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무어라는 이름을 모를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로저 무어는 제임스 본드로 변신하기 전, 두 편의 주목할만한 TV 시리즈에 출연합니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시리즈는 <세인트>일 겁니다. 항상 성자의 이름을 가명으로 쓰고, 특유의 사인을 현장에 남기는 괴도 세인트의 모습은 그가 표현한 제임스 본드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로저 무어의 세인트 연기는 AFKN을 통해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 시청자들이 볼 수 있었던 <세인트>는 무어의 후계자 아이언 오길비가 사이먼 템플러 역할을 맡았던 <돌아온 세인트>였죠. 그래서 오늘 여기서 소개할 시리즈는 바로 <전격대작전>, The Persuaders입니다.
The Persuaders (1971-72)
Tony Curtis .... Danny Wilde
Roger Moore .... Lord Brett Sinclair
Laurence Naismith .... Judge Fulton
설정에 따르면 대니 와일드는 그리 고급스럽지 않은 집안 출신의 미국 백만장자, 브렛 싱클레어는 뼈속부터 영국 귀족인 모험가입니다. 성분이 영 다른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만사태평에 겁이라곤 없는 사나이들이라는 점이죠. 어느날 풀턴 판사는 법으로 해결하기 힘든 국제 범죄자들을 두 사람을 통해 처단하자는 야심을 품게 됩니다. 안 그래도 아드레날린이 넘쳐 나는 두 사람은 당연히 OK를 하죠. 이렇게 해서 한 시즌의 모험이 시작됩니다.
올드 팬들은 <스팔타커스>의 미남 스타 토니 커티스의 '망가진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두 빅 스타의 만남은 그 자체로 화제였습니다.
뉴욕 슬럼가를 헤치고 살아남은 야심만만한 와일드와 사빌 로우의 고급 양복을 걸친, 그야말로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금방 걸어나온 필리어스 포그의 현신 같은 싱클레어는 사사건건 부딪힙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분위기상 두 사람은 기관총이 소나기처럼 퍼붓는 상황 속을 걸어나오면서도 농담을 주고 받을 것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 앞에 해결되지 않을 문제는 없겠죠. 이런 장면이 기억납니다.
(지독한 난리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두 사람. 대니 와일드는 완전히 거지 꼴이 다 된 반면, 싱클레어 경은 양복-그것도 흰 색-에서 톡톡 먼지를 털어내고 있다.)
와일드: 이봐, 자네는 어떻게 이 난리통에서도 그렇게 깔끔한거야!
싱클레어: (눈길도 주지 않고 먼지를 털며) 흠. 그거야말로 자네와 내 차이 아니겠나.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농담은 오래 전 토니 커티스가 잭 레먼과 함께 주연한 <뜨거운 것이 좋아>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전격대작전>에서는 토니 커티스가 잭 레먼이 되고, 로저 무어가 토니 커티스처럼 보인다는 것이죠.
사실 두 주인공이 너무도 위력적이라는 것은 이 시리즈가 단 1시즌으로 끝맺게 된 요인이 됩니다. 절대로 실패할 것 같지 않은 주인공이 두 사람이나 되는데 대체 어떤 놈의 악당이 거기에 당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즉 '우리편이 너무 강하다 보니' 한두번이면 몰라도, 한 시즌 내내 흥미를 유지할 수가 없었던 거죠.
결국 <전격대작전>은 한 시즌으로 막을 내리고, 로저 무어는 안 그래도 전부터 오라고 오라고 난리를 치던 007 쪽으로 눈을 돌려 <죽느냐 사느냐 Live and let die>에 출연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연기하는 여유 넘치는 영국 신사 스파이의 모습은 <세인트>에서건, <전격대작전>에서건, 그리고 007 시리즈에서건 결국 그게 그거였죠. 물론 그게 그거라서 싫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진정한 007은 숀 코너리가 아니라 로저 무어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p.s. 이제 제목에 대해 얘기할 시간입니다.
위 사진은 <전격대작전>의 오프닝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노자무어 형님이 달러 지폐로 담뱃불을 붙이고 계십니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100불짜리 벤자민이겠죠.
저 장면을 보고 맨 위에 있는 <영웅본색>의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과연 우연일지, 아니면 모방일지, 오우삼씨는 진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전격대작전>의 오리지널 오프닝입니다.
2009년 개봉 예정으로 제작중인 영화판 <전격대작전>.
누굴까요? 조지 클루니와 휴 그랜트입니다.
현역 배우로는 최고 캐스팅인 것 같군요.^^
물론 오리지널 배우들에게는 그래도 좀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지만.
원작의 향기를 살짝 느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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