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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올해를 대표할만한, 아니, 최근 3년간 한국 영화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아 전혀 손색이 없는 걸작이라는 것입니다. 긴박감 넘치는 연출, 배우들의 연기, 구멍 하나 없는 스토리까지 흠잡을 데 없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영화의 복선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분들이 몇 분 나타나곤 합니다. 그래서 해설 버전을 따로 마련했습니다.
물론 영화에 대한 첫번째 느낌은 따로 리뷰로 정리해 뒀습니다.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들은 그 정도로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글은 '황해'에 대해 혹시라도 납득이 안 가는 부분들이 있는 분들을 위한 버전입니다.
** 다시 한번 경고,
'황해'에 대한 스포일러 없는 리뷰는 http://fivecard.joins.com/897 이쪽입니다.
이번 글은 영화를 보신 분이나, 절대 안 보실 분들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1. 왜 김승현(유도선수 출신의 교수/사업가)을 죽이러 간 사람이 셋이었나
가장 기초적인 부분입니다. 꼼꼼하게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혼동할 이유가 없겠지만, 김승현을 죽이려고 청부한 사람이 둘이었던 거죠. 한 사람은 김태원 사장이었던 거고, 또 하나는 모 저축은행의 김정환 과장이었던 겁니다.
버스 회사 사장이며 조폭 세력을 거느린 김태원 사장은 자신의 심복인 최성남을 통해 김승현의 운전기사(겸 보디가드)를 포섭했고, 그는 어디선가 두 명의 하수인을 구해 김승현을 살해하게 한 겁니다. 그 두 사람 중 하나는 김승현과 싸우다 건물 밖으로 던져졌고, 나머지 한 사람은 김승현에게 죽음을 당했든가, 일을 깔끔히 마무리하려는 운전기사에게 죽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예상하지 못한 김구남이 나타났고, 김구남이 살아서 현장을 빠져나가자 김태원은 당연히 운전기사가 고용한 하수인이 3명일 것으로 생각했고, 그가 살아나면 자신이 꼬리를 밟힐 여지가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대혼란의 시작이죠.
2. 김태원은 왜 김승현을 죽이려 했나
이 부분을 그냥 지나치신 분이 가끔 있는 듯 합니다. 김태원은 면정환에게 치명상을 입은 뒤 김구남이 현장에 왔을 때 거의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그놈이 내 여자를 건드렸어, 그놈이 내 여자를..."이라고 되풀이해서 중얼거립니다.
그 앞 장면에서 분당에 있는 내연녀의 집에 간 김태원은 여자에게 "너 나한테 뭐 할말 없냐?"라고 씁쓸하게 물어봅니다. 그리고 김태원이 그 집을 나선 뒤, 다른 차에서 내린 남자들이 내연녀의 집으로 향하죠.
김승현이 김태원의 내연녀와 정분이 났고, 그 사실을 안 김태원이 김승현에게 복수를 한 겁니다. 흔히 있는 조폭간의 세력이나 돈 다툼이 아니라, 바로 '여자' 때문이었던 거죠.
3. 김정환은 왜 김승현을 죽이려 했나
마지막 단서인 김정환을 찾아간 김구남은 죽은 김승현의 아내가 김정환과 은행 직원과 고객으로서 마주앉아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랍니다. 김정환 또한 김구남이 앉아 있는 걸 보고 역시 소스라치게 놀라죠.
두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안 순간 김구남은 허탈감에 빠집니다. 두 사람이 연결되어 있고 김정환이 면정환에게 청부(김정환의 단골 웨이터를 통해서)를 했다면 이유는 한가지. 김승현의 아내와 김정환이 불륜에 빠져 있었을 거란 답이 나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실에 도달한 김구남은 그 며칠 전 김승현의 아내에게 "누가 시켰는지 찾아내서 내가 꼭 죽여 줄게"라고 말한 게 아무 소용 없는 짓이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또 그 불륜커플을 보다가 구남은 잠시 아내(라고 생각한)의 유골함을 바라보죠. 자신의 불륜 의심이 아내를 죽게 했다는 생각도 잠시 했을 수 있습니다.
4. 김정환은 진짜 청부를 했나?
일각에서 "세상에 살인 청부하면서 명함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지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실 너무 당연한 얘깁니다. 앞글에서 '살인청부란 왜 어려운가'에 대해 좀 설명을 했는데, 세상에 명함을 주고 사람을 죽여달라고 할 정도로 미친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감독의 의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의 김정환은 너무 쉽게 생각한 겁니다. 몇천만원 정도의 돈만 입금하고, 버튼만 누르면 자기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는 김승현이라는 인간을 제거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해 버린 거죠. 자신은 손끝 하나 더럽히지 않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 물정 모르고 전자 오락 게임 하듯 사람 하나 죽여달라고 청부한 김정환 때문에 수십명의 사람이 죽어 나가는 대 참사가 벌어집니다. 나 하나 쯤 아무 상관 없을 거리고 생각한 무분별한 행동이 엄청난 짓이었다는 걸 깨닫게 해 주겠다는 것이 바로 이 김정환 캐릭터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5. 김구남의 아내는 돌아왔나?
