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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고 장자연씨의 가족을 찾아가 인터뷰를 했습니다. 어려운 걸음이었지만 이번 사건 이후 한번도 언론과 마주 대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밝힌 적이 없는 분들이어서 그만한 보람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걸로 그동안 유족들에게 쏟아졌던 오해나 어이없는 비방이 어느 정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사실 유족들을 만나기 전까지 저도 속이 좀 탔습니다. 지난번 글, '장자연을 두번 죽인 KBS 보도'라는 글에 3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다 읽어보지 않아도 90%가 욕설에 가까운 내용이었죠. 아주 노골적인 욕설은 몇개 삭제하기도 했지만, 부분 부분 포함된 욕설은 뭐 다 보이지도 않더군요.

욕설은 아니더라도 저주에 가까운 악플도 많았습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욕을 섞지 않으면 자기 뜻을 표현하지 못하는 분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건 참 안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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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장자연 유족과의 인터뷰 기사를 먼저 보시는게 좋을 듯 합니다.

http://isplus.joins.com/enter/star/200903/16/200903160300249506020100000201040002010401.html?click=isplus

만난 건 14일이지만 유족과의 교감은 사건 직후 계속 있었습니다. 다년간 이 분야에 종사하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누군가 이승을 떠난 사람이 있었을 때 누구보다 아파하는 사람은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자살 사건의 경우, 유족들은 항상 말을 아낍니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이 아끼던 사람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걸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죠. 그러는 사이 사방에선 의혹이 판을 치고,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는 저 멀리 물 건너간 얘기가 되어 버립니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갑작스럽게 나타난 H 기획사 대표 유모씨가 던진 파문이 워낙 컸습니다. 돌연 빈소에 나타나 '죽음의 원인을 입증할 문서를 갖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유족들은 문서 내용의 공개를 거부했고, 파문은 그냥 잦아드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발인 다음날인 10일, 조선일보와 노컷뉴스에 '문서가 실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듯 '딱 한줄'의 문장이 공개됐습니다. 유족들은 이에 맞서 '제발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문건을 여러 언론사에 보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대체 저 유족들은 왜 저러냐. 억울하게 죽은 동생의 진실을 밝혀 줘야 할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것입니다. 대체 어떤 가족이 자신의 딸, 자신의 여동생의 평판이 망가지기를 원하겠습니까. 더구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처자에게 말입니다.

가족들의 분노는 13일 KBS 1TV '뉴스9' 보도에 극에 달했습니다. 오빠 장씨는 지금도 '그런 보도를 내보내려면 가족들에게 사전 상의는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특히 보도 자제를 요청하기 위해 전화한 목소리마저 녹취해서 방송에 사용한 데에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더군요.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아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는 것이 그들의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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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 전후로 번지수를 잘못 찾은 보도가 쏟아졌죠. 문제의 문서를 '유서'라고 지칭하는가 하면 '가족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남에게 맡긴 것'이라는 폭언에서 장자연을 '목숨을 바쳐 연예계 비리를 폭로한 잔다르크' 처럼 몰고 가는 이상한 논설까지 나타났습니다.

문서의 본질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속이 타들어갔습니다. 유서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뻔히 알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주민등록번호를 쓰고 지장을 찍는 유서도 있답니까. 게다가 죽기 일주일 전에 유서를 써놓고 남에게 맡긴 다음 집에서 죽는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

물론 이 문건이 유서가 아니라는 것은 이런 추측이 아니라, 유족과의 교감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유족들의 코멘트를 이용해 기사를 쓸 수 없었죠. 유족이 그것 조차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꾸만 쓸데없는 오해가 확산되는 것이 안타까워서 블로그에 한 줄 붙였습니다.

