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고, 다들 좋다고 할 때는 역시 다 이유가 있다. 프라하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 다니는 곳은 카를교 와 프라하 성, 그리고 구시가 광장 이다. 그리고 볼거리로 따지자면 역시 프라하 성이다. 그런데 프라하 성에 가면 프라하 성이 보이지 않는다(볼 수가 없다).
위 사진 같은 모습을 보려면 프라하 성을 내려와 강을 건너야 한다. 강 건너, 혹은 카를교를 비릇한 여러 다리 위에서 보는 프라하 성이 제일 아름답다. 간혹 프라하 성의 야경을 보기 위해 밤에 프라하 성으로 올라가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 바보 짓이다.
가까이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멋지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게 프라하 성의 비밀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지도 나온다.
프라하의 핵심 지역. 왼쪽 붉은 원이 몰려 있는 곳이 바로 프라하 성이다. 동서로 살짝 긴 고구마같이 생겼다.
블타바강은 프라하 시내를 구불구불 관통하기 때문에 딱 뭐라 잘라 말하긴 힘들지만, 대략 남에서 북으로 관통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서울처럼 강남과 강북이 아니라, 대략 강동과 강서로 도시를 가르는 셈이다.
프라하 성은 블타바 강을 기준으로 강서 지역의 고지대에 다소 비스듬하게 위치해 있다. 따라서 위 지도에 Charles Bridge 라고 나와 있는 카를교에서 볼 때 정면을 마주할 수 있다.
프라하 주변의 고지를 찾자면 오전에 갔던 비셰흐라드와 이 프라하 성(체코말로는 프라쥐스키 흐라드 Prazsky Hrad 라고 한다고 한다) 정도인데 특히 이 프라하 성의 위치는 프라하 전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요충지이므로, 프라하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수없이 성을 지었다 개축했다 했던 곳이다.
이해를 돕기 위한 항공사진. 성이라고는 하지만 프라하 성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산성이나 옹성의 느낌이 아니다. 즉 성벽이 없다. 성벽이 있어야 할 자리에 건물과 창들이 죽 자리잡고 있으니 막상 안에 들어와서는 건물은 많이 봤는데 저게 성이었어? 하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거다.
(그나마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는 북쪽 면은 대다수 관광객들의 눈으로부터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비교 대상을 알함브라 궁으로 삼는다면, 이게 주변에 일단 성벽과 해자로 민간 세계(?)와 성을 딱 구분해 놓고 시작한데다 알카자르 같은 요새의 흔적도 있으니까 아 여기가 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프라하 성은 그런게 전혀 없다. 그냥 촘촘하게 붙어 있는 빌딩들이 성처럼(!) 빙 에둘러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앞서 말했듯 처음에는 성곽도 있고 요새도 있고 했던 것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불필효한 요소는 치워 버리고, 그냥 건물들로 둘러싸인 성이 되었다는 그런 얘기다.
위 항공사진과 이 지도를 같이 보면 이해가 쉽다. 이 지도의 굵은 선들이 모두 성벽이 아니고 건물이다. 물론 비상시에는 성벽 역할을 하겠지만, 이미 화약무기가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 이후에도 계속 이 성이 증축되고 사용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실 성벽과 해자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이 성 지역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성 비투스 대성당이다. 누가 봐도 성당같이 생긴 저 큰 건물 말이다.
멀리서 볼 때는 그냥 이 정도밖에 안 보인다.
그러다 회랑을 통과하면 갑자기 큰 건물이 훅 눈에 들어오는데 그게 대단히 인상적.
이렇게 불쑥 등장한다. 알고 보면 건물의 서쪽면인데, 큰 원형 스테인드글라스가 보인다.
이 성당 역시 이 성과 역사를 같이 해서 수백년간 건설되고 수십번 개축됐다.
저 디멘터같이 생긴 가고일은 언제부터 있었을지.
사실 성 비투스 대성당을 한바퀴 돌다 보면(돌기 싫어도 입장 줄이 길어서 한바퀴 돌지 않을 수 없다) 성당의 주인공이 저 가고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고일이 유독 눈에 띈다.
큰 성당 좀 다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가고일은 본래 높은 곳에 괸 빗물을 흘려보내는 배수구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오래전에 본 '노틀담의 꼽추'에서는 콰지모도가 저 구멍으로 끓는 물을 부어 침입자들을 물리치기도 하는 모습이 나온 듯.
(너무 옛날이라 기억이 불확실할수도 있음. 미리 발뺌.)
아무튼 몸을 한껏 뒤로 젖혀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성 비투스 대성당을 바라보니 뭔가 아찔하면서 멋지다.
이 건물을 이해하기 위해 일단 볼 수 있는 3개 사면을 같이 보는 것을 권장한다.