맨 마지막 장면이 김구남의 상상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이건 감독의 의도가 뭐건 간에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상상인지 아닌지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죠. 일단 시체는 확인한 대행업자(심부름센터?)가 "이거 영 모르겠네"라고 투덜대는 데서 구남의 아내라고 단정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일각에선 그렇게까지 소식이 없던 아내가 갑자기 그렇게 돌아올리가 있느냐는 지적을 하기도 하고, 또 한편에선 아내가 돌아와야 구남의 헛된 죽음이라는 주제가 더욱 부각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돌아오는게 당연한 결말이라고 합니다. 뭐 후자 쪽이 더 당연한 얘기라는데 동의하고, 아울러 이런 생각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구남의 아내와 정분이 났던 수산업자는 구남에게 된통 혼쭐이 나고, 구남의 아내에게서 떨어져 나갔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럼 아내는 서울 생활에 진력이 났을 가능성이 있고, 그 때문에 남편에게 돌아가려고 마음먹을 수 있겠죠. 결과적으로 구남이 한국에서 간 것 중 유일한 결말은 아내를 돌아오게 한 것이었던 셈입니다. 자신이 돌아올수 있었건 말건.
(구남이 보던 뉴스에서 "...아울러 연변 출신 피살 여성의 팔과 다리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찾고 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문제의 수산업자가 구남의 아내를 이미 죽인 상태에서 구남을 만났다면, 혹시 구남이 먹은 양꼬치가...하는 생각도 잠시 해 봤지만 수산업자가 갑자기 고기를 납품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죠.^^ 너무 지나친 망상.)
6. 대체 두번째 청부업자들은 어떻게 김구남을 찾아냈을까?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분들을 위해 사건의 흐름을 잠시 되살려 봅니다. 구남은 살인 현장이 된 건물 위 살림집(펜트하우스?)에 숨어 있다가 집에 온 피살자 김승현의 아내를 만납니다. 놀라는 여자에게 구남은 "...남편 죽이게 시킨 사람은 내가 반드시 죽여 주겠으니 나를 좀 도와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구남은 운전기사의 집을 통해 최성남을 찾아내고, 최성남의 집에 찾아가 단서를 찾아냅니다. 그러는 사이 김태원의 부하들은 차이나타운에서 김정환의 사주를 받은 웨이터를 찾아 데려옵니다. 이 웨이터로부터 '김정환'이란 이름이 박힌 명함을 본 김태원은 "이놈은 또 누구야? 최성남이 어디 갔어? 최성남이 데려와!"라고 소리치죠.
장면 전환. 최성남의 집을 빠져나가려던 구남의 차를 다른 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이받습니다. 그리고 이 조선족 범인들은 의식을 잃은 구남을 트렁크에 싣고 어딘가로 가죠. (잠시 후 이 범인들은 "너 죽이라고 시킨 놈 명함이 차 안에 있다"고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건 김정환의 명함입니다.)
그렇다면 의문입니다. 이 조선족 범인들은 무슨 수로 이렇게 빨리 구남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구남이 최성남을 찾아올 줄 알고 최성남의 집 앞에 매복하고 있다가 구남을 찾아내 공격할 수 있었을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은 김승현의 아내가 정보를 줬다는 것이지만, 이건 김승현의 아내가 운전기사에서 최성남, 김태원으로 이어지는 커넥션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럴 리가 없죠. 더구나 그렇다 쳐도 구남에게는 일부러 운전기사 선까지만 가르쳐 주고, 조선족 청부살인 2인조에게는 최성남의 존재를 가르쳐 줘서 속도 조절을 한 뒤에 그 자리에서 딱 마주치게 한다는 것은 신의 솜씨입니다. 인간의 통제 능력을 벗어난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부분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혹시 영화의 구멍? ㅋ )
(김태원의 정부 역으로 출연한 신인 배우 이엘입니다. 늘씬하더군요.)
7. 대체 왜 모든 경우에 여자가 문제?
그러게 말입니다. 살인청부 1도 여자 때문, 살인청부 2도 여자 때문, 청부 받아서 살인하러 온 사람도 여자 때문.
...대체 여자랑 무슨 원수가... (전 이게 제일 궁금했습니다.)
지금이 바로 여러분의 추천이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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