p.s. 아직도 장자연이 남긴 이 글이 '유서'였다고 생각하고, 장자연이 이 문서의 내용을 밝히려고 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군요. 여기에 대해 제가 말할 권리는 없지만, 이 문서는 유서도 아니고, 장자연이 그 내용을 이렇게 대중 앞에 공개하려 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 점 만큼은 분명해 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대체 네가 뭔데, 장자연이 그걸 알리려고 했는지 어떻게 아냐. 유서인지 아닌지 네가 알게 뭐냐'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유족과의 인터뷰 기사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문제의 문서는 계약관계 해지를 위해 작성한 것일 뿐입니다. 결코 죽음을 예견하고 쓴 글도 아닐뿐더러, 그 글을 쓰고 나서 장자연씨는 장래의 활동에 대한 희망을 가졌다는 것이 유족과 측근의 증언입니다. 결코 '죽음을 예견하고 한 고백' 따위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장자연씨는 일부 정신나간 사람들이 몰고 가려 했던 '죽음을 무릅쓰고 연예계 비리를 폭로한 잔다르크'는 아니었습니다. 그 자신이 쓴 대로 '힘없는 연예인'이었고,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내민 손을 선뜻 잡았던, 그리고 그 뒤로도 마음의 그늘을 극복하지 못했던 가엾은 아가씨였습니다. 스타덤을 꿈꾸고 연예계에 뛰어들었지만, 결코 이런 식으로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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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궁금해하시지 않을 우여곡절 끝에, 14일 낮 유족들의 이야기를 들어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집으로 간 것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어 밖에 나가기가 겁난다'는 유족들의 뜻 때문이었습니다. 장자연씨의 지인들과 함께 분당에 있는 집 대문으로 들어서는데 몇몇 기자들이 다가섰습니다. 추운 날씨인데 집 밖을 지키고 있더군요. 멀리 차 안에서 카메라를 대 놓은 사진기자도 보였습니다. 다행히 제가 아는 얼굴은 없었습니다. 다른 기자들이 '뻗치기'를 하고 있는 공간에 이렇게 태연히 들어간 적은 처음이라 저도 내심 긴장이 되더군요.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가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부모 없이 살아온 삼남매가 막내 여동생을 잃은 슬픔이 어떤 것인지, 아주 미세하나마 느낌을 공유할 수 있게 됐습니다. 남매만 있으면 집안이 너무 어두워질까를 우려한 듯, 친척들이 집에 와 있었습니다. 알려진대로 이 집은 장자연과 언니가 단 둘이 살던 집입니다. 자매가 키우던 고양이 두 마리가 빤히 쳐다보더군요.

인터뷰를 하던 도중 눈길을 끈 것은 장자연의 친언니가 손에 꼭 쥐고 있던 흰 천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옷이었습니다. 왜 옷을 들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자연이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라는 겁니다. 옆에 와 있던 장자연의 작은어머니며 다른 친척들이 "그러면 안된다. 이제 그냥 보내 줘야지"하고 야단을 쳤지만 언니는 그 옷을 놓지 않았습니다. 동생의 체취를 조금이라도 더 끌고 가려는 언니의 심정이 너무도 짙게 와 닿았습니다.

지난번 글에 유족을 이해할 수 없다며 악플을 단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죽음을 가장 안타까워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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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을 단 사람들 중에는 압도적으로 '너 대체 기획사에서 얼마나 받아먹고 이런 글을 쓰느냐'는 것도 꽤 있었습니다. 물론 이 정도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악플러들이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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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사람들 투성이입니다. 언니는 언니대로 동생이 죽을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몰랐다는 사실을 미안해 했고, 오빠는 오빠대로 바쁘게 사느라 동생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몰랐다는 걸 미안해 했습니다. 친한 언니는 친한 언니대로 자신이 알고 있던 내용을 진작 언니 오빠와 나누지 않았다는 걸 죄스러워 했습니다.

죽은 사람 앞에서 산 사람은 모두 죄인입니다. 시간으로 치자면 두어 시간이 눈깜짝 할 사이에 지나갔지만, 불과 일주일 전 젊디 젊은 혼이 이승을 등진 공간의 무게는 너무도 무거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자마자 몸이 천근이라 쓰러지게 되더군요.

다시 이런 일이 있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 두 사람의 매니저에게 가족들이 느낀 실망과 분노는 여러분이 상상하기 힘든 크기일 겁니다. 경찰 수사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장씨의 오빠에게 물었습니다. "진실이 밝혀질 거라고 기대하세요?" 솔직히 별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는 표정이 너무나 쓸쓸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누가 나쁜 사람인지는 세상이 다 알 것"이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흥분하고 분노하셨던 분들, 여러분이 할 일은 그것 뿐입니다. 잊지 않는 것.


p.s. 상황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있는 듯 해서 한줄만 덧붙입니다.

지금 경찰 수사 진행중입니다. 유족도 협조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수사를 가로막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도 수사하지 말자고 한 적 한번도 없습니다. 진실이 밝혀지면, 당연히 보도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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