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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선덕여왕'에서 드디어 한동안 사라졌던 문노가 돌아올 조짐입니다. 덕만(뒷날의 선덕여왕)은 문노(文奴)라는 두 글자가 쓰인 서찰을 보고, 신라로 돌아가 문노를 찾으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거란 기대를 갖죠. 하지만 신라로 돌아와도 문노는 어디론가 사라져 찾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런 기록은 문노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는 '화랑세기' 기록과는 전혀 다릅니다. 문노는 신라를 대표하는 화랑 중의 화랑이고, 당대 최고의 검술가라는 것 까지는 일치하지만 미실과 적대관계였다는 등의 묘사는 사실과 상당히 다릅니다.

정호빈이 연기하는 문노가 '화랑세기'에는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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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노에 대한 기록은 4세 이화랑이 어린 사다함을 자신의 후계자(5세 풍월주)로 지목하는 무렵부터 등장합니다. 이때 이미 문노는 검술의 대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다함은 지난 포스팅에서 얘기했던 미실의 첫사랑인 유명한 화랑이며, 이화랑은 세속오계를 남긴 원광법사의 아버지로 화랑 계보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입니다.

사다함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이쪽 참조



- 이 무렵 비조공의 아들 문노 또한 호걸로 격검을 잘했다. 공(이화랑)은 사다함으로 하여금 문노에게 검을 배우게 했다. 문노가 말하기를 "검은 곧 한 사람만을 대적하는 것인데 어찌 고귀한 사람이 알 필요가 있습니까?" 하자 공이 말하기를 "한 사람을 대적하지 않으면 어찌 만인을 대적할 수 있겠는가. 이 아이(사다함)는 호협을 좋아하니 비록 무리가 많다고는 하지만 그 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 네가 그를 보호하라" 하였다. 문노가 이에 낭도 오백으로 따르니 그 위세가 토함(사다함의 친형) 보다 컸다. -

당연히 5세 사다함의 기록에도 문노 이야기가 나옵니다.

- (사다함은) 나이 12세에 문노를 따랐는데 격검에 능했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좋아했다. 낭도들이 서로 "구리공(사다함의 아버지)의 음덕으로 받은 복이다"라고 했다. -

사다함이 죽고 세종이 풍월주에 올랐을 때 문노는 세종에게 순종합니다. 하지만 설원랑이 세종의 뒤를 이어 풍월주가 되자 문노는 반발합니다.

- (설원랑이 풍월주가 되었을 때) 문노 일파가 세종을 따라 지방에서 전공을 세웠는데, 위를 얻지 못하여 설원랑에게 불복하고 일문을 새로 세웠다. 이때 낭도들이 마침내 나뉘었다. 설원랑의 파는 정통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하고, 문노의 파는 청의가 자기들에게 있다고 하여 다퉜다. 미실이 걱정하여 세종에게 화합을 권고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중략) 이에 왕에게 권해 문노를 국선으로 삼고 비보랑을 부제로 삼았다. 문노의 낭도들은 무를 좋아했고 호탕한 기질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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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 중 많은 수가 따르는 문노를 무시할 수 없었으므로 설원랑이 풍월주였음에도 불구하고 문노에게 국선이라는 호칭을 주어 거의 동등한 대우를 해 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기록을 보면 문노의 무리는 무를 좋아해 '호국선', 설원의 무리는 향가를 짓고 도를 닦는 것을 좋아해 '운상인'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또 명문거족 출신은 설원을 따르고, 한미한 집안 출신들은 문노를 따랐다고 되어 있습니다.

결국 미실은 진지왕을 폐위하기에 앞서 문노를 자기 편으로 하기 위해 풍월주와 국선을 없애고 스스로 원화가 되어 화랑의 총 자휘자가 됩니다. 그러면서 문노의 파벌이 자연스레 귀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죠.

