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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선덕여왕'이 3회만에 20%를 넘어섰습니다. 화려한 출연진과 화려한 세트, 거기다 호화찬란한 연기까지 보태지며 드라마가 전체적으로 '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 사극의 무대가 이집트, 로마에까지 뻗어가는 모습도 이색적이더군요.

지난주 방송된 1,2회만 보더라도 이 드라마가 예사 드라마와는 좀 다른 조짐을 보인다는 느낌은 충분히 받았습니다. 사극으로서 인기를 끌 것이라는 사실은 꽤 분명해 보였지만, 이 드라마가 역사를 보는 시각이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다는 면에서 마냥 칭찬할수만은 없는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서서히 풀어가기 위해서, 이번에는 실질적인 주인공인 미실의 과거를 좀 파헤쳐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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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공주를 안고 말하는 "...전부 네 탓이다." 이 장면에서의 고현정은 정말 악의 화신이라도 된 듯 하더군요. 정말 소름끼치게 멋진 장면입니다.)

지난번에도 얘기한대로 미실과 관련된 모든 기록은 위서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화랑세기'는 역대 화랑의 장(풍월주)들의 간략한 전기입니다. 그런데 이 전기 한 권의 전반부가 사실상 미실이라는 여주인공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 이색적입니다. 또 이렇게 '화랑세기'가 허구라면 미실 또한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쪽으로 무게가 기울게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지난번 글에 자세히 썼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는 패스.)



이 '화랑세기'가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이 문건이 발견자 박창화가 1930년대 즈음에 창작한 한문 소설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 '화랑세기'가 진짜 소설이라면, 우리는 세계적인 로맨스 판타지 작가를 보유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치밀하지 않은 구조로 보아 '화랑세기'는 요즘으로 치면 대작 애니메이션이나 판타지의 설정집 성격을 갖고 있는데, 이런 치밀하고 장대한 설정을 짜낼 수 있는 작가가 과연 한국 문단에 존재한 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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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국사(도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교과서에는 사다함과 무관이라는 두 화랑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진흥왕 때 인물인 이 사다함은 삼국사기에 사다함열전이 있을 정도로 꽤 유명한 실존 인물입니다. 주요 기록 내용은 화랑 사다함이 있어 15세의 나이에 비장으로 발탁되어 대가야 정벌에 큰 공을 세웠고 나라에서 300명의 포로를 노비로 주었으나 모두 자유민으로 풀어 주었다, 그리고 평생 함께 하기로 약속했던 친구 무관이 일찍 죽으매 안타까워 울다 병이 들어 곧 따라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랑세기'는 이 사다함이 바로 현재 고현정이 연기하고 있는 미실의 첫사랑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화랑세기의 5세 풍월주 사다함의 기록 가운데 미실과 관련된 부분은 이렇습니다. 드라마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보다 20년 이상 앞선 얘깁니다. 미실과 세종의 청소년 시절 얘기죠.

- 대개 공(사다함)은 미진부공의 딸 미실을 사모하였다. 미실 또한 공을 좋아하였으나 태후의 명으로 세종공에게 시집을 갔다. (중략, 확실치 않은 부분) '청조가'를 지어 불렀다. 청조란 곧 미실을 가리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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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나오는 세종이란 진흥왕과 어머니가 같은 형제인 세종전군을 말합니다. 지금의 '선덕여왕'에서 독고영재가 연기하는 미실의 남편이죠. 진흥왕은 법흥왕의 동생인 갈문왕 입종(선마로)과 지소부인 사이의 아들인데, '화랑세기'에 따르면 장군 이사부(苔宗)와 지소부인이 서로 통해 낳은 아들이 세종입니다.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불륜의 소생이지만 '화랑세기'의 세계에서는 너무도 태연하게 이뤄지는 일입니다. 게다가 아버지는 왕족이 아니지만 어머니가 귀인이므로 전군이라는 왕자의 칭호를 얻게 됩니다.

사다함이 일찍 죽은 이유는 두 가지의 충격입니다. 대가야 원정에서 돌아와 보니 연인이던 미실이 세종의 아내가 되어 있고, 또 친구인 무관이 충격의 죽음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무관은 괜히 죽은 것이 아니라 사다함의 어머니 금진과 몰래 사귀는 관계였던  탓에 죽은 것입니다. (...네. 성인용입니다.) 사다함을 추종하던 낭도들이 무관의 불측한 행동을 보고 죽이려 달려들자 달아나다가 떨어져 죽은 걸로 돼 있습니다.



