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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추노'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초반 만큼의 인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열혈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드라마인 것은 분명합니다. 드라마 속 오지호나 장혁의 인기 못지 않게 원손 석견 역을 연기하고 있는 김진우 어린이의 인기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더군요.

이 원손 아기씨는 아시다시피 비명에 간 소현세자의 세 아들 중 막내인 석견(石堅)입니다. 아버지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데 이어 어머니 강빈은 역모를 꾀했다는 이유로 사약을 받아 세 아들은 모두 고아가 된 상태에서 1647년, 제주로 귀양을 떠납니다. 당시 맏이 석철(石鐵)이 12세, 둘째 석린(石麟)이 8세, 그리고 막내 석견은 불과 4세입니다. 하지만 어린 이들 형제에게 유배 생활이 어찌나 고된 것이었는지 불과 1년만에 위로 두 형들은 죽고 석견 혼자 살아남습니다. 그 밖에 두 딸이 있었지만 이 시기의 기록은 없습니다.

'추노'는 바로 이 시기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막내 석견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살아남아서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영의정 이경식(아마도 김자점을 형상화한 인물로 보이는)에 의해 송태하, 대길 등과 함께 죽음을 맞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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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석견은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그건 아버지 대신 왕위에 올라 효종이 된 숙부 봉림대군의 결단에 의한 것입니다.

이럴 때 가장 편리한 것은 조선왕조실록이죠. 핵심적인 기록만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먼저 1647년의 기록입니다.

인조 48권, 25년(1647 정해 / 청 순치(順治) 4년) 5월 13일(계축) 1번째기사
소현 세자의 세 아들을 제주에 유배시키다  

소현 세자(昭顯世子)의 세 아들인 이석철(李石鐵)·이석린(李石麟)·이석견(李石堅)을 제주에 유배하였다. 처음에 의금부가 석철은 제주에, 석린은 정의(旌義)에, 석견은 대정(大靜)에 유배하자고 청하였다. 당시 석철은 12세, 석린은 8세, 석견은 4세였다. 상이 하교하기를 “한 곳에 정배하여 서로 의지해서 살도록 하되, 내관(內官)과 별장(別將) 등을 교대로 지정해 보내 외부인들이 접촉하지 못하게 하고, 세 고을에 정배(定配)된 사대부는 모두 다른 섬으로 옮겨 정배하라.” 하였다. 이에 홍무적은 남해현(南海縣)으로, 신득연(申得淵)은 진도군(珍島郡)으로 이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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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중에 석견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후 1649년, 인조가 승하하고 봉림대군이 왕위에 오릅니다(효종). 효종은 즉위 즉시 정권을 농단하고 있던 김자점의 무리를 처단하고 왕권을 강화합니다. 그런 효종도 즉위 10년이나 지나서야 석견을 유배 간 죄인에서 왕자의 자리로 복권시킬 수 있었습니다. 1659년의 기사입니다.

효종 21권, 10년(1659 기해 / 청 순치(順治) 16년) 윤3월 4일(갑자) 2번째기사
소현 세자의 아들과 딸들을 군과 군주에 봉하라고 하교하다 
 
상이 하교하였다.
“소현 세자의 1남 이백(李栢)은 경선군(慶善君)을 증(贈)하고, 3남 이회(李檜)는 경안군(慶安君)으로 하라. 그리고 1녀에게는 경숙 군주(慶淑郡主)를 증(贈)하고, 2녀는 경녕 군주(慶寧郡主)로 하고, 3녀는 경순 군주(慶順郡主)로 하라.”

이회가 바로 석견입니다. 지난주 '추노'에서 송태하가 짝귀에게 석견의 이름을 '회'라고 가르쳐주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그런데 왜 10년이나 걸렸을까요. 당시의 정치 상황으로 볼 때 소현세자의 아들에 대한 입장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남 대신 차남인 효종이 왕위에 있는데 장남의 아들 - 다시 말해 인조의 종손 - 이 살아 있다는 것은 후계구도를 복잡하게 하고, 효종의 왕권에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분명 여기저기에 소현세자의 복권을 명분으로 하는 반란의 위협이 있고, 그 위협이 존재하는 한 석견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역모에 가담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죠. (뒷날 효종이 죽고 현종때 벌어진 예송논쟁을 생각하면 당연한 얘깁니다.)