- 이로써 문노의 무리는 미천한 사람으로서 고관에 발탁되는 사람이 많았다. 평민 출신의 사람들과 투항하고 귀순한 무리가 (문노를 통해) 출세하는 문으로 삼았기에, 이들은 문노를 신과 같이 받들었다. -

미실의 문노에 대한 호의적인 움직임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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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실은 이에 설원랑이 문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알고, 문노를 선도(仙道)의 스승으로 삼는다는 명령을 내리고 설원랑과 미생 등에게 스승으로 섬기게 했다. 설원랑의 무리 가운데 불평하는 자가 있었으나 설원이 "미실 총주의 명을 거역할 수 없다" 하므로 모두 무릎을 꿇고 섬겼다. 그러자 문노의 무리 역시 설원에게 기꺼이 복종하였다. 미실이 기뻐하며 다음 풍월주의 자리를 문노에게 물려주게 했다.

그러자 문노는 "국선이 이미 풍월주보다 낮은 자리가 아니요, 내가 스승인데 어찌 제자로부터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겠는가" 하니 설원은 "국선은 정통이 아니고, 세종전군도 왕자의 귀한 몸으로 사다함공의 뒤를 이어 풍월주가 된 적이 있으니 하물며 내가 사형(문노)을 받을어 섬긴 것은 미실의 명을 따른 것인데, 이제 미실이 양위를 명하니 감히 거역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문노 또한 "궁주가 이미 명령한 것이니 나 어찌 거역할 수 있겠는가" 하고 차기 풍월주가 되었다. -

이를 통해 미실의 권세가 다양한 안배와 깊은 계책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미실은 자기 무리를 이끌고 다른 파를 배척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지만, '화랑세기'상의 기록에 나오는 미실은 설사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품고 따르게 할 수 있는 대단한 그릇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자신의 아들 하종 - 드라마에서는 바보로 나오지만 뒷날의 당당한 풍월주입니다 - 을 문노의 제자로 보내 검술을 배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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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미실이 문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화랑의 파벌 싸움은 계속됐을 것이고, 어떤 결과로 이어졌을 지 모릅니다. 그리고 문노가 미실을 따른 것은 세종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문노가 처음에는 설원의 스승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설원의 뒤를 이은 풍월주가 되어 후배의 예를 취하게 된 데 대해 문노의 무리 중에도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한 문노의 입장입니다.

- (그런 주장에 대해) 문노가 꾸짖어 말하기를, "궁주(미실)는 전군(세종)이 받드는 바이다. 어찌 감히 말이 있을 수 있는가?" 하였다. 이에 문제를 제기한 자는 다시 말하지 못하였다. 대개 문노의 뜻은 미실보다는 세종을 위한 것이었다. 세종이 미실을 지극히 받들고 섬기면서도 오히려 모자람이 있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문노는 굽히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미실은 자신의 사촌인 윤궁과 문노를 결혼시키는 등 문노와의 화합에 온 힘을 기울입니다. 윤궁은 본래 동륜태자의 아내였지만 문란했던 동륜태자가 개에게 물려 죽어 과부가 된 뒤 문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문노는 '화랑세기'에서 정말 드물게 한 아내에게 정성을 다 한 인물입니다. "단 한번도 유화와 물의를 빚은 적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정말 끝까지 철저한 바른생활 사나이의 모습이죠. 오히려 윤궁이 "공은 환락을 좋아하지 않아 내가 불편할 정도"라고 말합니다.

아무튼 윤궁은 미실과 문노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그 자손들도 번창합니다. 두 사람은 3남 3녀를 두는데 그중 막내아들 금강은 뒷날 이찬과 상대등의 자리에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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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해 보면 문노의 일생은 화랑의 무력에 대한 상징이면서 서민들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휘하에서 통일의 기초가 된 용사들이 다수 배출됐고, 그는 또 권력을 독점하던 귀족들에 맞서 서민 출신들이 출세하는 길을 연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권력의 중심을 떠나지 않았고, 세종과 미실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랐습니다. 부귀와 권력, 공명이나 환락에 머물지 않은 진정한 바른생활 사나이이자 화랑의 귀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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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화랑세기'의 기록을 보다 보면 정작 출생의 비밀이 있는 것은 덕만공주쪽이 아니라 문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비밀일까요. 그건 다음 시간에 - . (아, 사실은 진평왕의 본명이 준표였다 뭐 이런 건 아닙니다. 연기자 정호빈에 대한 얘기도 내일로 미루겠습니다.)


