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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주 전에 이 프로그램의 녹화가 있었는데, 밤 11시쯤 시작한 녹화가 무려 다음날 새벽 4시30분에 끝났다고 합니다. 물론 첫회다 보니 그렇기도 했겠지만 요즘 예능 프로그램들, 정말 사람 진을 다 빼놓는 듯 합니다. TV로 보실 때는 잘 모르시겠지만 소위 '예능인'이 되려면 체력이 필수입니다. 얼마 전 '강심장' 녹화 도중에 박가희가 졸았다는 게 이해가 갑니다. 어쩌면 '스타 골든벨' 찍다가 출연자 중 몇몇이 화장실 갔다 온다는게 당연한 얘긴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는 방송에 나오지 않았고, 녹화장에도 가지 않았습니다(저 녹화 시간 얘기를 듣고 정말 안 가길 잘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방송을 통해서 구하라양의 눈물을 편안하게 볼 수 있었던 듯 합니다.
이날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 '정말 모시기 힘들었습니다. 섭외가 준비의 90%'라는 자막이 뜨더군요. 사실 저도 섭외를 받았습니다. 고참급으로서 정리하는 역할을 맡아 달라는 얘기였지만, 솔직히 좀 겁이 났습니다. 초기 단계에서 제작진이 갖고 있는 생각이 좀 위험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처음 이 프로그램이 구상될 때의 분위기는 '한풀이'가 키 워드였습니다. 기자와 연예인은 흔히 적대적인 관계로 묘사되기 쉽습니다. 더구나 패널 구성도 가능하면 '기자들에게 한이 많을 듯한' 연예인 위주로 꾸미고(MC 중에 김구라와 신정환이 있다는 건 매우 상징적입니다), 방송의 주요 내용은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요'라는 식의 진행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진땀이 났습니다. '저는 현역 기자도 아니고, 요즘 현장을 잘 모른다'는 말로 일단 출연 요청을 고사하고, '방송의 방향이 이 쪽으로 잡히면 아마도 출연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조언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시청자 입장에서는 서로 치고 받는 방송이 아마 제일 재미있었을 겁니다. '대체 왜 맨날 연예인만 쫓아다니면서 괴롭히는 거냐'는 식으로 몰아부치기 시작하면 보는 분들은 즐겁겠지만 출연한 기자들은 죽을 맛이겠죠.
제작진은 '물론 갈등 상황의 묘사는 한 부분이고, 서로 같은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인 만큼 훈훈한 이야기도 많이 나올 것 같다. 그 쪽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오락 프로그램인 만큼 그게 될까 싶기도 하더군요. 아무튼 프로그램을 만드는 의의는 충분히 납득을 했으므로 '이러이러한 부분을 잘 고려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달하는 선에서 저는 물러나기로 했습니다(물론 협의 내용은 비밀입니다^^).
그러고 나서 제작진은 갖은 고생을 통해 20명의 기자들을 섭외했습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후배들과 낯이 생소한 후배들(물론 당연히 다들 저보다는 후배들이죠^)이 출연한 모습을 보면서 걱정이 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현장에서는 방송에 나간 것에 비해 대여섯배 많은 이야기가 오갔겠지만 기자들이 방송인도 아니고, 계속 '빵빵 터지는' 재미있는 이야기만 나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참 제작진도 고생이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같은 직업군의 인물들이 나오는 걸 보고 있으니 재미는 두배였을 겁니다. 'F4 기자'들을 보면서 '음...나도 예전엔...'(^^)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고, 계속해서 카메라의 초점이 되던 최재욱 기자(현장에선 '앙드레 기자'라고도 불렸다고 합니다)를 보면서 너무 희화화되는 게 아닌가 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업계의 호인으로 유명한 최기자는 평소 방송 경험이 많지 않은 걸로 아는데, 이날따라 좀 많이 긴장한 듯 했습니다.
예상대로 고참급의 기자들은 나름 신중한 모습으로 '방송을 재미없게' 하는 데 일조한 듯 했고(그래서 그랬겠지만 이 친구들은 방송에 별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창 때인 젊은 기자들은 각자 끼를 뽐내서 영상 세대임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이날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초등학교 동창 사이라는 이해완 기자와 환희의 이야기는 충분한 웃음을 뽑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 기자가 제목으로 뽑은 '첫사랑을 가수 H군에게 빼앗겼다'는 얘기는 알고 보니 좀 과장이었지만, 아무튼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해피 투게더 프렌즈'를 거쳐 '절친노트'로 이어지는 구성은 훌륭했습니다.
기자들의 재능(?)을 엿볼 수 있었던 '그 자리에서 제목 뽑기'는 어찌 보면 좀 장난 같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행위가 그냥 '제목 장난'만은 아니라는 것을 시청자들이 조금은 오해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네. 나이 먹은 뒤로 걱정만 늘고 있습니다). 제가 현장에 있었다면 한가인을 닮은 제국의 아이들의 막내 동준군을 보고 '연정훈 뜨악'이라는 제목을 뽑았을 것 같은데 마침 그걸 짚어낸 친구가 있더군요.^
마지막 부분, 김형우 기자와 구하라의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이 보기엔 어땠을 지 모르지만, 솔직히 제게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로 느껴졌습니다. 솔직하고 활발하던 구하라가 어느날 인터뷰 기피증이 걸릴 정도로 마음 고생이 심한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기자도 가슴이 아팠다는 얘기였죠.
