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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서 경험한 마이클 잭슨과 관련된 이야기 두번째 편입니다. 지난 번에는 1996년 내한공연을 한달 앞두고 모스크바로 날아가 그와 사진 한 장을 같이 찍을 수 있는 영광을 누렸던 자랑 얘기였다면, 이번에는 마이클 잭슨이라는 빅 스타의 내한을 처음 경험한 대한민국의 난리법석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모스크바의 기억을 뒤로 하고 귀국해보니 난리가 났더군요. 사실 가기 전부터 손봉호 교수가 주도하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연합(줄여서 기윤실)이 마이클 잭슨의 공연을 타겟으로 삼아 공연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유인즉, 잭슨의 공연이 턱없이 고가라서 국부의 유출 혐의가 있는데다 잭슨이라는 자는 듣자니 어린이를 성추행하고 다니는 악한이라는데, 그런 악한이 벌이는 장사 판을 어떻게 국내에서 벌이느냐는 식의 준엄한 꾸짖음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난감한 얘기였는데, 사실 기독교계에서 진짜 잭슨의 공연을 반대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고 봐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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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골수 기독교 측에서는 이른바 '뉴에이지 운동'을 최고의 악으로 규정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구원으로 가는 길은 오직 기독교 하나 뿐이며, 타 종교와의 공존을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식이었죠. 뉴에이지라는 것은 좁게 보면 서구 사회에서 일회성으로 흘러가는 동양적인 정신수양에 대한 경도 정도였는데 이걸 사회 전반적인 반 기독교 운동이며 사탄의 책동이라고 규정하고 나선 사람들이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마이클 잭슨을 위시한 수많은 대중문화 스타들이 그 주역으로 지목됐죠. 특히나 아랍계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잭슨은 그야말로 악마의 자식이었던 겁니다. 이런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외계인이나 UFO 등 초자연현상에 관심이 많다는 것도 '사탄의 역사에 기대는 자'라고 낙인찍히기에 충분했습니다. 뭐 타 종교와의 화해를 주장한 바티칸 교황청마저도 '뉴에이지 운동의 주구'라며 비난하던 사람도 있었으니 이 정도는 장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국내에선 저 반대운동이 꽤나 먹혀 들었습니다. 몇몇 큰 교회에서는 목사님들이 한두번씩 이런 나쁜 공연을 자녀에게 보여서는 안된다는 설교까지 하셨다는군요. 이러니 주최측에선 분통이 터지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결국 태원예능 측은 미국의 흑인 인권단체 NAACP를 끌어들여 맞대응을 합니다. 흑인 성직자들이 이끄는 이 단체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반대하지 않던 잭슨의 공연을 한국에서 열지 못한다는 것은 명백한 인종차별로 볼 수밖에 없다"는 성명서를 전달합니다. 의외로 이것이 기윤실 측의 반대를 잠재우는 데 꽤 큰 역할을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당초의 예상을 뒤엎고 첫날 공연은 공연 며칠 전까지 3만여장이 판매되는 데 그칩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얘기지만, 일각에선 '왜 한물 간(!) 80년대 스타를 이렇게 고액의 출연료를 줘 가며 대형 공연장에 데려오느냐'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일부 매체는 공공연히 이런 논조의 기사를 싣기도 했죠. 그리고 이틀 전인 10월 9일, 잭슨이 입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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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이 문을 열기 전.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의 VIP 주차장 앞에 신문 방송 기자들이 진을 쳤습니다. 여기에 전경에다 기동수사대까지 동원됐고, 정작 팬들은 주변에 접근도 못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전용기로 입국한 잭슨은 VIP 채널을 통해 일반 이용객들과는 다른 길로 나오게 돼 있었던 거죠.

제법 쌀쌀해진 날씨 속에 주최측과 방송사는 모스크바에도 동행했던 탤런트 이제니를 환영 사절로 임명하고, 꽃다발을 들려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당초 생각으로는 모스크바에서 이제니를 리포터로 삼아 간단한 인터뷰 영상을 만들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저번에도 얘기했듯 그건 언감생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입국 환영 장면이라도 간단하게 그림 거리를 만들려던 거였죠.

