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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 레저가 마침내(혹은 예상대로) 아카데미상을 차지했습니다. 죽은 히스 레저가 산 다른 명배우들을 압도한 셈이죠. 레저의 수상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꽤 있겠지만, 아는 분들은 다 아십니다. 이게 얼마나 힘든 수상이었는지를.

지금은 히스 레저가 요절한 재능있는 스타의 대명사처럼 불리지만 그 전에도 수많은 요절 스타들이 있었죠. 이소룡이 있었고,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있었고, 도어즈의 짐 모리슨이 있었고, 약간 범위를 넓히면 기타의 제왕 지미 헨드릭스도 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름들을 모두 합해도 '제임스 딘'이라는 이름의 강력한 상징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히스 레저는 이번 수상으로 제임스 딘의 신화를 넘어 선 셈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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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올해 히스 레저가 수상할 수 있었던 환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론의 지원은 말할 것도 없고, 후보의 선정을 보면 아카데미가 교묘하게 레저의 수상을 지원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올해 남우조연상의 후보들입니다.

Heath Ledger for The Dark Knight (2008)
Josh Brolin for Milk (2008/I)
Robert Downey Jr. for Tropic Thunder (2008)
Philip Seymour Hoffman for Doubt (2008/I)
Michael Shannon for Revolutionary Road (2008)

조쉬 브롤린의 '밀크'는 보지 못해 뭐라 말할 수 없겠지만 왕년의 오스카 수상자들에 비해 필모그래피나 지명도에서 많이 떨어집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마이클 섀년은 연기는 좋았지만 극중 비중이 너무 작았죠. 윈슬렛 부부가 살고 있는 집에 두 번 방문하면 그의 역할은 끝입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위력을 무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트로픽 선더'로 오스카를 받는다면 그건 그 자체가 패러디 코미디의 소재가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강력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있습니다. 영화도 오스카가 좋아하는 진중한 소재에다 연기 또한 흠잡을 데 없이 막강합니다. 하지만 역시 너무 연극적인 소품인데다, 아카데미는 이미 주연상을 받은 배우에게 조연상을 주는 것을 꺼린다는 속설(한 평론가의 주장입니다)도 있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예년에 비해 히스 레저의 조커 연기와 경쟁할만한 후보가 똑부러지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물론 이건 레저의 운이기도 하죠. 지난해의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뎀 같은 역사에 남을 연기가 같은 해에 나왔다면 조커 아니라 조커 할아버지를 했어도 수상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이렇게 해서 오스카 81년 사상 두번째의 사후 연기상 수상의 영광이 레저에게 돌아가게 된 것이죠.

(어떤 사람들이 그동안 사후 수상에 실패했는지 궁금한 분들은 맨 아래 링크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그전에 한번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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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전설은 1956년 이미 탄생할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청춘의 상징으로 꼽히는 명우 제임스 딘이 1955년 사망한 뒤, 영화 '에덴의 동쪽'으로 1956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죠. 세상을 떠난 사람이 오스카 연기상 후보에 오른 것도 당시로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딘의 사망은 반향이 컸습니다.

당시의 여론은 너무도 당연하게, 딘의 수상으로 전설을 완성시키자는 분위기가 거셌지만 그 해의 대세는 어네스트 보그나인의 '마티'였습니다.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고, 흥행에서도 대박을 기록했죠. '블랙록에서의 하루'에서의 스펜서 트레이시도 당대의 터프 가이들을 상대로 인상적인 연기(트레이시를 괴롭히는 악당들 중 하나로 보그나인이 출연합니다^)를 펼쳤고, 제임스 캐그니와 프랭크 시나트라의 이름도 쟁쟁합니다.

Marty (1955) - Ernest Borgnine
Bad Day at Black Rock (1955) - Spencer Tracy
East of Eden (1955) - James Dean
- This was the first posthumous acting nomination in Academy Awards history.
Love Me or Leave Me (1955) - James Cagney
Man with the Golden Arm, The (1955) - Frank Sinatra
 
하지만 제임스 딘이 1956년에 주연상을 받기 어려울 운명이라는 건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유는 바로 그 1년 전인 1955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휩쓴 작품과 관련이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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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아 카잔 감독의 '워터프론트(On the waterfront)'는 1955년 남우주연(말론 브란도), 여우주연(에바 마리 세인트)과 작품-감독-각본상 등 핵심 5개 부문을 싹쓸이하는 등 8개 부문을 석권한 걸작입니다. 총 10개(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는데 그중에서도 남우조연 부문에는 무려 3명이 후보로 올라가 집안 싸움을 벌였습니다. 결국 표가 분산된 탓인지 아무도 못 받았죠.

어쨌든 이 작품이 화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1년 전 같은 시상식에서 이렇게 싹쓸이를 해 간 엘리아 카잔 감독의 영화에서 2년 연속으로 남우주연상을 준다는 건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특히나 아카데미가 싫어하는 수상의 방식입니다.