그런 상황에서 효종이 조카를 역적에서 다시 왕손으로 복권시킨 것은 대단한 용기를 발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효종은 역모에 휘말린 배다른 동생들을 용서했고, 여기에 하나 보태 석견까지 복권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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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석견, 즉 경안군은 1643년에 태어나 4세때인 1647년 귀양을 갔고, 12년간 귀양살이를 한 뒤 만 16세 때인 1659년에야 왕자로 복권됩니다. 장가도 가고, 마음 편히 살 수 있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리 장수하지는 못합니다.

현종 11권, 6년(1665 을사 / 청 강희(康熙) 4년) 9월 18일(신축) 4번째기사
경안군 이회의 졸기  
 
경안군(慶安君) 이회(李檜)가 졸(卒)하였다. 경안군은 곧 소현 세자(昭顯世子)의 아들이다. 소현의 자녀(子女)가 모두 죽었고 유독 경안군만이 살아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온천에 목욕하러 갔다가 병이 나서 실려 돌아와 죽었다. 상이 매우 애도하여 정원에 하교하기를,
“경안군의 상사(喪事)는 뜻밖에 나온 것이어서 내가 매우 비통하게 여기고 있다. 아, 선조(先朝) 때부터 돌보아 기르고 어루만져 보살펴 왔으니 진실로 후세 자손들은 의당 이를 본받아야 한다. 말과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눈물이 옷깃을 적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겠다.”

1643년에 태어나 1665년에 사망. 고작 만 22세에 숨을 거두고 마는 것입니다. 안된 일이긴 하지만 효종 시대의 중신들은 경안군의 죽음을 맞아 겨우 한숨을 내쉬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의 조정에서 경안군이라는 존재만큼 효종의 왕위를 불안하게 한 존재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경안군은 죽었지만 임창군 형제를 후사로 남깁니다. 그리고 '소현세자의 적통'이라는 핏줄은 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숙종 8년(1679년), 서울 장안에 흉서가 나붙고, 그 흉서에는 '경안군의 아들 임창군이야말로 왕이 되어야 할 성인'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행히 숙종이 "반도들이 마음대로 임창군을 거론했을 뿐, 임창군이 연루된 증거가 없다"고 막아 임창군은 반란의 수괴로 지목되는 비운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임창군의 아들 밀풍군은 영조 초 이인좌의 난 때 반란 세력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는 바람에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밀풍군이 직접 난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왕권에 도전한 죄를 뒤집어쓸 상황이었고, 결국 밀풍군은 자결합니다. 이것이 소현세자의 후손들, 즉 왕이 되지 못한 왕손의 운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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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살펴볼 때 효종의 결단은 인간적으로 매우 훌륭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효종대왕 행장에 보면 왕이 대신들에게 경안군의 복권을 주장하면서 한 말이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석견에게)작호(爵號)를 써서 내리도록 하겠다. 오늘 첨의(僉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매우 기쁘다. 내가 소현(昭顯)과 동시에 북행(北行)하여 험난한 이역 땅에서 어렵고 위험한 지경을 모두 겪었는데 늘 좌우에서 이끌어 주면서 주야로 떠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동쪽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인사(人事)가 갑자기 덧없이 되어버리고 불량한 사람이 이어 변을 야기시켰다. 선조(先朝)의 성명(成命)을 경솔히 고칠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항상 아프게 여기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영령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에서 어찌 한스러움이 없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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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정리하면 인조가 죽고 왕이 바뀌기 전까지 석견은 귀양살이 도중이었지만 생명은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 속 '추노'의 상황으로 보면 석견이 살아남는 것은 송태하와 대길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발판인 셈이죠.

물론 드라마의 장중한 마무리를 생각해보나, 이미 사람 많이 죽이는 걸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추노' 제작진을 보나 두 사람이 모두 살아남는 걸 기대하기는 매우 힘들 듯 합니다. 이제 두 남자 주인공 가운데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을지, 혹은 둘 다 죽을지가 궁금해질 상황인 듯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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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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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필사진 cool 역사가 가진 당파성이나 정치성 때문에 해석은 자유롭지만, 상업적인 드라마에서 그리는 인조의 소현세자 독살설은 무조건적으로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 것 또한 자제 해야겠죠. 청에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청의 입관부터 중원정복까지의 과정을 인조에게 소상히 보고하고 연결되어 있었고, 인조 또한 아들들은 아끼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도 막역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소현세자가 돌아오고 죽게되는 그 과정이야 상상의 여지가 있겠지만, 조선왕조실록이 기본텍스트이고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아마 전세계 역사서 중 가장 신빙성이 높은기사이기 때문에 소현세자가 무조건 독살되었다고 보는 것은 위험하네요.

