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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지붕뚫고 하이킥'이 이틀간에 걸쳐 정음의 학력 위조 문제를 조명했습니다. 결국 스스로 자신의 학력 앞에 떳떳하지 못했던 정음이 준혁(윤시윤)의 가족에게 자신이 서울대생이 아님을 고백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받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졌죠.

사실 '지붕킥'이 방송되기 시작할 무렵부터 정음이라는 존재는 '지붕킥'이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안 그래도 '88만원 세대'에 대한 비관과 절망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시기. 과연 이 시기에 '어디 가서 학교 이름도 댈 수 없고, 졸업해 봐야 취직도 안 되는' 대학생이 무시할 수 없는 숫자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정음의 졸업식 관련 에피소드에서 다뤄진 서운대/서울대의 문제는 지난 20여년간 한국 위정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엉망으로 만든 한국의 대학에 대한 통렬한 비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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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대'라는 학교 이름은 그저 '나와도 서운한 대학'이라는 의미와 '서울대'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정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비슷한 이름의 학교도 있지만 물론 그 학교를 겨냥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지붕킥'에서 '정음의 고백'에 초점을 맞추곤 합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과연 대학이란 무엇인지, 우리나라에서 대학이라는 과정이 진짜 학교로서 기능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는 겁니다.

지난 2006년 이후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80-85%에 달합니다(전문대 포함). 비슷한 시기 일본의 대학 진학률은 45%대. 한번도 50%를 넘은 적이 없습니다. 대학 진학률이 80%라는 것은, 대학을 안 가는 사람이 사실상 거의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여기서 한국 위정자의 안이한 선택이 드러납니다. '대학 가기 힘들다고? 괜찮아. 대학을 늘려 줄게. 자. 이제 아무나 다 대학 갈 수 있어. 행복하지?' 그럴 리가 없습니다. 대학을 나왔으면 누구나 대졸자에 걸맞는 직장과 대우를 원합니다. 하지만 '아무나 다 가는 대학'과 대학생이 늘어난다고 해서, 그 사회가 자동으로 대졸자에 맞는 일자리를 늘려 줄 수 있는 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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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되고 있는 일자리 부족, 물론 경제난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하겠지만 무리하게 늘려 놓은 대학생과 대졸자 수야말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학생과 학부형들도 너무나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학진학률 80%라는 건 성적순으로 얘기하면, 하위 20%를 제외한 학생은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얘기일 겁니다. 심지어 몇몇 대학들은 출산률 저하로 인해 줄어든 고3 수험생 수에 맞추기 위해 이미 정원 구조조정을 하고 있고, 입학하는 학생이 모자라 학교끼리 통합을 꾀하기도 합니다. '대학 광고'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한마디로 '대학생 명함'을 따는 건 그야말로 누워서 떡먹기가 돼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고3 수험생들은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공부합니다. 대학만 나와서 다 똑같다면 왜 그렇게 기를 쓰고 공부할까요? 대학만 가면 다가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 간단한 진리를 정책 담당자들은 대체 왜 몰랐을까요. (물론 요즘 드라마 '공부의 신'에 대해 쏟아지는 이상한 비판들을 생각하면 정책 담당자들 외에도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는 듯 합니다만...)

저는 '서운대의 비극'과 '황정음의 비극'은 공부 안 하고 놀다가 좋은 대학을 못 간 황정음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서운대라는 학교가 존재할 수 있게 한' 교육정책 담당자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대학생이, 누구나 대졸 학력자가 될 수 있다'는 헛된 꿈 속에 사라진 수조원의 등록금은 대체 누가 책임져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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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실제 사회에서는 '서운대 출신'인 정음이라도 기대 이상의 실적(예를 들어 준혁의 성적 향상)을 낸 경우에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습니다. 실적을 냈는데도 학교 이름 때문에 차별받는 경우는 현실에선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겁니다. 다만 '실적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데에선 차이가 있을 수 있겠죠.

(이건 좀 쉽게 얘기하기 어려운 문제긴 합니다. 다만 일반적인 울대생들이 서울대에 가기 위해 들인 노력과 시간, 재학중에 하는 노력의 합계를 생각해 볼 때 '내가 서울대를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한 불이익'을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 과연 그들 이상의 노력을 투입한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좀 의문입니다.)

끝까지 정음을 용서하지 못하는 현경의 태도는 정음의 실적을 인정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자기만 빼고 대부분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은폐의 공범이 됐다는 데 대한 서운함, 그리고 '성적이 올랐는데도 갈 수 있는 대학이 서운대'인 준혁에 대한 분노가 합쳐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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