             15일 방송에선 또 어린 김유신이 나와서 뭔가를 생각나게 하더군요.


 

 

그동안 '선덕여왕'에 대해 썼던 글들입니다.

드라마의 전체 개관. 첫번째 글
 


미실과 사다함의 옛 사연, 그리고 미실은 왜 사랑을 잊었나..
 


쉬어가는 글 - 칠숙의 정체에 대한 내용

댓글
  • 프로필사진 우유차 일단 찜. 1등~ 2009.06.09 09:51
  • 프로필사진 Chic 아쉽네요..2등~! ^^v 2009.06.09 10:01
  • 프로필사진 Chic 내용보고 리플을 달려고보니 순위권으로 만족해야겠네요 ㅎㅎ 2009.06.09 10:02
  • 프로필사진 후다닥 아까비하게 2등이군요...
    문노도 대단하지만 자신의 정치적인 야망을 위해
    수를 두는 미실도 대단합니다.
    강한자를 최대한 자기 품으로 끌어들여서 세를 확장하는
    치밀함이라..
    앞으로 전개가 더욱 기대됩니다..
    2009.06.09 10:10
  • 프로필사진 비룡 문노도 궁예처럼 어디선가 버려진 왕의 아들인가요? 2009.06.09 11:30
  • 프로필사진 송원섭 ^^ 2009.06.09 17:58
  • 프로필사진 정민맘 우선 순위권? 2009.06.09 15:43
  • 프로필사진 햇살 시간이 꽤 지난거 같은뎅;; 저도 순위권인가요? ㅎㅎ
    선덕여왕을 쥔장님 포스팅 보고 보게 되었는데
    꽤 재밌더라구요...
    학교 다닐 때 어찌나 국사가 싫던지- _ -;;
    왕 이름 및 역사 인물에 굉장히 취약한 사람으로...
    그냥 등장인물 얼굴로만 기억하게 되요;; 하핫~
    15년이 흘러 덕만이가 아가씨가 다 되어가는데
    미실이 얼굴이 너무 팽팽하여 깜놀 ㅇ_ㅇㅋㅋ
    2009.06.09 15:56
  • 프로필사진 후다닥 미실은 전설의 주안술을 익혔습니다...
    ^^;;;;
    2009.06.09 16:34
  • 프로필사진 zizizi 그러게 말입니다. 15년 전엔 이모뻘이 된다던 미실이었는데, 이젠 왕은 갑자기 늙어계시고. 하지만, 얼굴에 세월이 안 묻는 고현정이라서 이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ㅋㅋ 2009.06.09 20:12
  • 프로필사진 ㅋㅋㅋ 미실은 전설의 구미호임 ㅋㅋㅋ
    절대 늙지 않을뿐더러
    나중엔 진짜인간을 넘어 신선이 되는데
    덕만이 못하도록 막음 ㅋ
    믿거나 말거나 ㅎㅎ
    2009.06.09 21:41
  • 프로필사진 선우재우부 문노는 모든 화랑의 귀감이 되었을 것 같군요. 특히 김춘추나 김유신의 롤 모델로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해 보입니다.

    책 표지에 김대문 저로 되어 있네요.
    화랑세기가 김대문의 진본이라는 사실을 떠나서 그 시대의 신라인이 아니고는 이처럼 판타스틱(?)하고 현실감 있는 이야기를 엮어나가기에는 힘든 점이 많아 보입니다. 아니면 전에 송기자님이 말씀대로 톨킨을 능가하는 작가가 이미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건 아닌지?

