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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씨가 또 책을 냈습니다. 꽤 여러 권 내셨는데 하고 찾아보니 벌써 여덟권째랍니다. 여덟번째 책의 제목은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더군요. 그런데 내용 중에서 수많은 연예계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끕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이 가는 사람은 아무래도 김혜자씨입니다.

김혜자 선생과 김수미 선생은 대한민국의 수많은 연예계 종사자들에게 모두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TV 좀 봤다는 사람이라면, 이들 두 사람이 언니 동생 하는 절친한 사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김혜자 41년생, 김수미 51년생. 10년 차이지만 두 분이 얘기할 때 보면 참 격의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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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전원일기' 시절 방송국에 나가 분장실에 들러보면(당시에는 여자 분장실에도 기자들이 드나들곤 했습니다.^) 작가 김정수 선생과 두 분이 뭔가 재미있는 얘기를 쉴새없이 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두 분 모두 제가 개인적으로 잘 안다고 하기는 힘들겠지만, 아무튼 두 분에 대한 얘기라면 들을 만큼 들었고, 볼만큼 봤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분의 사이에 대한 글은 오래 전에도 한번 쓴 일이 있는데, 필요한 부분만 한번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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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토크쇼에 김혜자와 김수미가 나란히 출연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김수미가 김혜자에게 물었다.
-수미: 언니,
김치 담글 줄 알아?
-혜자: (천진난만하게 눈을 깜빡이며) 몰라.
-수미: 김치 담가 보긴 했어?
-혜자: (벌써 웃음이 나와 허리가 꺾어진 상태) 아니, 안 해봤어.
-수미: 그런 사람이 무슨 한국의 어머니야? 난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웃겨 죽겠어.
김혜자는 김수미보다 나이로 10년, 연기로 9년 선배다. 그런데도 참 스스럼없다 싶었다.


대한민국에서 '국민 어머니'에게 이런 식으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달리 누가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만큼 두 분의 사이가 돈독하고, 또 서로를 잘 아니까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이번 책, '얘들아, 힘들면 연락해!'에서는 또 한번 두 분의 새로운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것도 굳이 요약을 하느니, 그 부분을 직접 옮겨 보겠습니다.

김수미 선생은 한때 연기자로서의 수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빙의현상으로 자살충동을 느꼈고, 연기 생활을 그만두겠다며 삭발을 하고 다니기도 했었죠. 이런 구구절절한 사연도 책에 나옵니다만, 아무튼 여기서 그런 얘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 건강을 회복한 직후의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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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만고 끝에 병세가 나아져서 다시 재기할 무렵,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모든 가족이 손을 놓고 틈만 나면 죽을 생각뿐인 나에게만 매달렸던 터라 금전적인 문제도 심각했다. 전엔 지점장이 맨발로 뛰어나오던 은행은 이제 지랄을 하고, 작가 김정수 선생님과 고두심, 나문희 언니에게 몇 백만원씩 꾸어 급한 일들을 해결하고 있었다.

사업을 수십년 한 남편은 어디서 일억도 구해오지 못했고 몇백억 자산가인 시누이도 모른체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언니가 "너 왜 나한테는 얘기 안 하니? 추접스럽게 몇백만 원씩 꾸지 말고, 필요한 액수가 얼마나 되니?" 하셨다. 언니는 화장품 케이스에서 통장을 꺼내시며 "이게 내 전 재산이야. 나는 돈 쓸일 없어. 다음 달에 아프리카에 가려고 했는데, 아프리카가 여기 있네. 다 찾아서 해결해. 그리고 갚지 마. 혹시 돈이 넘쳐 나면 그때 주든가" 하셨다. 나는 염치없이 통장 잔고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 모든 은행 문제를 해결했다. 언니와 나의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는 그렇게 못한다.

얼마 전 언니가 아프리카에 가신다고 하기에 나는 언니가 혹시 납치되면 내가 가서 포로 교환하자고 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당시 외국에선 한국인 선교사들의 납치 사건이 있었다). 만약 그런 사태가 일어나면 나는 무조건 간다. 꼭 가고야 만다.
(이하 생략)

네. 과연 누가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이 책에는 이 얘기 말고도 생판 모르는 모녀가 빨래 하기 힘들어 한다는 얘기를 듣고 세탁기를 사주는 얘기, 불우 아동을 돕는다고 덩치만한 옷 보따리 두 개를 들고 남대문 시장을 헤매던 얘기 등등 김혜자 선생의 남다른 마음 씀씀이에 대한 얘기가 줄곧 나옵니다. 하지만 참 이 '아프리카가 여기 있네' 얘기는 심히 감동적입니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사람을 사귀고, 자기 아닌 남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아무런 잇속을 따지지 않고 남에게 뭔가를 해 주고 하는 일이 점점 힘들어집니다. 아니,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느 정도 이상의 나이가 되어서도 네 맘 내 맘을 혼동하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당장 '철없는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곤 하죠. 심지어 많은 아버지들이 아들들에게 "우리 집 가훈은 '보증 서지 마라'다. 내가 혹시 서 달라고 해도 빚 보증은 서지 마라"라고 농담 섞인 교훈을 남긴다는 것도 이런 세태를 보여주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도 참 내 통장을 바로 꺼내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다시 한번 경악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제가 아는 바로 그 김혜자 선생이라는 게 새삼 놀랍습니다. 갑자기 올 연초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때, 약간 섭섭하게 해 드렸던 일이 갑자기 죄책감으로 다가오더군요. (선생님, 다음번엔 절대 그런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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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책에는 김혜자 선생 말고도 수없이 많은 동료들에 대한 일화가 소개돼 있습니다. 김수현 작가에 대한 서운함을 얘기하려다 과음해서 유인촌 장관의 차에 실례를 한 이야기, 의외로 대식가라는 황신혜 이야기, 부인 상을 당한 조용필에게 게장을 싸 가 밥을 먹인 이야기, 은근히 사위감으로 눈여겨 봤던 유재석 이야기 등등 다른 사람 같으면 이렇게 속시원히 털어놓지 못할 법한 얘기들이 잔뜩 담겨 있습니다.

p.s. 아무래도 책이 잘 팔리면 '개콘'의 한민관에게 좀 떼 주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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