방금 전에 본 모습이 서쪽 정문, 즉 두개의 첨탑과 원형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면이었고,
이게 남쪽 면이다. 중앙 탑 양쪽으로 스테인드글라스들이 주르르 도열돼 있음을 볼 수 있다.
반대쪽인 북쪽 면은 첨탑이 없고 거의 비슷한 모양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쪽이 성당의 동쪽 면. 즉 주 제단 High Altar 가 있는 쪽이다. 곧 날아오를 것 같은 용의 형상이다.
유럽지역의 대성당들을 볼 때마다 어딘가 dragon의 느낌을 건물에 담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약 20년 전 프라하에 처음 왔을 때, 이 비투스 대성당의 동쪽 면이야말로 사악한 용의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더랬다. 경외감을 넘어 다소 공포를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아무튼 이런 모습의 성당이다. 안으로 들어감.
서쪽 입구로 들어가 동쪽 주 제단 High Altar 쪽을 바라본다. 역시 용의 등뼈같은 저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세비야나 밀라노의 대성당을 보고 온 사람들에겐 그리 큰 감흥은 없다. 대성당들의 구조는 거의 비슷비슷하기 때문. 하지만 이 성 비투스 대성당에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바로 아르누보 시대에 대폭 교체된 스테인드글라스.
다른 거대 성당들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비해 대단히 장식적이고 화려한 맛이 있다.
외경에서도 볼 수 있듯 수많은 스테인드글라스들이 줄지어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스타 중의 스타가 있는데,
바로 이 분.
그림체를 보면 딱 아실 수 있는 알폰소 무하 님의 작품이다. 대부분의 스테인드글라스들이 모자이크를 기본 표현 수단으로 삼는데 이건 그림이다. 20세기 초의 작품이라 그런지 아직도 매우 선명하고 아름답다.
흥미로운 것은 하단의 이 요상한 표시. 많은 사람들이 이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대체 방카 슬라비아가 뭐야?"하는 궁금증을 갖는다. 답은 PPL이다. 상업미술의 대가인 무하 님의 작품을 여기에 설치하기 위해 자금을 댄 후원사가 바로 BANKA SLAVIE 라는 은행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무하 님은 저렇게 대문짝만하게 후원 마크를 박아 주셨다. 기업광고의 효시... 정도 될 것 같다.
(이 슬라비아 은행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거나, 이름이 바뀐 것 같다.)
건물 북쪽으로 2층에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는 구조가 다소 특이했다.
바깥 사진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방문자가 서쪽으로 들어와 동쪽의 주 제단 High Altar 을 바라보면 이런 뷰가 나온다. 새벽 미사 때면 저 스테인드글라스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을 것이고,
채광창으로 이렇게 빛이 들어와 실내를 더욱 신비롭게 하고 있었을 거다.
프라하 여행을 가면 꼭 듣게 되는 '성인 네포묵'과 관련된 그림. 14세기 말 프라하 대주교였던 얀 네포무츠키 Jan Nepomucky 는 왕비의 고해 내용을 알려달라는 국왕의 부탁을 거절한 이유로 고문을 당하고, 결국 혀를 잘린 채 카를교에서 강물에 던져지는 형벌을 받았다(당연히 죽었다). 그런데 그 뒤로 카톨릭 사제의 의무(고해성사의 비밀 준수)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공로를 높이 인정받아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체코말로는 얀 네포무츠키, 독일식으로는 요하네스 폰 네츠무크라고 불리는 분의 일대기다.
그림 좌하단에 왕비의 고해를 듣고 있는 네포무츠키의 모습이 있고, 오른쪽엔 국왕으로부터 직접 신문당하고 있는 네포무츠키의 모습이 있다. 그러니까 왼쪽 아래 모습은 자료화면인 셈이다.
이렇게 길게 설명한 이유는, 그 그림 바로 옆에 이렇게 네포무츠키 성인의 화려한 관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물론 시신은 없다). 은 2톤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침묵으로 신의를 지킨 그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저렇게 맨 꼭대기에 잘린 혀를 강조해놓고 있다. 맨 위, 천사 옆의 방패에 새겨진 명란젓같은 형상이 바로...혀다.
그리고 성당 남쪽 면에는 아마도 근대에 만들어 넣은 듯한 체코의 국가 문장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유럽을 다니다 여러 나라의 문장을 보다 보면 세상에 동물이 사자와 독수리밖에 없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자와 독수리는 인기있는 동물이다. 체코 역시 국가를 상징하는 동물로 사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잘 보면 꼬리가 두개라는 점이 특이하다. 잉글랜드의 국가 상징인 일어선 사자 lion rampant와 유사하지만 가장 큰 차이가 역시 꼬리다.
