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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드컵에서 반가운 것 중 하나는 8년만에 보는 '차두리의 귀환'입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2002년, 모든 대표 선수들이 '태극전사'라는 이름으로 스타가 됐지만 안정환이나 박지성처럼 승리에 직접 기여하는 골을 넣은 선수가 아닌데도 대중들로부터 높은 사랑을 받은 스타라면 차두리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호감형의 얼굴과 언제나 금방 면도한 듯 한 특유의 헤어스타일, 그리고 한국 축구의 영원한 신화인 차범근 감독의 2세라는 점 등에서 차두리는 항상 눈길을 끄는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스피드와 순발력, 2002년 기준으로 미완성의 스트라이커라는 점 등등이 화제의 초점이었습니다.

사실 이번에 나오고 있는 '차두리는 로봇이다?'도 그 무렵에 이미 나온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순서로 따지자면 차두리의 정체를 얘기할 때 먼저 나온 건 '차두리는 강백호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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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의 뜨거웠던 어느날, 이런 기사를 쓴 적이 있었습니다.

'차두리의 정체는 강백호였다!'
대표팀의 막내 차두리와 인기 농구 만화 '슬램 덩크'의 주인공 강백호의 '공통점 이야기'가 젊은 스포츠 팬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슬램 덩크'는 일본 만화가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대표작. 국내에도 주간지 연재와 단행본 출간을 통해 절정의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주인공 강백호는 농구에는 문외한이지만 1m90의 큰 키와 빠른 발, 그리고 백보드에 이마를 찧을 정도로 엄청난 점프력을 가진 유망주.
어느날 농구부 주장의 여동생에게 반해 농구에 입문했다가 '백발귀'라고 불리는 안감독의 눈에 띄어 빠른 시간 사이에 최고의 리바운더로 다시 태어나 팀을 전국대회로 끌어올린다.
네티즌들은 ▲신체조건과 잠재력에 비해 세기가 부족하다 ▲똑같은 삭발 머리다 ▲흰 머리의 감독을 만나 새롭게 태어난다는 등의 공통점을 들어 '차두리=강백호'라는 주장을 널리 퍼뜨리고 있다.
많은 네티즌들이 이 주장을 바탕으로 만화 '슬램 덩크'의 줄거리에 차두리와 동료 선수들을 끼워 넣은 '차두리 스토리'를 앞다퉈 유행시키고 있다.
빼어난 실력과 잘생긴 얼굴 때문에 늘 강백호가 질투하는 팀 동료 서태웅 역할로 가장 많이 꼽히는 선수는 '테리우스' 안정환.
이밖에도 채치수에는 홍명보, 정대만에는 황선홍, 송태섭에는 이천수 또는 윤정환이 거론되는 등 매일 새로운 스토리가 소개되고 있다.
스스로 '차두리 팬'이라고 밝힌 장지홍씨(27.회사원)는 "어느 경기에 투입돼도 골키퍼와 1:1 찬스를 만드는 선수는 차두리 뿐"이라며 "한국 축구의 '희망'인 차두리가 강백호처럼 '깜짝 성장'을 해 제몫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차두리 스토리'가 유행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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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슬램덩크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때는 이런 얘기가 끝없이 재생산되던 시절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내용이었죠. 이건 2002년 첫 경기였던 폴란드전이 끝났을 무렵 나왔던 버전입니다.


차두리가 강백호라는 설은 정말 생각할수록 들어맞는다.

1. 하드웨어는 너무도 뛰어난 반면, 소프트웨어는 영 한심하다.
2. 머리 모양이 똑같다.
3. 팀내에 잘하는 같은 팀 소속 선수(그럼 이천수가 서태웅;;?)가 있다.
4. 백발의 감독(;;)을 만나 다시 태어난다.

그럼 이제 차두리에게 남은 것은 2만번의 슛 연습뿐이다. 다들 미국전을 하는 동안, 강백호 아니 차두리는 혼자 연습장에서 2만개의 슛을 날린다.
대표팀의 나머지 멤버들은 미국전에서 질 경우 "핫핫, 역시 이 천재 없이는 아무것도 안되지"라는 차두리의 비웃음을 살까 두려워 혼신의 힘을 다해 미국을 4:0으로 꺾는다.
마침내 포르투갈전. 한국의 기둥인 채치수 아니 홍명보가 피구에게 완전히 농락당한다. 같은 3학년(;)인 득점왕 황선홍(정대만-)은 체력저하로 고통스러워한다. 좌절하는 홍명보.
그러나 이때 경기에 나가지 못하고 있던 부산 출신의 김병지가 흰 모자를 쓰고 나와 무우를 깎으며 말한다. "어이, 꼭 당신이 해야한다고 생각하지 마. 팀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 줘."
여기에 힘을 얻은 한국, 전반 0:3을 딛고 후반 1분을 남겨놓고 3:3 동점을 만든다. 마지막 순간, 공을 몰고 들어가던 안정환(아무래도 서태웅은 이쪽이 훨씬 어울리는것 같다;)의 귀에, 골대 45도 각도에 자리를 잡은 차두리(주전들의 부상으로 어쩔수 없이 나와 있었음)의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왼발은 거들 뿐..."


어쨌든 이런 식으로 인기를 모으던 차두리는 강백호를 넘어 '로보트'라는 설의 주인공이 됩니다. 등에 달고 있는 이름 DR CHA는 바로 인간공학을 살린 축구로보트 차두리를 만든 차범근 박사를 가리킨다는^^ 등의 내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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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건 꽤 시간이 지난 느낌입니다. 왜냐하면 차두리는 현재 22번을 달고 있고, 11번을 단 건 거의 5,6년 전의 일이죠. 아마도 2006년 월드컵 예선 참가 때였을 겁니다. 당시에는 차두리가 차범근 감독의 뒤를 이어 11번을 달았다는 것 자체가 큰 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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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차두리는 대표팀에서 11번을 여러번 달았지만 2002년 대표팀 때에는 16번, 2006년 예선 때 11번, 그리고 지금은 22번을 달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와의 관계나 이런 사진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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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11번이라는 인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강하게 남아 있는 듯 합니다.

게다가 등에 붙이는 차두리의 이름 표기도 2002년 당시에는 DR CHA였지만 이것도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요즘의 차두리는 DURI라는 표기를 이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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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공격수 차두리' '오른쪽 윙포워드 차두리'를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2006년 대표팀에 최종 선발되지 못하면서 그 기대는 미완으로 끝났고, 언젠가부터 차두르는 오른쪽 윙백으로 소속팀과 대표팀에 기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공격수의 피가 뜨겁기 때문에 공만 잡으면 최전방까지 진출해 윙어 역할을 하는 게 장기입니다만, 그래도 방금 전까지 적진영 오른쪽을 헤집다가 저쪽 공격수가 공을 끌고 나오면 순간이동해 다시 오른쪽 진영을 굳게 지키는 탁월한 기동력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자산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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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가 대표팀 오른쪽을 지키는 한, 사우디 아라비아나 이란의 빠른 윙포워드들에게 번번이 이면 침투를 허용하고, 순간 스피드가 떨어져 잡아내지 못하던 왕년 한국 축구의 슬픈 모습은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만큼 한국 축구가 확실히 업그레이드됐다는 얘기겠죠.

이런 차두리의 활약과 함께 한국은 이미 1승. 이번 월드컵에서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지 흥미진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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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런데 혹시 22번 차두리는 11번 버전의 업그레이드...? (가수 양진석님의 지적에 따르면 22번은 220V로 승압했다는 얘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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