    이종욱 교수의 “성경은 원본이 없다. 화랑세기도 원본은 없다.”라는 말이 제일 적당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도 이에 부합되는 영웅 서사시적 오페라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
    2009.06.09 16:28
  • 프로필사진 송원섭 소설-또는 소설을 쓰기 위한 설정집-이라면 정말 대단합니다. 2009.06.09 17:59
  • 프로필사진 선우재우맘 앗~
    오랜만에 보는 이민호닷!!^^
    수술한다고 하던데...
    2009.06.09 21:30
  • 프로필사진 zizizi 전 드라마 보면서 의아했었어요. 아니 왜 국선도 화랑의 지도자이고, 미실도 화랑의 지도자인데 저렇게 차이가 나나? 미실 쪽은 사람이 그득하고 화랑들이 낭장결의할만큼 충성을 다하는 데 반해서 국선은 뭐, 거의 닌자 수준으로 혼자 다니고 누구 하나 돕는 사람도 없고 더 직급이 낮은 자들이 봐도 콧방귀~ 죽여버리겠다고 달려들기만 하고. 이게 도대체 무슨 상하관계인가 싶었답니다. 어쨌든 미실의 지위가 훨씬 더 높은 게 맞는 거긴 하겠지만.

    (근데 미실에게 왜 공주라고 하나요? 왕의 핏줄이 흐르나요? 기자님 옛글을 다시 공부하면 나오는 건가..)

    그건 그렇고, 미실이 소위 미실파와 회의하는 장면을 보면 히야, 이거야말로 일처다부제인가 싶더군요. 남편과 정부 등을 모아놓고 맘대로 휘두르는. 게다가 남편에게 전 왕의 황후가 된다며 질투나냐고 물어보던데, 중혼이라도 가능했던 겁니까?? 단순히 이 남자랑 이혼하고 왕과 결혼하면 되는 거였던 건가요??

    원래 역사지식이 짧은 데다가 이해 안 가는 게 넘 많아요.
    2009.06.09 16:44
  • 프로필사진 ^^ 공주가 아니라 궁주라고 부르는데요..왕의 후궁 세종부인이면서 이순재(진흥왕인지 진평왕인지)후궁으로 들어갔잖아요...조선전의 시대를 유교적 시각으로 해석하면 당연히 이상하죠..그때는 족내혼으로 삼촌이나 작은아버지 이복동생이랑 결혼도 하고 그런시절이니...진흥왕의 어머니 지소태후도 자식들 아버지가 다르던데요...신라는 아니지만 천추태후도 그 시절에는 재가가 불법은 아닙니다..지금시대에는 불륜녀라고 말하지만 2009.06.09 17:56
  • 프로필사진 송원섭 그래도 가끔 문노를 언급하면서 설원랑이 "지금이라도 문노가 나서면 화랑의 절반은 문노 쪽으로 갈 것"이라고 하더군요.

    공주 아니고 궁주 맞습니다. 진흥왕에게는 다섯 궁주가 유명했다는군요.
    2009.06.09 18:00
  • 프로필사진 zizizi 조선 전의 시대는 비유교적인 연애와 결혼이 횡행했다~ 이건 기자님 이전 글에서 이미 학습했습니다만~ 공주가 아니라 궁주군요. 새주라고도 부르던데, 옥새를 관리하는 자가 그런 권력을 가지던 때가 있었나요?? 2009.06.09 20:11
  • 프로필사진 비밀댓글입니다 2009.06.09 21:52
  • 프로필사진 송원섭 메일로 보냈습니다. 2009.06.09 23:46
  • 프로필사진 ㅇㅇ 매번 생각하게 되지만 이글의 주제와 좀 거리감이 있지만은
    아무리 퓨전사극이라지만 고증 문제는 상당히 존재하는군요.
    이번에 선덕여왕을 잠깐봐도 도저히 봐서 이해가 안 갈정도로 화려함의 극치는 또 뭔지;;

    생각같아서는 건물내부도 다 싹 바꿔버리고 싶다는
    2009.06.10 03:41
  • 프로필사진 나이트 클럽의 신데렐라 공(이화랑)은 사다함으로 하여금 문노에게 검을 배우게 했다. 문노가 말하기를 "검은 곧 한 사람만을 대적하는 것인데 어찌 고귀한 사람이 알 필요가 있습니까?" 하자 공이 말하기를 "한 사람을 대적하지 않으면 어찌 만인을 대적할 수 있겠는가

    이 부분은 사마천의 <사기> "항우본기"에 나오는 항우와 그 숙부인 항량의 대화를 뒤집어서 패러디한 것 같군요..검술을 얼마간 배우려다 마는 항우더러 항량이 그 이유를 물으니 "검술이란 한 사람을 대적하면 족한 것을 배워서 무엇하냐? 만명을 대적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고 하자 항량이 항우의 역량이 뛰어남을 알고, 드디어 병법을 가르쳤다는 고사입니다..