연예인의 거의 모든 면을 다 볼 수 있는 사람은 매니저들이겠지만, 기자나 PD, 스타일리스트 등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각기 자기 시각에서 매니저들이 볼 수 없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늘 가까이서 보다 보면, 그리고 그들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시간을 두고 지켜보다 보면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되죠. 그래서 그들이 잘 될 때 같이 기뻐하고, 잘 못 될 때 안타까워하곤 합니다.
아무튼 이런 대목을 보다가 저도 옛날 일이 생각났습니다.
벌써 10년이 넘은 예전 일입니다. 연기력은 좀 떨어졌지만 남다른 외모와 몸매로 남성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던 신예 미녀 스타가 있었습니다. 특히나 CF 시장에서는 새로운 블루칩으로 눈길을 끌었죠. 처음 주목을 끈 것도 스포츠 의류 모델을 통해서였고, 그 뒤로 수많은 CF 제의가 몰려들었습니다. 그 매니저도 저와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에 이 친구가 쑥쑥 성장하는게 제게도 참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친구가 캔커피 모델로 발탁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확인해보니 맞더군요. 특기사항은 이번에 이 친구가 A 캔커피 모델을 맡게 됐는데 이 친구는 1년 전 쯤 B 브랜드 캔커피의 모델을 했더란 겁니다.
그래서 '신예 OOO, 캔커피 브랜드 싹쓸이'라는 식의 기사를 만들었습니다. 항상 기사는 '전에 없던 일, 새로운 일'을 내세워야 하기 때문인데, 누구든 캔커피 모델을 하는 건 흔한 일이지만 한 모델이 두 브랜드의 캔커피 모델을 한다는 건 매우 드문 일입니다. 요즘은 통신/전자 업계 라이벌 회사들끼리 상대 모델을 빼앗아 오는 경우도 있지만, 특히나 그 시절에는 한 모델이 같은 업종에서 두 브랜드의 모델을 하는 건 신기하게 여길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사가 나가고 나서 난리가 났습니다. 얼른 기사를 좀 '내려 달라'는 겁니다. 인터넷도 부실하던 시절이니 기사를 없애는 건 문제가 아닌데 대체 왜? 알고 보니 광고주 측에서 난리가 났다는 겁니다. 듣고 나니 어이가 없더군요. 광고 모델을 기용할 때에는 후보자들이 그동안 어떤 광고에 출연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기본 상식인데, 같은 업종의 모델로 나섰다는 사실을 모르고 일을 진행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얘기였거든요.
설명인즉 모든 사람들이 OOO의 가능성을 높이 보고 모델로 기용하는 데 OK를 했고, 다른 브랜드 모델을 했다는 사실에도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반응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오너급에서 이 사실을 모르고 결재 도장을 찍은 사람이 있었다는 겁니다. 당연히 뒤늦게 '왜 남의 모델을 쓰느냐'는 반응이 나오는 바람에 책임자가 문책을 당하는 등 난리 법석이 벌어졌다는 겁니다. 당연한 결과로 모델 기용은 '없던 일'이 돼 버렸습니다.
그야말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됐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연예인과 동생같은 매니저의 일이었고, 정말 잘 포장해주고 싶은 일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제가 쓴 기사 한 줄 때문에 몇천만원이 그냥 허공으로 날아간 겁니다.
이 일을 계기로 제가 뼈저리게 느낀 게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한 일이 연예인들에게는 수천만원, 수억원의 차이가 될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당연히 여러 차례 느꼈던 일이지만 이렇게 피부와 와 닿은 적은 없었습니다.
아무튼 김형우 기자와 구하라의 사연도 그랬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기자와 연예인 사이에 이런 정도 사연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예전과 지금은 일하는 분위기도 달라지고 환경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지만, 그래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하는 일인데 어떻게 정이 쌓이지 않겠습니까. 원로급 기자와 연예인으로 가면 더 많은 얘기가 있을 겁니다. 앞으로 연예 기사를 보시는 분들도 이런 면을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진짜 기자'의 기사에 한정된 이야기입니다. 하는 일이 TV 감상문 쓰기이거나 남의 기사 베끼기인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가 있을 수는 없겠죠.)
다시 제 회상으로 넘어갑니다. 여러 차례 본인과 매니저에게도 사과를 했고, '앞으로 더 벌도록 도와주면 된다(?)'는 격려도 받았지만 아무튼 이 일은 여전히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행히(?) 그 친구는 톱스타로 군림하고 있고, 요즘은 연기력으로도 좋은 평을 얻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송구스럽습니다.
한고은씨, 그땐 정말 미안했어요.
P.S. 김창렬의 이 '에라이'가 사실은 'L.I.E'라는 DJ DOC의 노래라는 걸 제작진이 몰랐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 노래, 정말 가사 적나라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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