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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위의 포뇨'가 국내에서 상영되면서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관심도 다시 커지고 있는 듯 합니다. 사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가장 유명한 애니메이션 감독-제작자를 꼽자면, 1위는 이미 오래 전에 작고한 월트 디즈니일테고 두번째는 미야자키의 이름이 나올 겁니다.

미야자키가 왜 유명한지까지를 글 하나로 커버한다는 건 만용일테고, 얼마 전 '포뇨'의 개봉에 맞춰 미야자키를 잠시 돌아본 글을 쓸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문득 일본에는 미야자키 하야오도, 안노 히데아키도, 오시이 마모루도, 다카하타 이사오도, 그 밖에도 헤아릴 수 없는 거장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대신 한국에는 봉준호, 임권택, 박찬욱이 있다고 하기엔 아쉬움이 많이 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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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세계로 돌아간 67세의 거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몇가지 키워드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연친화, 환경보호, 반전 등의 주제와 그를 떼놓고 생각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다. 1978년 감독 데뷔작 '미래소년 코난'은 핵전쟁으로 철저하게 문명이 파괴되어 바다로 덮인 세계에서 시작한다. 그로부터 30년 뒤에 나온 최신작 '벼랑 위의 포뇨'에서 세계는 다시 한번 바다로 뒤덮일 위기에 놓인다.

포뇨는 인간세계가 싫어 바다로 떠난 마법사 아버지와 대양의 여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 얼굴의 물고기 소녀. 우연한 기회에 만난 인간 소년 소스케와 포뇨는 서로 좋아하게 되고, 두 어린이의 사랑은 바다로 뒤덮일 뻔한 지구를 구한다.

1941년생이지만 미야자키에게서 은퇴의 기미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21세기 들어 세계 유수 영화제들로부터 받은 찬사가 노익장을 뒷받침하는 분위기다. 2001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아카데미상 최우수 애니메이션 부문과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고 2005년 제62회 베니스 영화제에선 평생공로상에 해당하는 황금사자상을 품에 안았다. 그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와 지브리 박물관은 전 세계 '아니메(Anime)' 마니아들의 성지가 된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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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일본에서 공개된 '벼랑 위의 포뇨'는 극장에서도 흥행 기록을 갱신하며 대박을 터뜨리지만 평론가들로부터는 '미야자키도 이제 늙었다'는 신통찮은 평가를 들어야 했다. 아름답고 감성적인 영상과 동화적인 이야기에 대한 어린이 관객들의 호응은 폭발적이었지만 부모들은 뒤로 갈수록 모호해지는 플롯에 고개를 흔드는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졌다.

사실 그의 작품 목록을 살펴봐도 어린이용, 온 가족용으로 분류되는 작품은 '이웃집의 토토로' 정도다. 거의 모든 작품의 주인공들이 10대 중반 이하의 소년 소녀지만, 그의 작품들은 오히려 "만화영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통념을 씻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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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한 모험 드라마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일본 전설을 배경으로 한 '원령공주'에 이르기까지 담고 있는 메시지가 놀라울만치 성숙하기 때문이다. 오랜 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돼지 얼굴이 되어 숨어 사는 노장 파일럿의 이야기인 '붉은 돼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다.

미야자키는 이런 평가에 대해 주인공 소스케가 자신의 아들 고로의 다섯살 때를 모델로 했으며, "처음부터 다섯살 짜리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어쩐지 이 작품 속의 어른들은 동화적인 상상 속 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다. 소스케의 엄마 리사는 물고기가 사람으로 변했다고 주장하는 소스케를 미쳤다고 생각하거나 구박하지 않는다. '미야자키의 작품들을 보고 자란 어른' 들을 상징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그의 장남 고로의 감독 데뷔작인 '게드 전기(2007)'는 혹평을 받았지만, 이미 일본 애니메이션계에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을 보고 자란 '제2의 미야자키'가 즐비하다. 그 또한 자신을 애니메이터로 만든 것은 '우주소년 아톰(원제:철완 아톰)' '사파이어 왕자' 등을 만든 거인 데츠카 오사무였다고 말한 바 있다. 과연 한국에서 제2의 김청기, 제2의 신동헌은 언제쯤 나올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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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신동헌의 '소년 홍길동'이나 김청기의 '로보트 태권 V', '황금날개'를 보고 자란 세대 중에는 아직 그만한 스타 애니메이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한두가지가 아닐 겁니다. 정부의 지원이 문제라는 주장도 있을 것이고(물론 저 일본의 거장들이 정부의 체계적인 육성 방안에 의해 만들어진 건 아닙니다), 힘든 일이나 도제식 수업을 거부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보다 구체적인 데 강하고 상상력이 다소 부족한 듯한 국민성의 차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스토리의 힘을 무시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보게 됩니다. 사람들을 극장으로 끌고 올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기법이나 신기한 CG가 아니라 흡인력 있는 스토리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마지막으로 탄탄한 스토리의 국산 애니메이션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갑자기 원작의 장점까지도 망쳐 버렸던 '아마겟돈'의 악몽이 되살아납니다)

아무튼 더 길게 얘기할만큼 아는 게 없어서 유감입니다. 다만 관객의 입장에서, 재미있는 국산 애니메이션이 보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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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벼랑 위의 포뇨' 리뷰는 이쪽입니다. 일각에서는 메시지라고는 없는 '포뇨'를 보고 미야자키 선생의 에너지가 다했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분의 메시지는 이미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익숙하게 듣지 않았습니까? 이제 '토토로'의 세계를 다시 한번 본다고 나쁠 것도 없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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