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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커 김태원의 예능 적응기가 여기저기서 박수를 받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의 본격적인 도전은 3-4년 전, 김구라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게스트 활동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만, 요즘에는 예능인으로서의 기량이 점점 각광받고 있는 듯 합니다. 특히 '남자의 자격'이나 '놀러와' 등 프로그램에서 토크 솜씨가 빛을 발하고 있죠.

하지만, 젊은 시청자들이 김태원이라는 이름을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 알게 된다는 건 한국 방송의, 음악의, 대중문화의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요. 물론 그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탓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예능 프로그램으로만' 그를 알고 만날 수 있는 세상이 안타깝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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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씨의 유머감각은 방송에 나가기 전부터 이미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그와 인터뷰를 할 때면 웃음보가 절로 터졌습니다. 이웃들이 '얼굴도 잘 모르는 남자가 뭘 하는지 매일 집에 있다'며 이상하게 본다는 이야기, 그리고 늘 집에 있다 보니 '살림의 제왕'이 됐다는 이야기 등이 생각납니다.

김: 심지어 내가 분리수거의 제왕으로 불리잖아요. 동네에서.
나: 대체 어떻게 하면 제왕이 됩니까.
김: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요구르트를 먹잖습니까?
나: 네.
김: 요구르트에서도 뚜껑은 금속으로, 통은 플라스틱류로 분류합니다. 나눠야죠.

그래서 그 무렵에도 이 분 방송에서 이런 재주를 보여주시면 대박 나겠구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결국 이렇게 '늦깎이 예능 스타'로 거듭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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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대목에서 다 아는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1985년, 그가 록밴드 부활을 만들어 한국 헤비메탈 붐을 이끌었다는 전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을 겁니다.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라디오 스타' 등을 보신 분들은 그가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비롯한 부활의 명곡등을 만들어 낸 바로 그 사람이란 사실을 아셨을 겁니다. (네, '희야'는 양홍섭 곡이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자동으로 그냥 들어갔습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 시기의 부활은 시나위나 외인부대처럼 그 무렵 전성기를 맞고 있던 LA메탈을 지향하는 헤비메탈 밴드가 아니었습니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에 가까웠죠. 특히 2집의 '회상'이나 모짜르트의 레퀴엠을 인용한 '천국에서' 같은 곡은 흔히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을 보여줬습니다. 이승철 탈퇴 직전의 부활은 당대의 날리던 기타리스트 손무현을 영입해 정상의 라이브 솜씨를 보여주기도 했죠. (아실 분은 다 아시겠지만 손무현은 나중에 '제목없는 시'를 불렀고, 김완선의 '삐에로는 우릴보고 웃지', 이주원의 '아껴둔 사랑을 위해' 등 명곡들을 남긴 작곡가입니다.)

그 뒤로 부활의 노래가 발라드로만 알려진 건 좀 아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현실에서 그 이상을 요구하기는 힘들었죠. 보컬을 계속 바꿔가며 김재기가 부른 '사랑할수록', 박완규의 'Lonely Night', 다시 이승철의 '네버 엔딩 스토리', 정단의 '아름다운 사실(영화 '내머리속의 지우개' 예고편에 나왔죠)' 등 걸작들이 나왔습니다.

'아름다운 사실'을 아무래도 잘 모르실 것 같아서 가져옵니다. 부르는 사람은 당시 부활의 보컬이었던 정단. '네버엔딩 스토리'의 히트 다음에 나온 곡이었지만 아무래도 이승철과 부활의 결별이 준 실망감이 너무 컸던 듯 합니다. 영화 본편에서 노래가 빠진 것이 이유일지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노래인데 안타깝습니다.




이쯤 되면 작곡가 겸 밴드 리더로서의 김태원은 한국의 어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도 밀리지 않는다고 봐야 할 듯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기타리스트 김태원은 '누구?' 할 상황이 됐습니다. 알려진 건 '재능있는 예능 신인 김태원'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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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김태원씨보다 몇백배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오지 오스본도 예능 스타가 된 적이 있습니다. 전설의 밴드 블랙 사바스와 자신의 밴드 오지 오스본을 이끈 록 보컬 오스본은 몇해 전 MTV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오스본 패밀리(The Osbournes)'에 출연, 아내와 딸까지 스타로 만드는 요절 복통 쇼쇼쇼를 펼쳤습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오스본의 과거 업적(?)을 묻어버린 것이 아니라,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잊혀져 가던 왕년의 '흡혈귀' 오스본을 다시 대중들 앞에 부활하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아무도 '예능 신인 오스본' 따위로 그를 포장하지 않았죠.

충분히 이유가 있는 일이겠지만, 그리고 보태 드린 것도 사실 없지만 반주도 없이 노래하는 예능 스타 김태원을 보는 기분이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현실입니다. 누구든 예능에서 뜨려면 어깨에서 힘을 빼야 한다는 것 까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한 부문의 대가가 마땅이 받아야 할 예우나 평가 없이 그냥 '예능 신인'이 되고 마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노래나 몇곡 더 -

현재 보컬인 정동하가 부르는 'Lonely Night'입니다. 그런데 원곡의 박완규가 너무 절창이어서 어쩔 수 없이 비교가 되는군요. ^

 

아무래도 엔딩은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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