꼬리가 두개인 사자는 '브룬츠빅(Bruncvik)의 사자' 라고 부르는데, 브룬츠빅은 바츨라프 성인과 함께 체코의 전설적인 영웅이다. 흔히 '체코의 오딧세우스'라고 불린다는 그는 마법의 칼을 가진 전사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머리 아홉 달린 사자와 싸우는 신령한 사자(꼬리가 두개였다)를 도와 싸움에 이긴 뒤, 그 사자와 함께 온 세상을 누비며 모험을 한 양반이다. 브룬츠빅이 늙어 죽자 사자도 먹이를 먹지 않고 무덤 곁을 지키다 따라 죽었다(사람보다 오래 살았다니 역시 보통 사자가 아니다).
아무튼 체코가 위기에 빠지면 민족 영웅 바츨라프 Wenceclaus 가 브룬츠빅의 마법의 칼을 들고 달려와 민족을 구원할 것이라는게 체코의 흔한 민간 신앙이라고 한다. (이상 '동유럽 신화/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참조)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74644987
아래 문구인 Pravda Vitezi 는 "진실은 승리한다"는 뜻. 종교개혁자 얀 후스의 말에서 따 온 것이다. 저 문장 하나에 체코라는 나라의 요체가 다 들어 있는 셈이다.
남쪽으로 나와서 성 비투스 성당 구경을 마무리.
비투스 성당을 빼고 나면 사실 프라하 성 안에서 구경할 거리는 별 특별한 것이 없다. 왕궁 미술관이 있는데 작품 수도 꽤 된다고 하나 프라하 성에서 미술관 구경을 했다는 사람은 못 본 것 같다.
그 다음이 성의 남사면을 구성하는 '구 왕궁'인데,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별로 찍을 것도 없다.
창밖으로 내다보면 이런 풍경. 저 멀리 블타바강이 보인다.
찍지 말라고는 하는데 대체 왜 찍지 말라는지 알 수 없어 한장 찍었다. 구 왕궁 내부의 메인 홀이다. 지금도 체코 국가 정상이 주최하는 연회가 가끔 열린다고 한다. 유럽의 실내 홀 중에서는 가장 크다던가 뭐 그렇다. 특별히 감동적인 면은 없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 연회장 옆의 한 방(구 국회였나, 궁정 평의회였나 뭐 그런 이름이었다)에 합스부르크 가 황제와 황족들의 초상화를 그대로 걸어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체코는 17세기부터 약 300년 동안 합스부르크 황제들의 지배를 받았다. 그런데 독립을 쟁취한 지금까지도 당시 황제들의 그림을 걸어 놓고 있는 것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광화문 뒤에 아직도 조선총독부 건물이 있고, 그 건물 안에 여전히 천황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고 상상해 보자. 가당키나 한 일일지. 그런데 이 나라 사람들은 '어쨌든 그것도 우리의 역사'라는 입장이라고 한다.
...한국인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사고방식인데, 아무튼 그렇다고.
구왕궁을 지나 발길은 황금소로로 간다.
황금소로란 프라하 성의 북쪽 성벽 안쪽에 다닥다닥 붙어 지은 작은 집들의 거리를 말한다. 가이드북들은 주로 '동화 속 마을처럼 색색깔로 아름다운 작은 집들이 잇달아...'라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직접 가 보면 대체 조만한 집 속에 어떻게 사람이 들어가서 살았다는 것인지 의아할 정도로 좁고 궁벽하다. 사람 한두명이 들어가 그냥 눕기도 힘들 정도의 공간들이다.
그리고 황금소로라고 이름을 붙여서 그렇지 사실 사람들이 기억하고 보는 건 딱 하나다. 바로 저 22번 집 오른쪽에 붙어 있는 검은 줄 같은 표시.
'프란츠 카프카가 살던 집'이라는 표지 하나다. 카프카가 이 집에 그리 오래 산 것도 아니고, 아무튼 황금소로의 이 집에 산 적이 있다는 얘기다. 카프카가 이 집에서 글을 썼을까. 글쎄. 안에는 타자기 하나 올려 놓을 책상 하나 들어갈 공간도 없어 보인다. 침대나 하나 겨우 들어갈까 말까.
아무튼 천재 소설가가 살았다는 인연 덕분에 궁정에는 카프카의 동상이 서 있다. 왜 알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알몸인 탓에 동상의 한 부분만 금빛으로 빛난다. 아아...;;;
청동상은 본래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닿은 부분은 저렇게 된다.
스타 작가가 수십년간 받았을 성추행의 환난에 잠시 묵념.
일단 프라하 성 이야기는 이정도. 빨간 지붕을 보며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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