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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처음 방송된 KBS 2TV '성균관 스캔들'은 상당히 관심을 자아낸 작품입니다. 정은궐 작가의 원작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 워낙 좋은 작품으로 찬사를 받았고 그동안 수많은 곡절을 거쳐 마침내 드라마로 만들어져 공개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늘 되풀이되는 이야기지만, 원작과 얼마나 비슷하냐, 혹은 다르냐가 드라마나 영화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원작을 충실히 재현했다고 해서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는 건 넌센스입니다. 실제로 원작을 뛰어넘는 각색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작품인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가 보여준 바 있습니다. 송지나 작가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는 김성종 원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완성도를 보여준 바 있죠.

그런데 의문은, 왜 거의 모든 영화나 드라마의 제작진은 언제나 '원작 그대로'는 나쁜 것이고, '원작의 재해석'이 있어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원작의 좋은 부분을 살리지 않을 바에는 왜 굳이 원작이 필요한 것일까요?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도입부에서는 원작의 강점을 살려 발전시킨 디테일이 돋보입니다. 17세기말의 성균관과 그 주변을 현재의 대학가에 오버랩시키려는 시도들입니다. 대학가의 벽보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벽보들이 좋은 예입니다.



그리고 과거 시험을 치르는 과장을 묘사하면서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키는 자막을 삽입하는 점, 공중에 글씨를 띄워 자막의 역할을 대신하게 하는 것 등등의 새로운 기법은 야심찬 시도를 느끼게 합니다. 



이렇게 드라마의 시각적인 면은 원작이 묘사하고 있는 세계를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좀 달라집니다.

원작과의 차이를 먼저 살펴보면, 선준의 캐릭터가 좀 다릅니다. 소설 속의 선준은 어진 마음과 냉철한 두뇌를 갖춘 최고의 완벽남입니다. 소설 속의 선준이라면 공부를 못하는 동료가 애써 모은 머리칼을 하늘에 날려 버리는 등의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굳이 왜 선준을 '까칠도령'으로 바꿔 놓았는지는 알수 없습니다. 아무튼 늘 온화한 미소로 윤희를 감싸는 선준의 모습을 기대했던 원작 팬들에겐 참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초반에 선준이 까칠한 모습을 보여 윤희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드라마적인 긴장감을 높이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면 상당히 실망스럽습니다. 오히려 이런 설정 때문에 '성균관 스캔들'의 도입부는 개성을 잃어버립니다.

(까칠한 수재남과 자존심 강한 여주인공의 대립으로 시작하는 드라마가 얼마나 많았고, 또 앞으로도 얼마나 많이 쏟아져 나올 것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박유천과 박민영의 연기는 나쁘지 않습니다. 윤희 역이 좀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지나치게 긴 대사만 주어지지 않으면 박민영은 충분히 윤희 역을 소화할 수 있는 재목입니다.

박유천 역시 일천한 연기경력을 감안하면, 놀랄만큼 안정된 발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까칠도령으로서의 연기에서는 그닥 허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만, 수재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할 때에는 살짝 아쉬움이 느껴집니다(하기사 이건 '장난스런 키스' 쪽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어쨌든 1,2회만으로도 박유천은 연기 면에서는 동방신기의 다른 동료들보다 확실하게 한발 앞서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앞서 연기자로 변신한 모습을 보여줬던 정윤호나 김재중의 참기 힘든 연기와는 다른 레벨이었다고 평가해도 좋을 듯합니다. 이 대목에선 연출진과 박유천의 교감이 상당히 돋보입니다.




가장 큰 기대를 모으게 한 건 역시 여림 역의 송중기. 사실 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 영상으로 다시 만들어지면 가장 주목을 끌 것이 여림 역할이란 건 너무도 자명했습니다. 문제는 이 역을 맡은 배우가 어떻게 소화해낼 것인가 하는 점인데, 드라마가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역시 가장 큰 수혜자는 송중기가 될 듯 합니다.



반면 유아인이 걸오 재신을 연기한다는 것은 최고의 미스캐스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지우지 못했습니다. 선준, 여림, 재신이 모두 꽃미남이기만 하다는 건, 원작과 달라서가 문제가 아니라 드라마의 균형을 이루는 데 상당히 장애가 될 조짐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드라마의 기본 틀은 윤희를 꼭지점으로 한 세 남자의 알듯말듯한 경쟁입니다. 그렇다면 선준, 여림, 재신은 각각 다른 매력을 보여줘야 시청자에게 좀 더 설득력이 있겠지만, 이 부분에서는 원작의 재신이 보여주는 야수같은 남성미를 포기한 것이 영 아쉽습니다.



1, 2부를 봐선 윤희가 어떻게 성균관에 들어가게 되는지까지의 과정이 원작에 비해 상당히 압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설 원작에선 1/4 정도에 해당하는 분량이 1/8 정도로 압축되어 들어갔다는 얘기죠. 이건 뒷부분에서의 이야기가 원작보다 늘어난다는 이야기인데, 과연 어떤 얘기가 나올지도 궁금합니다.

(물론 원작 팬들에게는 성균관 입소 전에 진행되는 알콩달콩한 에피소드가 모두 희생된게 아까울 듯 합니다. 특히 원작의 은근한 이야기에 비해 새로 추가된 액션 스토리가 그리 설득력이 있거나 흥미롭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저런 부분을 종합해 볼 때 '성균관 스캔들'은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과는 꽤 비슷하지만 사뭇 다른 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물론 현재의 모습도 그리 나쁘지 않은 한폭의 드라마이고, 앞으로의 전개에 따라 썩 괜찮은 작품으로 남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다만 이 드라마의 앞날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지나친 '현대'의 개입입니다. 아무리 성균관이 당대 수재들의 요람이고, 이 성균관을 현대의 대학가에 덮어쓰워 재치있는 연출력을 과시하려는 욕구가 강해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인기 만점의 성군 정조가 등장한다는 점이 우려를 낳습니다. 거의 모든 드라마가 정조에 대한 존경을 깔고 시작하기 때문에 정조에게 대항하는 노론은 악의 존재들로 묘사되곤 합니다. 하지만 17세기 조선은 왕정 체제에 있었고, 정조가 아무리 현명한 군주라 해도 결국은 민주 사회의 지도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독재자라는 점을 간과하면 곤란합니다. '현대적'인 시각을 가미하면, 오히려 왕의 1인통치를 부정하고 권력의 분산을 지향한 신하들이 보다 '민주적'인 사상을 가졌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정조가 현명하기 때문에 왕권 강화가 선(善)이라는 것은 지극히 구시대적인 발상인 것이죠. (혹은 주체사상에 입각한 사고..^^)

이런 기본적인 모순을 무시하고 드라마에 자꾸 '21세기 한국'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할수록 작품은 점점 더 삐걱거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물론 소설 원작에서도 그런 시도는 수시로 불쑥불쑥 등장합니다만, 전체 원작을 지배하는 달콤하고 낭만적인 정서에 비하면 매끄럽게 넘어가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드라마의 차별화'가 어쩌다 '생각 있는 드라마로 보이려는 시도' 쪽으로 기울게 되면 그때부터는 본격적인 재난이 시작될 거란 우려를 지울 수 없습니다. 아, 물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이렇게 얘기하는 건 그야말로 기우일 겁니다.



P.S. 원작을 읽어보지 않은 분들은 지금이라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는 '그 흔한 로맨스 소설'과는 천지 차이라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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