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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2'를 보고 나서 바로 '한국형'이라는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솔직하게 얘기해서, 지난 2008년 '아이언맨'이 개봉하기 전까지 국내 관객 가운데 '아이언맨'이라는 슈퍼 히어로의 이름을 들어 본 관객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아이언맨'은 그해 여름 개봉한 배트맨 영화 '다크나이트'를 넘어 서는 흥행 성과를 거뒀습니다. 관객 비율이 430만대 400만 정도라는 건 꽤 근소한 차이긴 하지만, 주인공인 배트맨과 아이언맨의 지명도 차이를 생각하면 생소한 아이언맨이 더 좋은 성적을 냈다는 게 의외로 여겨질 만 합니다.

더구나 '다크나이트'와 '아이언맨'을 전 세계 흥행 성적을 비교해볼 때 이건 상당히 예외적인 현상입니다. 두 영화의 전 세계 흥행 성적은 10억달러대 5억8천만달러 정도로 '다크나이트'의 압승입니다. 미국 국내 흥행도 5억3천만달러 대 3억2천만달러 정도로 비슷한 비율이죠.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에서의 성적 역시 4억7천만달러 대 2억7천만 달러 정도이니, 이쯤되면 한국이 '아이언맨'을 편애하는 나라라는 말이 그리 틀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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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를 모두 보신 분들이라면, 두 슈퍼 히어로의 성격 차이가 이런 차이를 만들었다는 저의 주장에 꽤 공감하시리라 믿습니다. 두 영웅은 모두 대재벌의 실소유자이며, 천재적인 두뇌와 플레이보이적인 외모를 갖고 있고, 타고난 초능력이 아닌 과학적 장비의 힘으로 싸운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낙천적이고 괴짜인 토니 스타크에 비해 브루스 웨인은 싸우는 시간보다 고민하는 시간이 더 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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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토니 스타크는 영화 '아이언맨'의 마지막 장면에서 "내가 바로 아이언맨"이라고 선언해버리는 깜짝쇼를 벌이죠. 영화 '아이언맨2'는 그 6개월쯤 뒤에서 시작합니다. 간단한 줄거리:

뉴욕의 플러싱 메도우에서는 스타크 그룹의 설립자인 하워드 스타크(토니 스타크의 아버지)의 꿈을 현실에 옮긴 스타크 엑스포가 열리고 있습니다. 아이언맨의 활약으로 전 세계에서 분쟁이 사라진 상황. 그 시점에서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온 세계의 뛰어난 과학자들이 미래의 비전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켠에서는 스타크 부자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또다른 천재 과학자 이반 반코(미키 루크)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신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한편 아이언맨임을 밝힌 이후, 아이언맨은 개인이 보유하기에는 위험한 무기이니 정부에 넘기라는 의회의 요청을 효과적으로 무시하고 높은 인기를 과시하던 토니 스타크는 사실 남모르는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그의 생명을 유지해주고 있는 가슴의 원자로가 체내에 죽음을 유발하는 독성물질을 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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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이언맨이 아이언맨 시리즈 겨우 두번째 편에서 죽을 리는 없으니 걱정하실 분도 없을테고, 솔직히 이 영화에 대해 결말까지 얘기를 한 들 스포일러가 될 것도 없을 듯 합니다. 영화가 상영되는 두어 시간 동안, 관객이 할 것이라고는 현실 세계의 근심 걱정을 극장 문 밖에 잘 접어서 돌로 눌러 두고 화면 가득 펼쳐지는 아드레날린의 분수에 몸을 맡기는 것 뿐입니다.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가 마블 코믹스의 방대한 히어로 세계의 일부이며, 영화 '아이언맨'은 실사판 영화 '어벤저'로 가는 입구라는 면에서 원작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아이언맨 2'에 어떤 단서가 감춰져 있는지를 눈여겨 보느라 정신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런 요소들은 어떤 사람들에게 재미를 더해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다수 관객들에겐 전혀 알 필요 없는 얘기들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꽤 중요한 비밀이 감춰져 있을 것 같았던, 영화가 끝나고 거의 10분 뒤에 나오는 쿠키 영상 역시 영화 '어벤저'에 등장할 한 슈퍼 영웅의 흔적이 살짝 비쳐지는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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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 관객들은 '다크나이트'의 배트맨보다 '아이언맨'에 더 큰 환호를 보냈을까요. (제 주변 사람들을 기준으로 볼 때는 단순한 관객수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난 뒤의 만족도에서도 '아이언맨'이 상당한 우세를 보였습니다.)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너무나 당연합니다.

한국인의 기준으로 볼 때 조커 하나를 죽일 수십번의 기회를 날려 버리고, 그 조커 때문에 수없이 많은 인명이 더 희생되는 것을 어리석게 바라보고 있는 햄릿형 주인공 배트맨보다는 나중 결과가 어찌됐건 일단 저질러놓고 뒤에 수습하는(물론 수습도 대개는 다른 사람이 하지만) 돈키호테형의 아이언맨이 훨씬 매력적으로 보이는게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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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관계 또한 그렇습니다. 매번 온 세상 고민을 혼자 짊어진 척 찡그리고 다니면서 제가 좋아하는 여자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찌질남 브루스 웨인 보다는 온 세상 여자가 다 자기 것인 양 헤벌쭉 다니면서도 누가 자기 짝인지는 확실히 구별하고 보호하는 토니 스타크가 훨씬 한국적인 정서에 맞아 보입니다.

[물론 기네스 팰트로가 대체 왜 이 시리즈에 나오고 있는지 알수 없기로는 1편이나 2편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토니 스타크의 짝꿍인 페퍼 포츠(이름 때문인지 음료수도 닥터 페퍼만 마시더군요^^) 역할에는 도대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할 연기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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팰트로는 여전히 병풍인 반면, 스칼렛 요한슨(조핸슨이라고 하는게 맞을 듯 하지만 그냥 이대로 버티렵니다)은 물 만나 고기 같습니다. 등장하는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이 영화의 핵심 장면들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만화적인 느낌을 강조한 액션 신도 멋집니다. 이 다음 작품이 '아이언맨3'가 될지, '어벤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강한 기대감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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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줄거리가 어떻고, 배우의 연기가 어떻고 등등에 대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별로 긴 말도 필요없습니다. 지금 당장 극장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남은 2010년의 기간 동안 수많은 영화들이 나오고, 관객들을 만족시키거나 실망시키거나 하겠지만 2010년의 문화생활 가운데서 여러분이 가장 잘 한 일은 '아이언맨2'를 아이맥스관에서 보시는 것이고, 어떤 분들에게 시간이 지나고 나서 가장 아쉬울 일은 '아이언맨2'를 극장에서 보지 않은 것이 될 것입니다.

[물론 어디에나 '난 그렇게 정신만 사납고 보고 나면 남는게 하나도 없는 영화는 싫어. 영화가 뭐 보고 나서 남는게 있어야...' 어쩌고 하면서 김 빼놓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괜히 그런 걸로 아웅다웅하는 것 보다는 그런 사람들은 그냥 계속 그렇게 살라고 내버려 두시고, 여러분은 그냥 극장으로 가시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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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로드 중령 역이 테렌스 하워드에서 돈 치들로 슬쩍 바뀌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런걸 눈 빠지게 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니까요.^

P.S.2.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인 딴지] 그런데 해피(감독인 존 파브로의 캐릭터)는 대체 그 무거운 아이언맨 수트를 어떻게 손에 들고 다닐 수가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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