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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한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중 첫번째 경우가 바로 1996년, 마이클 잭슨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모스크바에 다녀오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일 겁니다.

다 아시다시피 이해 10월 11일과 13일,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마이클 잭슨의 처음이자 마지막 단독 공연이 열렸습니다. 잠실에서의 동시 2회 공연은 한국 공연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규모입니다. 메탈리카나 케니G도 잠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는 2회 공연을 매진시킨 적이 있지만, 그래봐야 잠실 주경기장의 1회 공연에도 못 미치는 3만 정도의 관객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당시 잭슨의 공연은 5만석짜리 2회였죠.

이 초대형 공연을 유치한 태원예능(태원 엔터테인먼트의 전신)은 공연 홍보를 위해 한국 공연보다 약 4주 먼저 열린 모스크바 공연에 주요 언론을 초대하기로 결정합니다. '대체 마이클 잭슨의 공연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아야 기사를 써도 쓸 것이 아니냐는 얘기였죠. 요즘의 우스꽝스러운 환경에서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재수 좋게 제가 거기에 끼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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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의 공연은 새 앨범을 낼 때마다 연출이 변경됩니다. '배드'를 냈을 때에는 '배드 투어', 'Dangerous' 앨범을 냈을 때에는 '데인저러스 투어'가 되는 거죠. 그리고 1996년부터 97년에 걸쳐 전 세계에서 펼쳐진 투어는 바로 '히스토리 투어'였습니다.

히스토리 투어의 예비 공연은 1996년 7월16일 브루나이에서 열렸습니다. 브루나이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이클 잭슨의 공연을 무료로 진행하는 나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워낙 부자인데다 잭슨과의 친분도 두터운 왕가가 전적으로 모든 것을 책임지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의 투어에서 브루나이가 빠지는 적은 없었습니다.

본격적인 투어는 그해 9월7일, 체코 프라하의 레트나 공원(Letna Park)에서 12만7000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시작됐습니다. 이어 부다페스트, 부쿠레슈티, 모스크바, 바르샤바, 사라고사, 암스테르담(3회), 튀니지, 그리고 서울 공연으로 순서가 매겨져 있었습니다. 해외에서는 간혹 히스토리 투어 영상물을 볼 수 있지만 현재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유일한 마이클 잭슨의 공연 영상물은 1992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데인저러스 투어의 dvd입니다. 유독 이 공연만이 국내에 출시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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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태원예능 측에서는 10여명의 기자들과 관계자들을 이끌고 9월17일 모스크바 공연을 참관하러 떠났습니다. 이때 동행했던 사람들 중 대표적인 사람이 정태원 현 태원 엔터테인먼트 대표(한국 영화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제작하고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수입한 바로 그 분입니다)와 최규선 현 유아이에너지 회장입니다. 네. 최규선 게이트라는 이름을 만드신 바로 그 분이죠. 한때 '마이클 잭슨과 친하다는 것도 거짓말이다'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이건 1996년 당시 잭슨의 내한 과정을 지켜 본 사람이라면 얼토당토 않은 얘기라는 걸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그를 통하지 않고 잭슨 측과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죠.

여권을 보니 9월15일 출국해 19일 귀국한 것으로 되어 있군요. 모스크바가 페레스트로이카의 길을 걸은 것은 이미 꽤 전의 일이었지만 이때까지도 오랜 사회주의의 폐해는 만연해 있었습니다. 공항 통과가 가장 좋은 예입니다. 입국하는데 3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성질 급한 일행들 사이에선 "입국 심사원이 여권을 펴 놓고 자는 것 같다"고 얘기가 돌 정도였으니까요. "항의할수록 더 오래 걸린다"는 조언도 있었습니다. (나중 출국때는 4시간 전에 공항에 나와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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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여장을 푼 호텔 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멀쩡한 외관과는 달리 속은 엄청나게 낙후돼 있었습니다. 방 구석에 먼지가 남아 있었고 방에서 국제전화를 하려면 24시간 전에 신청하고 30불 가량을 선불로 내야 했습니다. 국제전화가 가능한 공중전화가 로비에 1대 있었는데 그것도 밤 9시 이후에는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잭슨이 묵은 켐핀스키 호텔은 기억나는데 이 호텔이 기억 안 나는 것도 직업병인가봅니다.)

낮에는 늘 전화기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죠. 이 밖에는 문서 한장 보내는데 약 10분 정도 소요되는 낡은 팩시밀리가 있었을 뿐입니다. 요즘도 유럽 지역으로 가면 인터넷이 느리다고 한국 사람들은 짜증을 내게 돼 있지만 이 시절만 해도 인터넷이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기술이었습니다. 현지 사정을 본 기자들은 '기사 송고 불가' 판단을 내렸고, '체류 기간 중에는 취재나 잘 하자'고 합의했습니다. 네. 그냥 마음 편히 공연을 보는데 전념하자고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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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의 공연이 열린 디나모 스타디움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모스크바에 도착하면서부터 기자들은 다들 잭슨과의 인터뷰를 원했지만 그것만은 이뤄질 수 없는 꿈이었습니다. 히스토리 투어 내내 잭슨은 단 한번의 인터뷰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잭슨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됐습니다. 호. 마이클 잭슨을 실물로 본다고?