    그리고 성리학적 적장자상속 방식을 설명해드리자면 그 아버지의 자식들은 '체體'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당연히 적장자에게만 '정正'을 붙이지요. 그러므로 인조의 두 아들 소현세자는 '정체正體', 봉림대군은 '체이부정體以不正'이라고 합니다. 소현세자가 자식없이 죽는다면 봉림대군에게 정통이 넘어갈것이나 죽을 당시에 이미 아들이 3명 있었기때문에 소현세자의 첫아들이 왕이 아들이 아닌 손자이기 때문에 '불체不體'요 정통이니 '정이불체正以不體'가 되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많고, 봉림대군은 계속 '체이부정'이 되는 것입니다. 셕견의 두 형이 자식없이 죽었으니 그 정통성이 석견에게 온 것이고, 석견이 죽으면 석견의 아들들에게 이어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인조는 이것을 私家의 예라하여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하였고, 현종대의 예송논쟁의 원인이라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익히들 아시다 시피 예송논쟁은 그 당시의 왕권과 신권의 상대적 위치를 놓고 다툰 정치적 사안이었습니다.
    2010.03.19 12:11
  • 프로필사진 nolka 왕조실록에 나온 얘기입니다. "소현세자 사후 염을 하는데 왕족이 함께 참석하여 보자 그 얼굴 칠귀에서 (7개의 구멍을 말합니다-눈2, 입, 코2, 귀2) 검은 피가 흘러내린 흔적이 역력하였으나 급히 염을 하였고.. 세자의 상으로 국상기간을 정하고자 하였으나 왕의 명령으로 그 기간을 이례적으로 짧게 하였고.. 얼마 후에 며느리인 소현세자비는 사사를 당하였으며, 역적의 자식들로 몰린 손자들은 귀양에 처하였다"고요. 야사책이 아니라 정사책인 실록에 나오는 말입니다. 2010.03.19 14:49
  • 프로필사진 언년이이제울지마세요 언년이~~~~ 2010.03.19 12:12
  • 프로필사진 길손 http://blog.naver.com/yoyo361?Redirect=Log&logNo=50084938647

    이 블로그는 원래 여기 포스트들을 허락받고 퍼가는 곳인가요?
    포스트 하단에 -송원섭의 스핑크스- 하고 출처를 남기긴 했는데,
    원손 포스트만이 아니라 그 이전 포스트들도 죄다 퍼다날랐네요.
    2010.03.19 12:16
  • 프로필사진 송원섭 중단요청을 했습니다. 너무 심하군요. 2010.03.20 08:55
  • 프로필사진 gaq 조선 최악의왕이 인조죠 ,,정말 당시 조선조에서 가장중요한시기였는데 ,,,광해군이 아쉽네요,,현명하고 어진임금이 될수있었는데,,,효종도 성왕이지만 개인적으론 정조가 제일 안타까운거 같아요,,,한 10년만 더살았어도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르는데 ,,,참 아쉽네요,,, 2010.03.19 12:46
  • 프로필사진 seba 아무래도 대다수는 죽을거고 그간의 이야기를 알수 있는 한사람 정도만 살아 남을거 같습니다.

    한성별곡때도 너무 좋았는데
    그 비장함이란...

