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실이' 배삼룡씨가 고인이 되셨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사망과 비교하기는 좀 그렇지만, 어쨌든 이 분이 고인이 되셨다는 소식 역시 한 시대를 마감하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40대 이상 되시는 분들이라야 '배삼룡'이라는 이름에 금세 반응할 수 있겠지만 1980년 언저리까지 이 분의 명성은 절대적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의 '개그 콘서트'가 KTX라면 당시의 '웃으면 복이 와요'는 통일호나 무궁화호 수준의 속도였겠지만 파급력 면에서는 그 반대 방향으로 비교가 안 될 정도였을 겁니다.
그 시절 생각만 하면 다들 기억나시는 이름들이 있을 겁니다. '영원한 막둥이' 구봉서, 최강 콤비 남철-남성남, '땅딸이' 이기동, '비실이' 배삼룡, 그리고 당대의 미녀 코미디언 권귀옥, 미남 이대성 등이 MBC를 지켰고 '살살이' 서영춘, '합죽이' 임희춘, 또 코믹 댄스의 이상한 - 이상해 콤비, 그리고 미남-미녀였던 배일집 - 배연정 콤비가 TBC의 '고전 유모어 극장(뒷날의 유모어 극장)'을 지키던 시절입니다.
아마 제가 이 시절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싶군요.
70년대 최고의 코미디언은 누구일까요. 아무래도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가장 '웃겼던' 사람은 배삼룡과 이기동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콤비 플레이를 보여준 기억은 별로 없지만, 한마디로 당대 코미디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만 했습니다. 특히나 이기동의 '쿵자라락작 삐약삐약, 닭다리잡고 삐약삐약'은 그 시절의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유행어였습니다.
잘 알려진대로 배삼룡 선생은 코믹 바보 연기의 거성이었습니다. 슬랩스틱을 가미한 이 분의 바보 연기는 당대에는 감히 비교할 사람이 없었고, 후대로 내려오면서 맹구 이창훈과 영구 심형래가 그 맥을 이었다 할 수 있겠습니다.
한때 이기동씨는 "배삼룡씨는 연기가 아니라 진짜 대사를 못 외웠다. 하지만 그 틀리는 방향이 너무 기상천외였다. 너무 웃겨서 앞에서 연기 하는 사람이 연기를 못 할 정도로 웃겼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한 기억이 납니다.
((당대의 미녀 코미디언 권귀옥과 '땅딸이' 이기동. 두 분의 신체적 특징 때문에 참 많이 콤비로 등장했더랬습니다.))
이 분이 한창 인기를 얻던 시절, 갑자기 '삼룡 사와'라는 제품이 나타났습니다. 배삼룡씨가 직접 광고 모델로 나오는 CF가 방송됐죠. '사와'는 요구르트에 과즙을 배합했다는 음료였습니다. 아마도 일본에 원류가 있는 제품으로, '사와'라는 이름은 사우어(SOUR)의 일본식 발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삼룡식품(?)이라는 이름으로 주 제품은 '삼룡 사와'와 '삼룡 요구르트'였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땅딸이 요구르트'라는 제품도 등장했습니다. 이건 당연히 이기동씨의 제품이었죠. 물론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두 제품 모두 곧 시장에서 볼 수 없게 됐습니다. 두 분 모두 사업에는 별 재능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 이기동씨는 사업 실패 때문에 법정 시비에까지 말려들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 '삼룡 사와'나 '땅딸이 요구르트' 같은, 들으면 절로 웃음이 나오는 상표명이야말로 당시 희극인들의 비극을 대변해주는 요소라고 하겠습니다.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코미디언을 무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지금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죠. 수입 면에서도 다른 분야의 연예인들에 비해 매우 불리한 조건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개그맨은 떠도 가난하다'는 연예계 속설을 낳았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배삼룡이나 이기동 처럼 당대 코미디의 에이스들도 '노후를 위해' 익숙하지 않은 사업에 투신했다가 몸서리를 겪은 것입니다.
잠시 사업으로 브라운관에서 떠나 있던 두 분은 얼마 뒤 다시 방송에 복귀했습니다. 저만 해도 꽤 어릴 때라 기억은 선명하지 않습니다만, '역시 배삼룡', '역시 이기동'이라는 평가였습니다.
이 분들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한 구석에서는 '개그맨'이라는 이름의 '젊은 피'들이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고영수, 전유성을 필두로 임성훈, 최미나, 송영길 등이 등장한 것이죠. 그리고 나서 10년 사이, 이주일이라는 코미디계의 마지막 슈퍼스타를 뒤로 한 채 '개그맨'이란 이름이 '코미디언'이라는 이름을 대체하게 돼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코미디'라는 말이 아예 '만담'이란 말처럼 저 역사속으로 잊혀져가게 되었죠. 이 과정에서 그 앞 세대와 뒷 세대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겨났습니다.
그래도 세상에 좋아지다 보니 아직 배삼룡씨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동영상이 있군요. 1998년 KBS 2TV 추석 특집 '그시절 그 쇼'라는 이름입니다. '촌놈의 콧구녕은 바람구멍으로 뚫어놓은 줄 아냐'는 대사는 왕년의 서민적인 분위기 그대로입니다.
한때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희극인이 병상에서 외롭게 투병중이란 소식도 꽤 오래 전부터 있었고, 병원비를 둘러싸고 그리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도 오갔다는 게 참 안타까울 뿐입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셔서, 그곳에서도 늘 웃음 속에서 행복하시길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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