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는 사회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칩니다. 연예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거의 모든 연예인과 기획사들이 불황을 견뎌낼 준비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비나 장동건 같은 톱스타들이야 큰 타격이 없겠지만 군소 기획사나 생계형 연예인들은 한숨소리가 가득합니다. 심지어 제법 큰 매니지먼트사들도 감원과 차량 축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예인의 상징같던 밴 승합차를 정리했다는 얘기가 전혀 드물지 않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불황은 전통적인 인간관계의 파괴를 가져왔습니다. '이 바닥' 만큼 필요 이상으로 의리와 형제애(?)가 강조되는 곳도 드뭅니다. 물론 따지고 보면 말뿐인 얘기일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말이나마 그렇게 하던 것도 옛말이 될 지경입니다. 아예 대놓고 의리가 밥먹여주느냐는 분위기가 요즘 쉽게 눈에 띕니다.
최근 그 주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얘깁니다.
제목: 경기 침체가 매니저에게 미치는 영향
영화 '핸드폰'에서 엄태웅이 연기하는 매니저는 더 이상 비굴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모습이다. 룸살롱에서는 유명 PD의 비위를 맞추고, 마구 당겨 쓴 급전 때문에는 사채업자에게 손이 발이 되게 빌어야 한다. 그렇다고 무슨 호사를 누리는 것도 아니다.
매니지먼트 업계 종사자의 사회적 지위는 누구와 일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소속 스타들 못잖게 부와 명성을 누리는 매니저가 있는가 하면 3-4개 회사가 사무실을 함께 쓰는 군소 매니저들도 있다. 그들의 진짜 사무실은 차 안이다.
작은 매니지먼트사 대표 A는 한때 꽤 유명한 스타들과 함께 일했고, 독립한 뒤에도 특유의 탁월한 친화력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2년 전만 해도 업계에서 유망주로 꼽히는 성장주들을 키우며 활기차게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 악화는 작은 회사에 더 치명적이었다. 소속 연예인들의 매출은 날로 줄어들었지만 고정 비용은 더 이상 아낄 데가 없었다. 경영난으로 '입금'이 늦어지자 소속 배우와 직원들이 하나 둘씩 떠나갔다. 그러다 A는 동생처럼 여기던 직원 B가 아직 자신과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은 배우 C와 몰래 사무실을 차렸다는 사실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A는 지난 2년간 회사의 경영 성적표를 공개했다. 대표이사 A의 봉급란은 공란으로 되어 있다. 진행비 300만원이 매달 회사에서 가져간 돈의 전부다. 스타크래프트 밴은 쳐다보지도 않고 렌트카 6대를 굴리는 등 줄일 건 모두 줄였는데도 매월 5000만원 가량의 경상비가 들어갔다.
2006년 7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2년 4개월 동안의 성적은 7억여원의 적자. 간판 역할을 했던 C 역시 이 기간의 수지는 2900만원의 순손실이었다.
A는 "배우들에게 줄 돈을 유용해서 호화 생활이라도 해 보고, 룸살롱에서 향락을 즐겨 본 결과가 이렇다면 억울하지나 않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쓴 돈이야 영수증으로 증명할 수 있지만 하루 다섯시간도 못 자면서 일요일도 없이 뛴 노력은 누가 보상해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 그의 항변이다.
A를 비롯한 수많은 매니저들은 돈도 돈이지만 인간적인 실망이 사람을 피폐하게 한다는데 입을 모은다. "소속 연예인으로부터 '대체 당신이 지금까지 해준 게 뭐냐'는 말을 들을 때의 심정은 매니저가 아니면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 '너만 그런 일 겪은 줄 아냐'고 위로할 뿐"이라는 이들에게 영화 '라디오 스타'는 그저 판타지였을 뿐이다. (끝)
사실 아주 오래 전부터, 연예계에서는 우스개처럼 이런 말이 돌았습니다. 연예인이 매니저로부터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너 많이 컸구나', 매니저가 연예인으로부터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은 '형이 그동안 나한테 해준게 뭐 있어?'라는 얘깁니다.
최근 잇달아 매니지먼트사들과 연예인들의 계약이 불공정계약이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10년, 15년씩의 장기계약에다가 '앨범 판매 30만장 이후부터 인세를 지급한다(지난해 30만장을 넘긴 가수는 동방신기 하나 뿐입니다)' 는 등의 현실을 무시한 조항이 들어간 계약서는 철퇴를 맞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대다수 매니저들은 옆에서 보기에 '대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까' 싶은 사람들입니다. 이들로부터 휴일을 가진다거나 여가를 즐긴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밤마다 유흥가를 달리며 접대를 하고 사교를 한들, 남을 위한 술자리가 그렇게 즐거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렇게라도 해서 뜬 연예인들이 돈이라도 움풍움풍 벌어 오면 고생이 낙으로 바뀌겠지만 현실은 냉정합니다. 실제로 '떠서' 매니저의 보람이 되는 연예인은 기준에 따라 숫자가 달라질 수 있지만 대략 20명중 하나가 될까말까합니다. 1년이고 2년이고 투자해서 다듬어진 신인의 경우가 그렇다는 겁니다. '연예계 지망생'을 기준으로 하자면 아마 1000대 1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생기면 결국 계약서를 돌아보지만, 매니저와 연예인의 관계는 계약서의 문구로 정리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들도 아니고, 동생도 아닌데 저렇게 한 사람에게 공을 들일 수 있다는게 옆에서 보면 신기할 정도죠. 당연히 대부분의 신인들도 무명일 때에는 이런 매니저에게 고마움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그 뒤로 수천만가지 일들이 있다 보면 이런 '계약서 이외의 관계'와 '자로 잴 수 없는 사람의 노고'는 안개처럼 흩어져버리곤 합니다.
매니저들에게 있어 '동료'들은 의지할 수 있는 동업자이자 경쟁자들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누구도 믿을 사람이 없다'는 쪽이 더 정확할 겁니다. 5년간 계약한 신인이 4년째에 가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면, 이 매니저도 재계약을 해야 그 보람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4년간, 혹은 그 이전부터의 노고가 무색하게 신인은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한 다른 사람과 새로 계약을 해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계약기간이 끝나고 다른 회사와 계약을 하는 것은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지만, 전 매니저의 입장에서는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그저 속이 쓰릴 뿐이죠.
물론 아직도 '진심과 의리는 통한다'고 생각하는 매니저와 연예인들도 많이 있고, 10년 20년씩 함께 동반자로 살아가고 있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하지만 앰브로즈 비어스가 우정을 정의할 때 "날씨가 좋을 때에는 두명이 탈 수 있지만 악천후에는 한사람만 탈 수 있는 배"라고 했듯, 경기 침체는 이런 전통적인 관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쓸데없이 너무 딱딱한 얘기가 돼 버렸습니다. 눈 푸시라고 깜찍한 동영상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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