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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는 서현과 유신 부자가 미실과 좀 적대적인 관계인 양 그려지고 있습니다만, 물론 기록과는 좀 다릅니다. 아무튼 소년 김유신이 천명공주를 포로로 잡아 놓은 상황에서 코믹한 장면이 연출되더군요. 당장 자신을 태수 김서현(김유신의 아버지) 앞으로 데려가라는 천명공주에게 소년 김유신은 "수련이 끝나면 안 그래도 데려갈 것"이라고 또박또박 말합니다. 그리고는 짚 인형을 목검으로 내려치는 수련을 시작하죠. 갯수를 셉니다. "하나" "둘"
이렇게 세기 시작한 숫자가 점점 늘어납니다. "천 하나" "천 둘", 천번이 넘어도 안 끝납니다. 그리고는 "구천구백구십육"... 굉장합니다. 1초에 한번씩 쳐도 만번이면 세시간을 꼬박 쳐야 합니다.
천개면 끝나겠지 싶었던 내려치기가 10,000개 가까워지면서 천명공주의 얼굴에는 피로와 짜증이 역력합니다. 그런데 만개를 채우나 싶었는데 여기서 소년 김유신은 다시 "하나, 둘, 셋"을 세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천명공주가 버럭 화를 내죠. 왜 만개를 채우려다 말고 다시 시작하느냐고.
저는 답이 이걸 줄 알았습니다.
"세다가 까먹어서."
혹시 저 말고도 이걸 연상하신 분이 있지 않나요? 이건 바로 백만돌이 에너자이저의 모습입니다. "백만 스물하나, 백만 스물둘." 세다가 갯수를 잊어버린 에너자이저, "에이, 처음부터 다시 하지 뭐" 하고 열심히 팔굽혀펴기에 들어갑니다.
물론 소년 김유신이 만개를 채우지 않고 다시 시작한 것은 마지막 순간 정신 집중이 풀어진 자신을 경계하는 의미였다고 설명하지만 아무튼 그 대목의 소년 김유신이 에너자이저를 연상시켜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딱 그 푸시업 광고는 구할 수가 없고... 비슷한 느낌이 나는 추억의 광고를 찾았습니다.
아무튼 지난번에는 터미네이터가 등장하더니 이번엔 에너자이저까지... 참 '선덕여왕' 작가들의 유머감각이 끝이 없군요.^
지난번의 터미네이터 얘깁니다.
조부 무력, 아버지 서현 등 김유신의 직계 조상들은 가야 출신으로서 신라와의 융합에 가장 앞장 선 사람들입니다. 김유신의 증조부는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해왕(구충왕)이고, 이들은 신라에 항복해 신라 조정에서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구해왕의 아들 무력은 장군으로 여러 차례 군사를 이끌고 공을 세웁니다. 그 결과 이들 가문은 신라를 대표하는 무장 가문이 되죠.
화랑세기에는 서현이 지금 드라마의 무대가 된 만노(충북 진천)으로 가게 된 계기가 자세히 나옵니다.
15세 풍월주 유신공은 서현 각간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만명부인인데 곧 만호태후의 사녀(남편 이외의 관계로 낳은 딸)이다. 아버지는 숙흘종인데 또한 입종 갈문왕의 아들이다. 처음 만명과 서현이 야합하여 임신했는데 태후는 서현이 대원신통류이기 때문에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만노로 도망하여 무릇 스무달 만에 (유신공을) 낳았는데 꿈의 상서로움이 많았다. 진평왕은 사매(만명부인)가 괴로움을 받자 서현공을 만노(태수)에 봉하였다.
공은 자라자 태양과 같은 위용이 있었다. 태후가 보고 싶어하여 돌아올 것을 허락하여 보고는 기뻐하며 "참으로 나의 손자다" 하였다. 이로써 가야파가 마침내 받들었다. 호림공의 부제 보종공은 미실궁주의 막내 아들인데 아버지는 설원이었다. 유신공이 중망이 있다 하여 그 자리를 양보하였다. 이는 대개 (미실)궁주가 (만호)태후를 위로하기 위해 명한 것이다. 공의 나이가 15세였는데 커다란 도량을 가지고 있어 낭도들을 능히 다스렸다.