    어떤 분이 지적한 것처럼, 당 태종의 후궁(사실은 거의 병실 간호 시녀 수준) 출신으로 태종의 아들인 고종의 후궁이 되었다가 자신의 아이를 죽이면서까지 모략을 펼쳐 고종의 정비를 축출하고, 황후의 자리에 오르고 나중에는 아들들을 자신의 뜻에 따라 황제의 자리에 올렸다 내렸다 하며 당나라를 좌지우지하고, 나중에는 스스로 황제가 되고, 말년에는 어린 미남자들에게 잠자리 시중을 들게 하였던 측천무후의 패러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09.06.10 16:36
  • 프로필사진 송원섭 충분히 공감이 가는 얘깁니다. 사실 검술과 만인적 얘기가 나오면 당연히 항우의 고사를 생각하게 되죠.

    물론 가능성으로 따지자면, 20세기 인물인 박창화도 패러디할 수 있고, 6세기 인물인 이화랑도 패러디할 수 있습니다. 이화랑도 항우의 고사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겠죠.

    또 측천무후가 한고조때 여후의 패러디가 아니고, 서태후가 측천무후의 패러디가 아닌 실존 인물이듯 미실이 실존 인물이고 사적이 비슷한 것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그러니 중국의 사적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화랑세기'가 소설이라는 증거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2009.06.10 17:47
  • 프로필사진 흠.. 역사라는 것은 어느 세대, 어느 곳에서나 반복되는 거 아닐까요?
    중국 역사나 한국 역사나 일본 역사나 심지어 서양사나 비슷비슷한 인물들이 있기 마련이던데요.
    중국사를 아시는 만큼 한국사도 뒤져보시면 더 유사한 일화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국사가 앞선 것으로도요 ^^
    2009.06.11 11:07
  • 프로필사진 화랑세기 매니아 한때 화랑세기에 관한 책이란 책은 죄다 읽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위의 책의 이종욱 선생은 화랑세기에 대해 부단히도 연구를 하셨고 같은 소릴 열심히도 반복하시죠.
    암튼 그게 픽션이건 넌픽션이건 젊거나 늙거나 변함없는 미실이란 인물 땜에 은근 신경질 내면서도 중독 증세를 보여가며 알고 있는 역사와 꿰 맞추곤 했더랬죠.
    아직도 미생이란 인간에 대해선 짜증이 납니다만.. 뭐 미실의 마지막이 그리 영광스럽지 않다는 것이 다행인 건지.
    윤궁의 치마폭에서 완전 바지저고리된 문노도 나중엔 좀 맘에 안 들었습니다만..
    무엇보다 반란으로 인해 생각보다 빨리, 허무하게 와해된 그 위대한! 화랑도의 마지막이 무척 가슴 아팠더랬죠.

    화랑세기가 몇년 전만 하더래도 박창화의 허구이며 일고의 가치도 없는 파천황이라던 시절이 있었는데 미실을 주제로 소설도 나오고 드라마까지.. 은근슬쩍 대접을 받는 때가 되었나 봅니다. 학계에서도 암 소릴 안 하니..
    이런 것도 시대변화에 따른 것? 아니면 격세지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고현정을 미실로 보는 마음도 그다지 편하지 않아서 이 드라마를 거의 안 봅니다만.. 드라마에서 미실 외에 다른 색공지신들은 나오나요? 화랑세기에는 몇몇 유명한 분(?)들과 집안들이 있는데요. 이참에 다시보기로 함 볼까 싶습니다.
    2009.06.11 11:04
  • 프로필사진 송원섭 흠돌의 난이야 뭐 이미 통일이 된 이후인데, 오히려 그렇게 조정으로부터 상당히 독립적인 무사단을 존속시킨다는게 정권에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주로 치고 올라갈 거라면 또 모르지만.. 2009.06.11 11:24
  • 프로필사진 ftd montreal 드라마와 비교도 하니 정말 재밌네여 2009.07.04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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