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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CA가 최근 종영한 KBS 2TV '꽃보다 남자'에 대한 모니터링 보고서에서 이 드라마를 '절대 실패한 드라마'라고 규정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서울YWCA 대학생 방송모니터회의 분석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런 단체에서 이 막장성이 다분한 드라마를 좋게 평가할 리가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TV 시청자들을 상대로 어떤 설문조사를 하더라도, '어떤 TV 프로그램을 더 많이 보고 싶으싶니까'라는 질문에는 누구나 '교양, 다큐멘터리, 사회고발성 뉴스 프로그램'을 더 많이 보고 싶다고 응답합니다. 어떤 조사에서도 '코미디, 리얼 버라이어티, 막장성 드라마'라고 응답하는 시청자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 시청률 조사는 그런 설문 조사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줍니다. 원래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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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가 어떤 내용을 지적하고 있는지 역시 안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성공의 요인을 ▲가장 원초적인 욕구의 종합선물세트 ▲캐스팅의 대 성공 ▲노이즈마케팅의 위력 ▲힘들고 지친 일상에 대한 아스피린 등 덕분이라고 꼽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렇고 그런 식상한 이야기 ▲고등학생이라고 믿을 수 없는 폭력, 유흥 문화 ▲갈 곳을 잃은 어설픈 스토리 ▲CG의 남용과 폐해 ▲카스트 제도를 뺨치는 계급주의 ▲두 번 말하면 입 아픈 외모지상주의 ▲한숨짓게 하는 여주인공 캐릭터 등을 들었다는군요.

아울러 여주인공 금잔디 캐릭터에 대해 "한마디로 이처럼 수동적이고 비독립적이며, 안하무인이고 종속적인 캐릭터는 본적이 없다"고 지적했고(이 부분에서는 심히 공감합니다), "철저한 배금주의와 신데렐라 콤플렉스로 무장한 '꽃보다 남자'는 새로운 막장 드라마의 개념을 확립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상 연합뉴스 기사를 인용했습니다. 사실 이 보고서를 직접 읽어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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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대한 비판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 드라마가 담고 있는 사상의 문제, 즉 이 드라마가 우리 사회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고 갈 우려가 크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드라마의 완성도에 대한 문제입니다. 아무리 이 드라마를 좋게 본다 한들 두번째 부분에 대한 비판에는 누구라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첫번째 부분에 대한 비판이 이 드라마의 폐해인가 하는 점은 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듯 합니다. '▲카스트 제도를 뺨치는 계급주의 ▲두 번 말하면 입 아픈 외모지상주의'가 이 드라마로 인해 장려되고 있을까요? 이 드라마 보다는 현실이 훨씬 이런 현상을 잘 뒷받침해주고 있지 않을까요? 과연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저 두 부분에 대해 '현실은 그렇지 않아! 이 드라마는 현실을 오도하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드라마의 저런 부분들이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이 드라마는 보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현실과 선을 긋게 해 주는, 즉 '대놓고 비현실적인' 드라마라는 점입니다. 차라리 이 드라마보다는 '내조의 여왕'이 훨씬 현실과 맞닿아 있는 드라마죠.

'꽃남'이 끝난 뒤 지난주에 '꽃보다 남자가 남긴 것 - 아저씨가 본 꽃남'이라는 제목으로 원고 청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드라마 초반에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저는 이 드라마가 가진 수많은 문제는 문제로 치고, 이 드라마가 '한국 사회에서 나이든 여자들의 욕망이라는 부분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밖에 - 왜 중년 남자들은 이 드라마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나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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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저씨들은 왜 '꽃남'에서 소외됐나

지난달 31일 KBS-2TV ‘꽃보다 남자’의 마지막 회는 방송위원회의 경고 처분을 알리는 자막과 함께 방송됐다. 이 드라마에 지속적인 적대감을 표방해 온 사람은 적지 않다. 폭력 묘사, 지나친 간접 광고 등의 이유에서부터 형편없는 완성도라는 치명적인 약점에 이르기까지 ‘마음먹고 보면’ 비판할 구석이 넘쳐나는 드라마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용서받아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꽃보다 남자’의 존재 이유, 이 드라마의 미덕을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 적이 있다. 그 답변을 요약하자면, 이 드라마가 ‘그동안 엄마·아내·이모 등 관계 중심의 호칭으로 규정되어 왔던 한국의 성인 여성들로 하여금 오랫동안 잊고 있던 본연의 욕망을 깨닫게 하는 데 공헌했다’는 것이다. 자칫 난해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다시 풀어 말하면 ‘여성들은 꽃미남을 보며 흐뭇해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온 세상이 피부로 이해하게 해 줬다는 뜻이다.

