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습니다. MBC TV '지붕뚫고 하이킥'의 지훈-정음 커플이 맺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제작진은 이미 5개월 전에 시청자들에게 통보해 두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이별을 암시'하는 차원이 아니라, '이뤄질 수 없는 사이'라고 확인해 둔 상태였습니다. 단지 너무 오래 전 일이라서 우리가 잊고 있었을 뿐입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지훈-정음 커플의 운명은 5개월 전, 바로 지난해 10월9일 방송된 '지붕킥' 24회에서 이미 결정돼 있었습니다. 말이 안 된다구요? 5개월 전이면 '지붕킥' 상으로 두 사람이 서로 사귀기도 전의 일이라구요? 하지만 분명히 사실입니다. 두 사람은 이미 이뤄질 수 없는 사이라는 게 규정되어 있었던 겁니다.
기억이 안 나시는 분들을 위해 재현해 드립니다. 갑자기 이 생각이 나서, 저도 다시 확인해 보느라 다운로드 받는데 500원 들었습니다.
이렇게 상상 속에서는 결혼식도 올린 두 사람이지만, 이건 그냥 상상이었을 뿐이죠. '지붕킥'은 가끔씩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곤 합니다. 얼마 전 해리와 세호의 결혼 장면(15년 후)이 그랬고, 더 전에는 20년 후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지난해 10월9일에 방송된 24회는 두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하나는 해리의 간계 때문에 떡볶이를 먹고 혼자 떡볶이집에 남게 된 신애가 돈을 내지 못하고 언니 세경에게 구원을 청하면서 벌어지는 '유괴 소동' 에피소드(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무슨 일에든 광수를 의심하는 자옥에 관련된 에피소드입니다.
자옥은 식탁에서 발냄새가 나도 광수를 의심하고(나중에 다른 에피소드에도 나오지만 발냄새의 주인공은 줄리엔입니다), 냉장고에 넣어 둔 음식이 없어져도 광수를 의심합니다. 그러다 광수가 자신을 덮치려는 걸로 착각해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때려 기절시키기도 합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결말은 세월이 흐른 2029년, 자옥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광수가 문병을 온 장면입니다. 이미 백발의 할머니가 된 자옥 앞에 역시 중년의 광수가 나타납니다. (물론 20년 정도 지나 봐야 광수는 40대 중반일텐데 너무 노신사처럼 묘사된다는 흠이 있지만, 아무튼 이건 그냥 넘어갑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서도 자옥은 광수가 반가워 손을 잡자 몰래 손 세정기로 손을 소독합니다. 그리고 머리핀을 머리에 끼웠다는 사실을 잊고, 머리핀이 보이지 않자 광수가 가져간 것으로 판단하고 경찰에 신고한다는 얘기였죠.
대체 이 이야기가 왜 지훈-정음 커플의 미래와 관련이 있는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한 설명은 지금부터 들어갑니다. 자옥을 오랜만에 본 광수는 자옥에게 질문합니다.
광수: 정음이나 줄리엔하고도 연락하세요?
자옥: (손 세정기에 손을 닦으며) 걔들이랑 연락한지 오래됐다.
그렇습니다. 24회때처럼 자옥과 순재가 그냥 그런 사이일 때에는 아무 상관 없지만, 자옥과 순재가 결혼해 이미 한 집에 살고 있는 이상, 줄리엔은 몰라도 정음은 지훈과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면 모를 수가 없는 사이인 겁니다. 이미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옥이 '정음이랑 연락한지 오래됐다'는 것은 지훈과 정음이 2029년에는 이미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얼마 전 이별을 맞은 지훈과 정음이 다시 만나 사랑을 속삭이더라도, 결혼에는 이르지 못하거나 결혼하더라도 2029년 이전에는 갈라서게 된다는 얘기일수밖에 없습니다.
(제작진은 과연 내일 방송될 '지붕킥'의 엔딩을 만들 때 이 에피소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잊어버리고 있는 걸까요. 저도 사실 그게 궁금합니다.)
물론 굳이 설명을 달자면 지훈과 정음이 결혼해 살고 있지만 자옥과의 사이가 벌어져서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자옥과 순재가 그 사이 무슨 일이 생겨서 이혼한 사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옥이 광수와 아무 얘기도 길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연락 안된다'고 말을 잘라 버린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네. 물론 구차한 변명입니다.)
아무튼 그냥 웃자는 얘기인 건 분명합니다. 다만 그냥 지훈-정음 커플이 다시 맺어지는 해피엔딩의 경우에는 5개월 전에 방송된 24회의 그 대사 한마디와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는 - 이런 걸 '옥의 티'라고 할 수 있겠군요 - 가벼운 딴지일 뿐입니다. 뭐 그렇다 해도 어쩐지 해피엔딩이었으면 하는 바람은 어쩔 수가 없군요. 부디 지훈이 정음의 가문을 다시 일으켜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얘기가 나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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