만호태후는 진평왕의 어머니이므로 만명부인은 진평왕의 여동생 뻘이 됩니다. 그래서 서현은 매제, 유신은 조카가 되는 셈이죠. 지금까지의 '선덕여왕'을 봐선 서현과 유신이 뭔가 미실의 반대세력이 될 듯한 기미를 보이지만 이는 화랑세기의 기록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일단 만호태후와 미실이 적대관계가 아니었고, 유신의 할머지, 즉 서현의 어머니인 아양공주가 미실의 직계 상사라고 할 수 있는 사도태후의 딸입니다.
이 드라마에는 사도태후나 만호태후가 전혀 나오지 않는데, 사실은 이 사람들이 모두 미실이 감히 넘보지 못할 절대적인 지위에 있던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당대의 권력을 손에 쥔 미실을 그리면서 미실이 고개를 숙이고 섬기는 '윗분'들이 나오면 곤란하겠죠.
게다가 서현 또한 미실 쪽의 추천으로 처음 출세를 합니다. 12세 풍월주 보리공 때의 기록.
(12세 풍월주 보리공은) 건복 8년(591년) 정월 (미실의 아들인) 하종으로부터 풍월주의 자리를 물려받아 서현랑을 부제로 삼았다. 서현랑은 아양공주의 아들인데 영특하고 통달한 기운이 있어 태상태후(사도-아양공주의 어머니)가 사랑하였다. 이에 하종공에게 명하여 전방화랑을 삼았고, 건복 2년에 (보리)공과 더불어 우방화랑이 되었다. 건복5년 하종공이 풍월주가 되자 (보리)공을 부제로 삼고 서현랑을 우방대화랑으로 삼아 공에게 속하도록 하였다. 이에 이르러 공이 서현랑을 부제로 삼고, 용춘랑을 우방대화랑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미실-하종과 서현-유신의 나이가 너무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미실과 서현이 비슷한 또래로 보일 지경이지만 사실은 서현은 미실의 아들인 하종이 자신의 휘하에 두었던 화랑인 만큼, 아들보다도 어린 세대인 것입니다. 유신은 손자뻘이란 얘기가 되겠죠. 아무튼 드라마와는 이렇게 해서 다른 길로 빠집니다.
게다가 미실의 아들인 보종은 유신을 믿고 따르는 사이로 기술되어 있는데,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유신은 자신의 다음 풍월주로 보종을 천거해 앉힙니다.
...(보종공은) 유신공을 엄한 아버지와 같이 두려워하였다. 유신공이 웃으며 "형이 어찌 아우를 두려워합니까"하고 묻자 "유신공은 바로 천상의 일월이고 나는 곧 인간의 작은 티끌입니다. 감히 두려워하고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하였다.
아울러 계속 등장하는 서라벌 10화랑은 그냥 작가의 창작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 10화랑과 비슷한 것이 '화랑세기'에 나오기는 합니다. 바로 칠성우(七星友)라는 것입니다. 14세 풍월주 호림공에 대한 기록에 이 말이 나옵니다.
알천, 임종, 술종, 염장, 유신, 보종, 호림이 칠성우를 이루어 남산에서 만나 놀았다. 통일의 기초가 공 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성대하고 지극하도다.
이들 일곱명 중 보종을 뺀 여섯명은 나중에 모두 재상이 되어 함께 국사를 논하던 사이라는 기록이 '삼국유사'에도 있습니다. 여섯 사람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산에서 호랑이가 뛰어 나와 다른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는데, 알천은 태연히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아 용맹을 뽐냈다. 그러나 그런 알천도 유신의 위엄 앞에서는 항상 양보했다... 이런 내용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죄송. 지금 책을 갖고 있지 않아서 결국 틀렸군요. 알천공으로 수정합니다.)
임종과 보종이 이미 10화랑의 일원으로 나오고 있으니 이 칠성우에 몇명을 더 추가해서 만든 것이 10화랑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 또 10화랑의 하나로 나오는 석품은 진평왕 말년 선덕여왕이 후계자가 되는 데 반대해 난을 일으킨 인물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 파트너의 이름이 칠숙이라는 것은 이미 지난번 포스팅에 소개한 적이 있었죠.^^
p.s. 아무튼 좀 막 가는 것 같기는 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은 여전히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천명공주 역의 신세경은 한국 아역사에 남는 새로운 기록을 남기겠더군요. 무슨 기록일까요? (정답은 내일 공개)
지금까지 선덕여왕에 대해 썼던 글들입니다.
드라마의 전체 개관. 첫번째 글
미실과 사다함의 옛 사연, 그리고 미실은 왜 사랑을 잊었나..
쉬어가는 글 - 칠숙의 정체에 대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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