일행은 디나모 스타디움의 한 방으로 안내됐습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스태프가 와서 3-4명씩의 일행을 데리고 다른 방으로 갔습니다. 그 방 역시 대기실이었고, 러시아에서 뭔가 한 가닥씩 하는 듯한 사람들(그냥 느낌입니다)이 우리 일행과 마찬가지로 줄을 서서 잭슨과의 접견(?)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사진 촬영이라고는 하지만 개인이 가져간 카메라로는 촬영이 허용되지 않았고, 잭슨 측이 촬영을 한 뒤 개개인에게 사진을 발송해 주겠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당시까지 국내에선 상상할 수 없었던 철저한 관리였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차례가 들어와 세 명이 잭슨 앞으로 갔습니다. 근접거리에서 잭슨을 본 느낌은 - 잭슨이 아니라 잭슨의 밀랍인형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보다 키가 작았고, 짙은 화장을 한 그의 모습은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냥 조각한 인형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낭비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가 묻더군요.

"Where are you from, Guys?"
"...Korea."
"Hi, Koreans, I love you."

네. 수만번 들었던 바로 그의 '알라뷰'였습니다. 그리고는 찰칵. 바로 다음 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와의 유일한 대면이었죠. "사진을 찍을 때에도 어떤 질문도 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사전 지침이 있었습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면 한개 정도는 질문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스태프는 그럴 틈을 주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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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당시 찍은 이 사진은 - 아마도 언제까지 기자 생활을 하게 될 지 모르지만 - 가장 값진 기념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자 중에는 취재원과 절대 사진을 찍지 않는 불문율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만, 과연 마이클 잭슨과 사진을 찍을 기회가 왔을 때 그걸 거부할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제 얼굴을 아시는 분들은 '?' 하실지도 모르지만 상당히 보정을 많이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잭슨의 얼굴을 보정하면서 제 얼굴에도 손을 좀 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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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0년 이상 기다려온 공연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됐습니다. 모스크바 공연의 한가지 특징이라면 'Stranger in Moscow'에 대한 호응이 남달리 뜨거웠다는 것(뭐 당연한 얘기죠), 그리고 'Smooth Criminal' 때 커튼 장비가 고장났었다는 것입니다.

무대 전체를 흰 커튼으로 가린 뒤 시작해 잭슨의 모습을 실루엣으로 보여주다가 윗부분의 흡입구로 커튼을 휙 빨아들인 뒤, 잭슨과 댄서들이 춤추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커튼은 올라가지 않았고, 잭슨과 댄서들은 허리 아래 부분만이 올라가다 만 커튼 아래로 드러났습니다. 대놓고 티는 내지 않았지만 스태프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일부는 무대 위로 올라와 커튼을 잡아당겨 보기도 했고, 결국 수동 장비를 이용해 커튼을 감아 올렸습니다.

공연을 보고 난 뒤 커튼이 올라가지 않은 게 연출이냐, 사고냐를 놓고 본 사람들 사이에서 이견이 오갔습니다. 의외로 '의도적인 연출'이라는 주장이 득세하더군요. 아무리 봐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결국 서울 공연 때 진실이 가려졌습니다. 연출은 무슨 연출. 커튼이 한방에 휙 빨려 들어가버리더군요. (네. 역시 교훈은 '다수결이 진리는 아니다' 였습니다.)

바로 그 커튼 신입니다. 역시 한방에 휙 올라갑니다.


아무튼 일행의 대다수는 공연을 보고 나서도 감정을 추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그의 무대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각종 영상을 통해 잭슨의 공연장에서 실신해 실려나가는 관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현장에 가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갈만한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올 스탠딩으로 관람에 나선 5만 관객들은 잭슨이 몸짓 하나를 보일 때마다 파도처럼 출렁였습니다. 9월의 모스크바는 이미 꽤 쌀쌀했지만 관중석의 열기에 날씨 따위는 아무 상관 없었습니다. 안전 문제로 제지당했지만 그 관중들 속에 뛰어들어 그 일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솟구치는 장관이더군요. 아마도 이런 스타디움 공연을 태어나 처음 봤을 때라 더욱 그랬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딱 한분. 그닥 문화적인 소양이 별로 없어 보이는 단 한 명의 기자만은 이 공연에 별 만족이 없어 보였습니다. 주최측의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별 감흥이 없으셨나요?" "네. 뭐 생각보다는 별로..." 도대체 그는 뭘 '생각'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보드카 잔을 기울이며 모스크바에서의 마지막 밤을 지새는 동안, 머리 속에서는 여전히 펑크 비트가 떠다녔습니다.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에게 어떻게 이 환상적인 공연의 모습을 전할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더군요.^^ (뻥이 아닙니다.) 아무튼 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서 서울에 온 마이클 잭슨을 따라다니던 얘기는 다음 번으로 넘기겠습니다.




이런 글을 쓰면서 천천히 그의 죽음이 다시 현실로 느껴집니다. 제 또래의 사람들에게 그의 이름이 어떤 의미인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겠죠.

다시 볼 수 없는 그의 모습입니다. 바로 96년 서울 공연때의 모습이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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