하지만 한시간이 지나도 잭슨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뭐 전용기라는 게 사실 탄 사람 마음이죠. 어쨌든 기다리는 사람들만 오만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결국 예정보다 두 시간 늦어서야 잭슨은 마침내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별 경험이 없던 전경들과 기자들은 그 한 순간에 왁 몰려서 현장이 뒤집어졌습니다. 게다가 어디 숨어 있었는지 팬들까지 와락 그 자리를 덮쳤죠. 밖에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만 보고 있던 경비 담당 미스터 웨인(마이클 잭슨을 늘 따라다니는, 농구선수풍의 키 큰 흑인 아저씨입니다)은 인터뷰고 꽃다발이고 뭐고 잭슨을 0.5초만에 차에 휙 태우고 숙소인 워커힐 호텔로 달려가 버렸습니다.

정작 환영 사절이라고 두시간을 기다려 꽃다발을 들고 근처에도 가지 못한 이제니양(당시 겨우 17세였군요)만 속상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모스크바에 이어 두번째 허탕을 친 거죠. 몇몇 기자들은 차를 타고 그 뒤를 쫓아 워커힐 호텔까지 갔지만 기사거리라곤 나온 게 없었습니다. 잭슨은 꼭꼭 방 안에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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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땐 참 귀여움의 극치였는데... 국적문제만 해결됐다면 문근영이 됐을지도.)

본래 일정은 9일 낮 도착 - 저녁 강남역 타워레코드 방문 - 10일 김수환 추기경 예방 - 장애아동 보호시설 방문 등등의 사전 스케줄이 잡혀 있었지만 이런 스케줄은 모두 무시됐습니다. 그야말로 어린이의 마음인 잭슨이 '안 갈래' 하면 천하의 무슨 스케줄도 바로 취소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또 본인이 아니더라도, 그를 살아있는 신처럼 모시는 주변의 인물들이 "잭슨님이 피곤하셔서 안돼!"라고 한마디만 하면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10월10일 있었던 '도심 한복판 유턴사건'입니다. 10일 늦은 오후, 잭슨은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아동보호기관 송죽원을 방문하러 가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김상현 의원의 지역구라는 점도 큰 역할을 했을 겁니다. 아무튼 잭슨의 차량은 워커힐 호텔에서부터 취재차량을 주렁주렁 달고 서울 을지로를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차가 중앙선을 넘어 유턴을 하더라는 겁니다(이 장면은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 몇몇 경호원들이 뛰어내려 수신호로 차를 막고, 군사훈련을 하듯 능숙하게 차를 돌리더라는군요. 무슨 비상사태가 있나 해도 따라가던 취재차들도 일제히 유턴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난리를 친 차량은 유유히 한 피자집 앞에 섰고, 경호원이 피자집 안으로 들어가 피자 몇 판을 사오더랍니다. 확인 결과, 유턴 직전 잭슨이 차 안에서 길 건너편의 피자 간판을 보고 "피자 먹고 싶어"라고 말 한마디를 했답니다. 그러자 매니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차 돌려!"라는 명령을 내렸고, 신호고 뭐고 바로 중앙선을 넘은 것이죠. 잭슨의 주위 사람들에게 잭슨의 한마디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잘 볼 수 있는 계기였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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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당시 내한 기간 내내 그 주변 사람들의 '잭슨 보호'는 정말 엄청났습니다. 그걸 보고 절로 느낄 수 있었죠. 잭슨 하나가 먹여살리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고, 그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그를 꽁꽁 둘러싸고 아기처럼 보호하고 있으니, 세상 일들이 그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그가 정상적인 판단력을 갖기는 참 힘들 거라는 걸 말입니다.

쓰다 보니 내용이 또 너무 길어졌습니다. 정작 공연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못 했네요. 10월 11일과 13일 공연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넘기겠습니다.


이 앞뒤의 다른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맛뵈기로 - 서울 공연에서 부른 They don't care about us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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