아카데미상은 한 해에 한 영화에 상을 몰아주는 데에는 전혀 인색하지 않지만, 같은 배우나 같은 감독의 영화에 2년 연속으로 좋은 대우를 해 주는 것은 상당히 꺼리는 듯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톰 행크스의 3회 연속 남우주연상 수상 좌절 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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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필라델피아', 95년 '포레스트 검프'로 행크스가 2년 연속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나서 96년 벽두, 언론은 '행크스의 3연패가 유력하다'며 바람을 잡았습니다. 해당작은 론 하워드 감독의 '아폴로 13'. 그리고 마땅히 행크스를 저지할만한 다른 작품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여론의 예상이 불쾌하기라도 했던 듯 아카데미는 행크스를 아예 그 해의 남우주연상 후보에서 제외시켜 버렸습니다. 물론 '데드 맨 워킹'의 션 펜이나 '일 포스티노'로 사후에 후보에 오른 마시모 트로이지 등 당시에도 쟁쟁한 경쟁자들이 있었지만 수상자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니콜라스 케이지였습니다.

만약 여론이 너무 일찍부터 '행크스 3연패'라는 식으로 몰아 가지 않았더라면 행크스는 진짜 사상 초유의 3연패를 달성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Leaving Las Vegas (1995) - Nicolas Cage
Dead Man Walking (1995) - Sean Penn
Mr. Holland's Opus (1995) - Richard Dreyfuss
Nixon (1995) - Anthony Hopkins
Postino, Il (1994) - Massimo Tro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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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957년으로 돌아갑니다. 제임스 딘은 이번엔 '자이언트'로 남우주연상을 다시 한번 노크합니다. '자이언트'는 록 허드슨, 엘리자베스 테일러, 제임스 딘이라는 막강무비의 세 주역 때문에 화제가 안 될래야 안 될수가 없는 작품이었죠. 특히 비뚤어진 성격의 석유 재벌 역을 맡은 제임스 딘의 연기는 그 아니면 할 사람이 없었다고 할만한 독특함으로 빛났습니다. 영화가 그의 사후 1년 뒤인 56년에 공개됐으므로 57년 오스카 후보에 오른 겁니다.

King and I, The (1956) - Yul Brynner
Giant (1956) - James Dean
Giant (1956) - Rock Hudson
Lust for Life (1956) - Kirk Douglas
Richard III (1955) - Laurence Olivier

하지만 이 해의 제왕은 생애 절정의 연기를 보여준 '왕과 나'의 율 브리너였습니다. 이 해의 제임스 딘은 사망한지 2년이나 됐다는 점이 이번엔 감점 요인이 된데다, 공연한 록 허드슨과도 표를 나눠 가져야 하는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물론 무엇보다 지금까지도 '왕과 나=율 브리너'로 통하는 인상적인 명연기를 보여준 대머리 왕의 위력이 너무 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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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연기는 배우가 책임질 수 있지만 영화의 흥행은 당시의 대진운을 비롯해 수많은 다른 외부 요인들에 의해 어디로 갈 지 모릅니다. 연기상의 경우에도 상을 받고 못 받는 데에는 그 해의 다른 배우들, 영화의 완성도, 심지어 그 전년이나 전전년의 수상 기록, 같은 해의 다른 시상식 결과 등 수많은 요인들이 영향을 미칩니다.

한마디로 한 배우의 전설을 완성시키는 데에는 실력 못잖게 운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히스 레저는 비록 사후이긴 했지만 제임스 딘보다 운이 좋았던 셈입니다. 물론 그런 연기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건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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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의 오스카를 대리수상한 아버지 킴, 어머니 샐리, 그리고 누나 케이트 레저입니다. 영화 스태프로 일하고 있는 케이트 레저의 '케이트'와 히스 레저의 '히스'는 모두 소설 '폭풍의 언덕'에서 따 온 것이라는군요. 히스클리프같은 비운의 주인공 이름을 따 온 바람에 슬픈 운명을 맞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칩니다.





p.s. 사후 수상은 대단히 감동적인 이벤트이지만, 이것 역시 '이벤트'일 뿐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절대 순수할 수 없는, 사람들의 감정에 기대 시상식에 대한 관심을 극대화하는 이벤트죠. 아카데미가 81년 역사 동안 단 두번밖에 사후 시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시상식을 공정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감정적인 선동에 치우치지 않았다는 것이죠.

따라서 사후 시상을 당연한 일이라거나, 바람직한 일이라고 보는 시선은 위험합니다. 사망한 최진실에게 상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떤 시상식을(물론 비난받아 마땅한 시상식이긴 했지만) 비난하는 것은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는 것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닙니다.  노벨상은 아예 사망한 사람을 수상자로 결정하는 것을 규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감정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업적으로만 평가하자는 생각입니다. 시상식장이 추도식장으로 바뀌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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