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탈 사이트에서 유명 인사의 이름을 검색하면 생몰 일자가 함께 뜹니다. 현재 인기 정상을 달리고 있는 유명인들은 대개 왼쪽, 출생일자만이 표기될 뿐이지만 이미 사망한 사람의 경우에는 사망한 날짜가 함께 뜨기 마련입니다.
최진영, 1970-2010. 바로 어제, 최진영이라는 이름 옆에도 출생 연도와 사망 연도가 함께 떴습니다. 이제 막 중년의 원숙함이라는 글자를 붙일 시기인 그가 이렇게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건 참 한스러운 일입니다. 망자에게는 그만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주위 사람들에겐 청천벽력같이 안타까운 일일 뿐입니다.
그가 이 세상에 남긴 수많은 작품들, 수많은 그의 흔적들을 돌이켜 보다가, 문득 그의 가수 데뷔 히트곡인 '영원'이 생각났습니다.
1999년, 당시 최진영은 이미 배우로서는 중견급의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데뷔작은 1990년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로 되어 있지만 실제 CF 모델 활동은 그보다 훨씬 빨랐고 - 최진영이 늘 하던 얘기 중에 '누나보다 연예계 데뷔는 내가 더 빨랐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 1993년 MBC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죠. 이후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합니다.
하지만 최진영이 가수 활동의 꿈을 갖고 있었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었습니다. 언제나 동생의 일에 적극적이었던 최진실은 이 꿈을 이뤄주기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고, 마침내 두 남매는 함께 당시 최고의 음반 제작자 중 하나였던 강민 대표의 두손기획으로 이적합니다. 강민 대표는 김정민을 최고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올려 놓은 실력있는 제작자였습니다.
('우리들의 천국' 출연 당시의 최진영. 김찬우-장동건과 함께 당시에는 최고의 아이들 스타였습니다. 저때는 정말 어렸지만, 그 뒤에도 타고난 동안이었죠.)
물론 최진영이 이미 상당 수준의 인기를 갖고 있었지만 이것이 가수 데뷔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는 힘들 상황이었습니다. 이전까지도 류시원에서 장동건까지 수많은 배우들이 음반을 냈지만 김민종 외에는 양쪽 모두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다고 볼만한 사람이 그리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진영 가수 만들기 프로젝트는 과감하게 '얼굴 없는 가수'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최진영이란 이름 대신 SKY라는 예명을 쓰고, 가수에 대한 부분은 베일로 가려 놓은 채 노래와 뮤직비디오로 승부를 건 것이죠. 이 뮤직비디오는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될만한 대작이었습니다. 1년 전인 1998년 이병헌 김하늘 조민수 등이 출연한 대작 '투 헤븐'에 이어 차인표 장동건 김규리 정준호가 주연하고 미국에서 촬영된 작품이었죠.
무려 8분40초짜리 대작입니다.
'가문의 영광' 시리즈의 김영찬 작가가 스토리를 쓴 뮤직비디오 '영원'은 어려서 각각 다른 가정으로 입양된 한국인 형제가 서로를 모른 채 성장해 FBI와 범죄자로 대면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지만 이중 범죄자인 장동건의 패거리 중 하나로 이서진이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이 줄거리는 뒷날 '카인과 아벨'이란 제목으로 드라마화가 추진되기도 했는데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초기 아이디어가 여러번 뒤집혔고, 결국 정작 소지섭-신현준 주연으로 드라마화 됐을 때에는 전혀 다른 모습의 메디컬 드라마가 됐었죠.
지금 다시 보면 지금보다 훨씬 앳되게 보이는 장동건의 모습, 그리고 갓 20대가 된 김규리의 파릇파릇한 모습이 색다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 뮤직비디오는 공개된 뒤 열광적인 성원을 얻습니다. 드라마틱한 줄거리의 뮤직비디오에 강렬한 록 비트, 그리고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랩과 발라드의 결합이 듣는 이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죠.
물론 관계자들은 SKY의 정체가 최진영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일반 대중들 사이에선 김정민이나 박상민, 조장혁을 후보로 놓고 열띤 대화가 오갔습니다. 심지어 한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서는 'SKY의 정체를 밝히겠다'며 카메라를 앞세우고 두손기획 사무실에 취재진을 파견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최진영이 SKY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 인기는 더욱 치솟았습니다. 약간 왜소한 체구의 최진영은 늘 선글래스를 착용해 카리스마를 보충했고, '영원'이 수록된 최진영의 데뷔 앨범은 60만장 이상 판매됐습니다. 아마도 최진영이 데뷔 후 가장 빛났던 시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영원' 뮤직비디오를 보다 보면 방황하던 장동건이 자살을 시도할 때 김규리가 등장해 그 손을 잡아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불행히도 최진영에게는 그 손을 잡아 줄 사람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일찍 갔지만 '영원'이란 노래는 여전히 남아 그를 기억하게 한다는 사실이 새삼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런 방법으로 고인을 추모하는게 제게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느껴집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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