'화랑세기'의 6대 풍월주 세종편에 보면 미실과 세종, 사다함의 삼각관계가 좀 더 자세히 나옵니다. 진흥왕이 선 뒤 세종의 어머니인 지소태후는 세종이 미실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세종과 미실을 짝지우는 한편, 세종의 누이인 자신의 딸 숙명공주를 진흥왕의 정실로 삼으려 합니다. 하지만 진흥왕의 정실이자 미실의 숙모인 사도황후는 여기에 강하게 반발해서 태후의 계책을 무산시킵니다. 이에 분노한 태후가 사도황후의 친척인 미실과 세종을 갈라 놓으려 합니다.

- 이에 태후는 미실을 불러들인 것을 후회했다. 미실을 불러 꾸짖기를 "너로 하여금 전군을 받들게 한 것은 단지 옷을 드리고 음식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감히 사사로이 색사로 전군을... 어지럽혔으니 죄를 용서할 수 없다"하고 출궁을 명했다. .... 그리고 진종 전군의 딸 융명을 (세종 전군의) 정비로 삼았다.

그리고 출궁한 미실은 사다함을 만납니다. 어떻게 만났는지는 모르지만,

- 이에 이르러 미실은 "일찍이 지아비를 맞는 데에는 마땅히 사다함과 같이 하여야 한다. 무릇 부귀라는 것은 한때이다" (중략) 이에 사다함이 노래를 불러 위로했다. 미실은 이에 정이 일어나 서로 기뻐하였다. 사다함이 출정할 때 미실이 노래를 불러 전송했다. -

이 노래를 '풍랑가'라고 하며, '화랑세기'의 지지세력은 기록상 최초의 향가라고 보기도 합니다. 한편 사다함이 대가야 정벌을 위해 떠나자, 전세는 다시 역전됩니다.

- (세종) 전군이 듣고 괴로워하였다. 태후가 전군이 상심할까 염려하여 다시 미실을 입궁시키자, 전군은 기뻐 미친 듯이 달려갔다. 태후는 부득이 (미실에게 세종을) 다시 섬기도록 명하였다. 미실은 원비의 첩(이미 융명과 세종이 결혼했으므로)이 된 것을 부끄럽게 여겨 색공에 응하지 않았다. (중략) 미실은 전군과 더불어 정을 배반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마침내 융명을 내쫓았다.

사다함이 돌아왔을 때 미실은 이미 궁중에 들어가 전군의 부인이 되어 있었다. 까닭에 사다함은 '청조가'를 지어 슬퍼하였다. 내용이 몹시 구슬퍼 사람들은 다투어 서로 암송하여 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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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습니다. 참 한폭의 멜로드라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다함은 세종을 존경하고 사랑했던 탓에 그를 원망하지도 않고(저 '청조가'의 내용도 전군 부부를 끝까지 자기가 보호하겠다는 것입니다. 궁금하시면 각자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죽을 때도 자신의 후임 풍월주로 세종을 천거합니다.

- 태후가 "나의 아들(세종)은 어리고 약하다. 어찌 풍월주가 될 수 있는가" 하자 미실은 세종에게 권하기를 "사다함 종형(그 시절엔 온 신라가 서로 다 친척입니다^)이 나를 사모하다가 죽었습니다. 죽음에 임하여 한 말을 들어 주지 않으면 장부가 아닙니다"라고 했다. 세종이 옳게 여기고 태후를 설득하여 허락을 얻고 6세 풍월주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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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미실은 이때 이미 사다함과 세종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다가 부와 권력을 선택한 셈이었고(뭐 그때나 지금이나 멜로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이 가는 길입니다), 진정한 사내 대장부이자 화랑의 표상이던 사다함은 이를 원망하지 않고 슬픔을 간직한 채 자신의 길을 가던 도중 친구 무관의 죽음에 치명타를 맞고 요절합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를 빼앗은 세종은 사다함의 유언을 계기로 문약한 서생에서 화랑의 지도자로 변신, 뒷날 삼국 통일의 기초를 다지는 초석으로 성장합니다. 아울러 미실은 사다함의 죽음 이후 자신은 한 사람을 사랑하고 살 수 있는 여자가 아님을 깨닫고 권력의 화신이 되죠.

제가 '화랑세기'를 갖고 드라마를 만든다면 이 사다함 시대의 이야기를 택했을 듯 하지만, '선덕여왕' 제작진은 권력자 미실의 모습이 더 매력적이었는지 훨씬 뒷날의 이야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각이 그리 깔끔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드라마 '선덕여왕'을 볼 때 약간의 불편함을 남깁니다. 물론 일개 시청자로서의 의견입니다.

아무튼 너무 길어지니 그 이유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그냥 쉬어가는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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