.
이런 설명이 왜 편집됐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20일의 '미수다'는 평소보다 훨씬 신선했다. 왜일까. 늘 비슷비슷하게 반복되는 미녀들의 한국 생활 경험, 한국 사람들과 한국 연예인들에 대한 칭찬을 벗어나 미녀들이 '자기 문화'에 대해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핀란드에서는 닭다리보다 가슴살이 훨씬 인기 있는 부위라는 것, 일본에서는 잘생긴 남자를 개와 비교한다는 것, 반면 태국에서는 못생긴 여자를 말에 비교한다는 것, 러시아에서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곡절 많은 인생'을 뜻한다는 것 등 현지인들이 아니고서는 알기 힘든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늘 조금씩 시도되고 있지만, '미수다'라는 프로그램의 진정한 존재 이유는 이해와 소통이다. 금발 미녀가 웃으며 얘기하는 "한국 사람들 너무 친절하구요, 비빔밥 너무 맛있어요.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에 만족하기에는 이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문화적인 잠재력이 너무 아쉽다. 이방인들이 본 한국의 모습을 넘어, 한국인들이 이방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채널로서 '미수다'의 역할이 더욱 커지기를 기대한다. (끝)
(구별이 되십니까?^^)
태국에 가 있는 사람들의 말로는 '태국 사람 치고 요일마다 상징색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 깨지고 있는 것은 검은 색에 대한 금기입니다. 본래 태국에서 검은 색은 '장례식 외에는 입지 말라'는 색이라는군요.
그런데 세계적인 유행과 함께 젊은 층에게 검은 색은 요일과 무관하게 패셔너블한 색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개성을 뽐내기 좋아하는 젊은이들에게 모든 요일마다 모든 사람이 비슷한 색의 옷을 입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겠죠.
사실 저만 해도 태국의 노란색 시위대와 붉은색 시위대의 의미를 안 건 최근 일입니다. 무심코 태국 시위대의 모습을 보다가 '이건 뭐 붉은악마 사진이랑 구별이 안 되겠네'하고 생각하고 궁금증을 느껴서 찾아 본 결과입니다. 그 전까지는 오래 전 무협지에서 본 포달랍궁(布達拉宮, 포탈라 궁의 한문 표기)과 홍모파-황모파의 대결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20일 방송에서 좀 더 노란 옷의 의미를 자세히 소개해 주지 않은 건 좀 아쉽습니다.
(홍모파와 황모파는 모두 티벳 역사에 실제로 존재합니다. 기존의 홍모파에 맞서 달라이 라마를 앞세운 종교개혁을 주장한 세력이 황모파였죠.)
일전에 한번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 출연자가 "한국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한국에 대해 조금만 비판적인 얘기를 해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MC 남희석은 "미국 사람들은 안 그런가요?"하고 물었죠. 미국 출신 출연자들은 "미국 사람들은 대개 나라는 나라, 나는 나라고 생각한다"는 대답이 나오더군요. 그 자리에서 MC 남이 방청객들에게 미국의 안 좋은 점이 어떤 게 있냐고 물었습니다.
방청객 1: 너무 돈으로 세계를 좌우하려는 것 같다.
출연자 1: 맞아요. 제가 보기에도 안 좋아요.
방청객 2: 큰 나라라고 너무 작은 나라를 무시한다.
출연자 1: 맞아요. 나쁜 점이에요.
출연자 2: 저 그래서 외국 나갈땐 때때로 캐나다 사람이라고 하곤 해요.
.... 뭐 이런 게 미수다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미수다'같은 프로그램이 미녀들의 연애사나 - 물론 재미있지만 - 늘 되새기고 있기 보다는 다국적 정보 토크쇼로서의 기능이 앞으로 더욱 강화되어 가기를 바랍니다. 같은 현상을 맞닥뜨렸을 때 다양한 문화권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알아보는 재미는 다른 쇼에서는 감히 시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왕년에 진짜 프랑스 미녀 아나이스와 프랑스어가 사용 언어인 캐나다 퀘벡 출신 도미니크 사이에서 있었던 '원조 프랑스 문화'에 대한 신경전 같은 것도 참 흥미롭더군요.)
재미와 정보 사이에서 이 정도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건 '미수다'와 MC남 외의 어떤 프로그램이나 어떤 MC도 쉽게 시도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KBS는 시청률 1, 2%에 그리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청률에서는 '놀러와'가 얼마든지 더 앞설 수 있지만, 과연 10년 아니라 5년만 지난 뒤, 어떤 프로그램이 더 기억에 남을 지 한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