남자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이런 욕망의 은근한 표출이 그리 추하지 않은 것으로 허용되어 왔다. 사십이 넘은 나이에도 소녀시대를 보면서 헤벌레 웃는 것이 그리 주책 맞은 일이 아니라는 사회적인 합의가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롤리타 콤플렉스’나 ‘원조교제’와 음습한 동기가 개입되어 있지 않다면 말이다.

반면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스무 살 언저리의 해사한 청년들을 보고 헤벌쭉 미소를 짓거나, 지나가는 미남 청년을 돌아보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부딪치거나 하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었다. 하지만 ‘꽃보다 남자’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아내의 유혹’에 열광하던 주부들이 동시에 ‘사실은 꽃남 팬’이라며 커밍아웃하는 광경은 요즘 그리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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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드라마는 여자들에게만 꽃미남과의 우발적인 연애, 혹은 그와 관련된 바랜 옛 추억을 꿈꾸게 한 것은 아니다. 10대에서 20대에 이르는 남성 시청자에게도 이 드라마는 욕망의 대상을 구현한 판타지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들 역시 자신의 등장만으로 주위 여자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을, (고교생임에도 불구하고) 멋진 스포츠카를 몰고 화려한 레스토랑에 여자친구를 데리고 가는 장면을, 보다 나은 장래를 위해 공부 따위에 매달릴 필요가 없는 재능과 환경을 꿈꾸기 때문이다.

사실 ‘꽃보다 남자’는 학교나 부모의 가르침보다 훨씬 더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제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운동을 잘하는 학생이라 해도 ‘서민 가정’ 출신인 한 유력가의 자제들에 비해 사회에서는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요즘의 10대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소외된 계층이 중년 남성층이다.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이 드라마에서 어떤 욕망의 대상도, 자신을 투영할 만한 대상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F4 멤버들에게서 젊은 날의 자신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참 다행이겠지만, 대다수 중년 남성에겐 ‘미워도 다시 한번’의 박상원 같은 캐릭터 하나 없는 이 드라마가 영 낯설기만 하다.

‘꽃남 현상’의 이해를 위해 시청을 시도했다가 좌절하고 말았다는 중년 남성들의 경험담도 드물지 않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만약 F4 대신 소녀시대 멤버들이 출연한 ‘꽃보다 소시’가 방송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아무튼 이 드라마의 사회적 의미를 아무리 미화한다 해도 드라마 본연의 가치인 극의 완성도를 거론하기 시작하면 이 드라마의 가치는 바람 빠진 공이 되고 만다. 가장 기본적인 플롯의 개연성에서 벌써 무너지기 시작하고, 뮤직비디오를 연결해 붙인 듯한 흐름은 대체 연출자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회의를 느끼게 한다.

‘꽃보다 남자’의 최고 시청률은 가장 우호적인 수치를 따져도 35%를 넘지 못했다. 대단한 숫자지만 기록적인 높이는 아니다. 이 드라마가 방송되는 동안에도 경쟁작인 MBC-TV ‘내조의 여왕’이나 SBS-TV ‘자명고’도 모두 10%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런 숫자들은, 그래도 드라마 한 편이 40%, 50%의 시청률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좀 더 나은 완성도를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기도 한다. 어찌 보면 꽤 다행스러운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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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윗글은 YWCA의 보고서 전에 쓰여진 것이고, 그 내용에 대한 반박도 아니지만 다만 마지막으로 그 YWCA의 조사 보고서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라면, 어떤 분야에서든 천편일률적인 잣대로 늘 똑같은 문제점만 지적하고 있어서는 어떤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겁니다.

세상은 자꾸 변하는데 늘 똑같은 19세기 서도 민요만 부르고 있으면 뭘 어쩌자는 겁니까. 더구나 대학생들이 본 시각이라면 30년 전에 어른들이 사용했던 용어들 말고 좀 더 참신한 시각으로 판단할 필요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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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올 하반기 쯤에는, '꽃보다 소시(물론 가제)'같은 드라마 한편이 세상사에 지친 아저씨들의 가슴에 살포시 내려앉기를 슬쩍 기대해 봅니다. 만약 그때 대한민국의 온갖 아저씨들이 소주잔을 던지고 오후 9시 50분이면 칼같이 귀가해 TV 앞에 앉는다면, 그때 아줌마들의 표정은 어떻게 될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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