    아무래도 석견이 살아가려면...여자가 살아남아야 할거고
    언년이 아니면 그 대길이 쫓아다니는 여자분 그 둘중에 하나일거 같습니다.
    이야기가 재미있으려면 대길이 쫓아다니는 여자가 살아남는게 더 낫겠죠.
    2010.03.19 12:56
  • 프로필사진 와... 추천수 대박이네요~~~~
    한성별곡,추노... 제가 기억하는 최고의 사극입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2010.03.19 12:58
  • 프로필사진 모든알바 불행하고 아픈 우리의 한 시대 였던 것 같군요...
    어쨌든 효종이 좋은 임금이었던 건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2010.03.19 13:21
  • 프로필사진 이지연 지존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왕족들의 운명도 참 가엾단 생각이 듭니다.
    뜬금없는 연결이지만 며칠전 봤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인빅터스"에서 가슴에 남았던 말 "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이라는 싯귀가 왕족들에게는 전혀 해당사항 없음이네요...
    그나저나 원손으로 나오는 아역배우가 심하게 귀엽죠잉? ㅎㅎ
    2010.03.19 13:26
  • 프로필사진 아야 잘 보고 갑니다^^
    추노 본방으로 챙겨보진 않지만..석견이 운명에 대해서는 궁금했는데..
    여튼 살아남는다니 다행(?)이네요..일단은^^
    2010.03.19 14:04
  • 프로필사진 선우재우부 인조는 조선시대 왕 중에서도 왕이 된 과정도 특이했지만 남한 산성에서 청의 기록대로라면 제일 한이 많은 왕이었을 것입니다.

    광해군이나 소현세자도 불쌍하지만 인조도 그의 다른 자손들도 평탄하지 않았군요...^
    2010.03.19 14:08
  • 프로필사진 톱스타케이군 잘 봤습니다. 그렇군요.. 2010.03.19 14:43
  • 프로필사진 너돌양 추천수 부럽네요. 추천안하고 갈수없는 포스팅이지만요 ㅎ 2010.03.19 14:52
  • 프로필사진 송원섭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최대추천이네요.^ 2010.03.20 08:55
  • 프로필사진 아참나시계못보지 애가 어찌나 귀엽던지..ㅋ 2010.03.19 17:24
  • 프로필사진 아름다운눈빛 원손이 귀여워서 매주 봅니다.
    화면속으로 쏙 들어가고 싶어요~~
    오지호씨는 눈빛이 꼭 신 같아요.
    모두 다 주인공이세요.
    2010.03.19 18:10
  • 프로필사진 아름다운눈빛 최종혁은 도대체 왜 그렇게 살벌하게 무서운지..
    언제죽는지.. 연기는 잘하는데, 너무 사람을 많이 죽여서
    2010.03.19 18:11
  • 프로필사진 송원섭 이종혁...^^ 2010.03.20 08:56
  • 프로필사진 seod 이럴때보면 연예기자출신이 아니신것 같습니다 ㅎ 국사학과 교수님이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2010.03.20 01:09
  • 프로필사진 송원섭 설마요. 어설픕니다.^ 2010.03.20 08:56
  • 프로필사진 붉은비 반정에 의해 왕위에 오른 분들 치고 후세 사람들이 보기에
    찌질하지 않은 이들이 없기 마련이겠습니다만,
    인조는 오히려 정황적으로 판단하면 동정의 여지가 훨씬
    많은 왕이었을텐데 열분들의 평가가 무척 박하시네요.^^

    광해군과 인조가 그리고 당시 조선이란 국가가 겪은 비극은
    결국 그 아버지 대인 선조의 유산이라고 보는 입장인지라,
    조선 최강의 찌질 군주는 단연 선조라고 주장해봅니다.ㅎㅎ
    2010.03.23 12:50
  • 프로필사진 드라마니아 추노에 대한 첫 언급이 원손에 대한 것이라
    추노에서 그리고자한 것은 정치적 암투와 민초들의 삶이 어우러져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런데 다 끝나가니 달랑 원손의 운명을 실록에서 나온 그대로 소개하고 끝이라 ...
    좀 김새는 느낌...
    2010.03.25 11:26
  • 프로필사진 드라마니아 스포츠 동아 이해리 기자의 대박 추노의 뒤엔
    세가지 힘이 있었다를 보니 참 좋은 평이라는 느낌이 들어 추천합니다.
    2010.03.25 11:41
  • 프로필사진 jsyqa 조카도 형제도 심지어 자식도 믿지 못하는 역사 속에서 아름다운 결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10.03.26 09:49
  • 프로필사진 fedelio 아직 추노는 다시보기 서비스를 통해 보고 있는 중이지만,
    역사적 사실 아주 잘 정리하셨네요 ^^
    잘 보고 갑니다 ~
    2010.05.05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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