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MBC TV 드라마 '선덕여왕'을 보는 시청자들이 조금만 역사에 관심을 가지면 느끼는 첫번째 궁금증은 대략 비슷합니다. "도대체 미실은 몇살인거야?" 네. 분명 백발의 파파할머니여야겠지만 드라마 속의 고현정은 팽팽하기만 합니다. 보톡스도 없고 리프팅 기술도 없던 7세기 초, 대체 무슨 재주로 미실은 젊디 젊은 얼굴을 유지하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미실이 며칠 전 유신에게 "내 나이만 젊다면 내가 직접 너를 품고 싶다만..."이라고 할 때 사실 많은 분들이 좀 의아했을 겁니다. 실제 고현정과 엄태웅은 세살 차이군요. 충분히 직접 나서셔도 될텐데 딸도 아닌 손녀를 유신과 짝지워 주려고 하는 역할이라니...^^)

물론 나이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지금의 '선덕여왕'은 당장 무너져 버릴 드라마라는 걸 모르는 분은 아마 없을 겁니다. 28일 방송에서도 그냥 홍안의 청년인듯 하던 보종이 시집갈 나이의 딸 보량(그 시절엔 12-13세에도 결혼을 했다고는 하지만)의 아버지로 급변신하는 모습에 헉 소리가 나왔습니다. 이미 이런 얘기는 많이 한 터라 더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새로운 관심인물인 춘추의 활약(?)을 보다 보니 살짝 어이없어지더군요. 바로 춘추의 현재 나이 때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복잡한 설명은 필요 없습니다.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출생 연도는 604년, 즉 진평왕 26년입니다. 595년생인 김유신보다는 9세 연하이지만 출생연도가 알려지지 않은 덕만공주와는 몇살 차이인지 알 수 없습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김춘추는 어렸을 때 어머니 천명공주에 의해 수나라로 보내지고, 거기서 약 10년을 머물다 천명공주의 서거 소식을 듣고 귀국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수나라로 가기 전의 춘추의 모습, 그리고 돌아온 뒤인 현재의 춘추 모습으로 보아 대략 5-8세 정도에 가서 15-18세 정도에 돌아왔다고 하면 적절할 듯 합니다. (아, 물론 김춘추가 수나라에 유학갔다는 것은 드라마 속 설정입니다. 이런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수나라가 망한 것이 618년이라는 점입니다. 수나라는 612년 양제의 고구려 정벌군이 을지문덕에 의해 격파당해 곤경에 놓인 뒤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617년, 사실상 궤멸 상태에 이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춘추가 귀국한 것은 최소한 616년 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617년은 뒷날 당나라의 시조가 되는 이연의 반란군이 수도 대흥성을 함락하고 허수아비 황제인 공제를 세웠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마당에 인질도 아닌 신라의 왕자가 그렇게 한가하게 남아 있었을 리가 없죠(강제로 억류돼 있었다면 어머니가 죽었다고 쉽사리 귀국할 수 있었을 리도 없습니다). 더구나 28일 방송에서도 설원이며 보종이 "수나라 정세에 대해서도 얘기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덕담을 했건만, 이때에도 수나라가 망할 것 같다는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이들이 대화하고 있는 시점은 최대한 늦게 잡아 봐야 617년 상반기 이전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617년이라고 쳐도 춘추는 만 13세. 우리 나이로 열 네살. 그런데 하는 짓은 가관입니다. 미생과 함께 술맛을 논하는 가 하면(논하는 풍을 보니 이미 수나라에서부터 술깨나 마신 분위기입니다. 그 나이에...) 기방에 가서 미색을 논하고, 도박장에선 주사위를 던집니다. 그리고 이제는 보종의 딸과 결혼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뭐 워낙 옛날이니 조혼을 하고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훨씬 조숙했다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만, 그래도 만 13세에 음주에 기방, 도박이라는 건 좀 너무 했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선덕여왕' 제작진도 지금의 춘추가 만 13세라고 설정해놓고 드라마를 만들고 있지 않다는 건 대략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요. 당연히 세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춘추의 출생 연대와 수나라가 망한 해, 중국의 정세를 결합해 볼 때 춘추가 드라마 속에서 보이듯 10대 후반의 나이로 중국에서 귀국하려면, 그건 수나라로부터가 아니라 당나라로부터 귀국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긴 이 정도로 춘추의 나이가 흔들리는 것 보다는, 그냥 소년 화랑인줄 알았던 보종이 갑자기 보량이라는 다 큰 딸을 데리고 불쑥 나타나는 것이 더욱 황당무계할 수도 있습니다. 좀 어설프긴 합니다만, '판타지 선덕여왕'의 세계에서는 지금까지 줄곧 있어 온 일이죠. 어쩌겠습니까. 그냥 넘어갈 수밖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