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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제빵왕 김탁구'는 올해 최고의 히트작으로 기록될만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중반 이후 40%대의 시청률을 유지했고 16일 마지막회는 무려 50%를 넘는 대박 시청률을 기록했죠. 결말의 처리도 아쉬움보다는 환영의 목소리가 더욱 컸습니다.

그런데 좀 의아한 것은 각 매체들의 반응입니다. 모든 목소리가 입을 모아 '제빵왕 김탁구'의 성공을 축하하며 이 드라마의 장점을 열거하기 바쁩니다. 마치 '제빵왕 김탁구'가 그동안 한국 TV 드라마들이 잊고 있었던 미덕을 모조리 갖춘 걸작이며, 앞으로 만들어질 드라마들이 본받아야 할 상징적인 존재인 양 말입니다.

솔직히 의아합니다. '제빵왕 김탁구'는 웰메이드 드라마일까요? 지금 쏟아지는 찬사를 모두 감당할 만큼의 수작일까요?



초반부터 출생의 비밀과 엇갈린 가족사, 정실 소생과 서자의 대립 구도 등 판에 박힌 홈드라마적 구조 때문에 욕을 먹었던 '제빵왕 김탁구'는 월드컵으로 인한 경쟁 드라마의 부재 등 좋은 조건을 타고 화끈한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도 이야기 구조 면에서 '제빵왕 김탁구'는 수시로 허점을 드러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비밀을 알면서도 '단지 드라마 속 갈등을 유지하기 위해' 아무에게도 비밀을 공개하지 않는 전형적인 '답답이 진행'을 펼쳤습니다. 이 때문에 신유경(유진) 캐릭터는 민폐 캐릭터로 취급받을 위기를 겪었죠.

게다가 드라마의 클라이막스인 26-30회로 가면서 원래 판타지였던 드라마는 완전히 동화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김탁구와 만나면 모든 사람이 착해지는 '착해져라 뽕' 마술 전개(심지어 한승재의 명령으로 김탁구 어머니를 납치하러 온 건달까지도 탁구의 절규를 보곤 바로 착해져서 어머니를 놓아 주고 사라집니다^^)는 참 즐겁더군요. 아울러 드라마의 진행을 보면 과연 무엇을 위해서 구회장은 병을 가장하고 있었는지 궁금할 지경입니다. 과연 이게 함정이기는 했나요?


이런 부실한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김탁구'를 선호했습니다. 다른 채널의 경쟁작들이 완전히 중년 시청자들을 포기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와 '장난스런 키스'였던 것도 큰 힘이 됐겠지만, 아무튼 '쉬운 진행'을 거쳐 '동화 수준의 진행'은 중년층 뿐만 아니라 젊은 층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초반에 등장했던 '제빵왕 김탁구'의 막장성을 질타하는 기사들은 시청률이 40%를 넘으면서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른바 방송가에 만연한, '잘 나가는 프로그램에는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한다'는 원칙이 작동된 것이죠. 야구에 비교하자면 '3할3푼 치는 타자에게는 타격코치가 조언하지 못한다'는 얘기와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어쨌든 시청자들이 좋아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은 드라마의 질 논쟁을 쑥 들어가게 하는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역시 종영 후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죠. 모든 평이 찬사 일색입니다. 갖가지 이유를 끌어대 '김탁구의 성공요인'을 분석한답시고 난리지만 대개는 억지로 끼워다 맞춘데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연기력을 갖춘 중년 연기자의 힘이라지만, 대체 어떤 드라마에서 전광렬 전인화 전미선 정성모가 연기를 못 한 적이 있었단 말입니까? 아니, 대한민국 드라마에 출연하는 45세 이상의 연기자 중에서 과연 '연기를 못한다'는 평을 들을만한 사람이 대체 몇명이나 있을까요?

김탁구의 성공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기대를 준 것도 분명하지만 감동과 기대를 준 드라마가 김탁구 한 편 뿐은 아니었을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제빵왕 김탁구'의 성공 요인은 '뻔뻔스러울 정도로 대중들의 기호에 충실했다'는 겁니다.

'제빵왕 김탁구'는 음식으로 치자면 라면 같은 드라마죠. 고급 음식들은 참 많지만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거의 모든 사람이 불만 없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는 라면을 따라갈 것이 없습니다. 조미료가 들었네 기름에 튀겼네 가릴 사람은 여러가지를 가리지만, 그래도 그 가격에 이만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건 매우 행복한 일입니다. 그래도 라면을 '우수한 요리'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제빵왕 김탁구'를 낯간지러운 찬사로 포장하는 건 제발 그만 뒀으면 합니다. '명작 드라마'가 아니었다는 거지 김탁구의 존재 가치나 효용을 부정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김탁구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만듦새는 좀 부실하지만 대중의 기호를 잘 파악하고 거기에 부응한, 착하고 행복한 결말을 지향한 드라마'라는 것일 겁니다.

물론 김탁구가 마지막에 던진 메시지, 즉 처음부터 구회장의 어머니가 '대를 이을 아들'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중간의 이런 비극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그래서 결국 그룹의 후계자 자리는 장녀 자경이 맡게 됩니다) 메시지는 유효합니다.

'제빵왕 김탁구'가 아무 의미도 없는, 배신과 변신이 난무하는 초막장 드라마와는 다른 레벨에 있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그런 드라마들보다 백배 낫다는 건 당연히 인정합니다("채널 돌리다 보면 얼마나 후진 드라마들이 많은데, 거기에 비하면 김탁구는 정말 걸작이야!"류의 반응은 사양합니다).

다만 착하고 선량한 드라마,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드라마라고 해서 그 드라마의 모든 흠결이 사라지고, 갑자기 희대의 걸작 드라마로 칭송을 받아야 할 이유 또한 없습니다.



P.S. 사실 대중이 사랑한 '김탁구'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착하고 성실하고 영리한 김탁구는 어쨌든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거둔다는 행복한 판타지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김탁구는 구회장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설정입니다. (구회장으로부터 물리적인 도움을 받지는 않았더라도 그의 DNA로부터 영특한 두뇌와 불굴의 신념, 긍정적인 자세, 호감가는 외모 같은 우수한 요소들을 물려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평범하지만 착하고 성실한 사람(바로 시청자 자신 같은)' 사람이 성공하는 모습도 보고 싶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성공하지 못하는 건 구회장 아들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위안도 은근히 얻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김탁구'는 이 두가지 판타지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드라마였습니다. 진정한 성공의 비밀은 아마 이런 데 있는게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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