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온 다음날, 료칸 모리노료테이 비에이 森の旅亭びえい 의 아침.
독채 방에서 나와 아침 먹으러 가는 길이 찬탄을 자아낸다. 아름답다.
가져다 대면 전부 그림.
창문 하나 하나도 모두 사진 액자처럼 보이게 신경을 기울인 태가 역력하다.
그 많이 보시던 그 일본식 조식.
안 예쁜 각도가 없다.
라비스타 아칸가와도 그랬지만, 모리노료테이도 지형 때문에 전경을 찍기가 힘들다.
그리고 못다 푼 온천의 한을 다시 한번 풀어보리라
담가도 담가도 풀리지 않는 온천욕망.
전생에 온천 못하고 쓰러져 죽은 귀신이었나보다.
파란 하늘과 고드름. 겨울 온천을 그리는 자들의 로망 그 자체.
그런데,
홋카이도 날씨는 귀신도 모른다더니, 막상 길을 나서는데 어느새 해가 숨바꼭질을 한다.
온통 사방에 눈. 일단 료칸을 나서자마자 인근에 있는 '흰수염폭포'를 찾아간다.
시라히게 폭포(しらひげの滝) 말이다.
모리노료테이를 나와 한 100미터쯤 내리막을 걸어 내려오면 이런 철교를 만난다.
철교 왼쪽을 바라보면 이런 한겨울의 예쁜 경치가,
그리고 오른 쪽 아래에는 요런 자그마한 폭포가 있다.
사진으로만 봐서는 규모를 알 수 없고 얼핏 웅대한 폭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높이가 5m 정도인 미니 폭포. 규모는 '애개' 할 정도지만, 아래를 흐르는 물 색깔과 함께 조형미는 기가 막히다. 덩치가 컸더라면 세계적인 경승이 될 뻔 했다.
그 시간에도 해 쪽은 이런데
반대쪽은 아직 파란 하늘.
파란 하늘 아래 하얀 눈의 로망이 뭉클뭉클.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비에이의 잘생긴, 눈밭에서 더욱 잘생겨 보이는 나무들을 찍으러 간다.
후라노와 비에이를 가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여름의 비이에는 패치워크(patchwork)라고 불릴 정도로 알록달록 다양한 꽃들이 피어나는 벌판이 매력을 뽐내는 곳이다. 하지만 여름 못지 않게, 겨울에도 이 벌판은 매혹적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예를 들면 이런 나무. '켄과 메리의 나무'라고 불리는 나무다.
별 것 아닌 그냥 나무 한 그루지만 회색빛 하늘을 배경으로 눈밭 한 가운데 이 나무 혼자 서 있는 걸 보면 어쩐지 가슴이 싸해진다.
비에이 역을 중심으로 대략 10km 사방에는 이런 경치를 볼 수 있는 포인트들이 흩어져 있다.
특히나 주변에 인가나 행인이 거의 보이지 않는, 어쩐지 쓸쓸한 풍경이 비에이의 마력이다.
그런데 이런 풍경들을 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렌터카가 필수. 물론 비에이에 내려서 12시간 기준으로 단기 렌트를 하는 방법도 있고, 택시를 대절해서 다니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앞에서도 얘기했다시피, 홋카이도라는 곳 자체가 '나만의 발'을 갖지 않고서는 제대로 보기 힘든 곳이다.
그러니 홋카이도 여행 레벨 1으로 삿포로-오타루-노보리베츠-팜 도미타를 돌고 말 게 아니라면, 아무리 봐도 렌트는 필수다.
(여름에는 비에이를 중심으로 자전거 투어를 하는 분들도 있다고 하는데 글쎄, 그 자체도 엄청난 체력을 필요로 하겠지만 특히나 겨울에는 무리라고 본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미끄러워서 위험하기 짝이 없다.)
하늘이 파랬다면 더 좋았을 것 같기도 하지만, 흐린 하늘은 흐린 하늘대로 또 매력이 있다.
그런 파란 하늘을 보기 위해 며칠씩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그렇게 작심한대로 차를 몰고 료칸을 출발.
오늘(4일째)의 목표는 료칸을 떠나 비에이의 포토제닉한 명소들을 몇군데 돌아 본 뒤 후라노를 거쳐 삿포로까지 가는 거다.
일단 이 구간에는 산길이나 험지가 없어 느긋한 마음으로 출발한다.
이미 오전의 파란 하늘은 사라지고 눈발이 날렸다 사라졌다 하는 날씨.
그런데 저 구름 너머로 햇살이 비치는 날씨가 어찌 보면 눈밭을 더 신비롭게 보이게 한다.
그리고 한 30분을 이렇게 달려도 다른 차를 만날 수가 없다. 이게 바로 비에이의 가장 큰 매력.
켄과 메리의 나무를 지나 한참을 달리면 '세븐 스타 나무'가 나온다.
비에이의 명소들을 골라 다니는 관광버스가 저 멀리 서 있다.
이렇게 해서 본격적인 비에이 나무 투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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