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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칸도 오픈 시간 오전 9시. 보나마나 인파가 몰릴 것이 뻔하기 때문에 부랴부랴 일어나 오전 8시30분에 에이칸도 정문 앞에 도착했다. 한국 같으면 산사를 연상하겠지만 교토는 거의 평지. 

교토 3일차. 오늘의 목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젠린지(에이칸도)를 오픈런으로 때린 후 인접해 있는 난젠지를 구경하고 교세라 미술관, 가능하면 그 앞의 교토 근대미술관까지 훑어보는 것으로 대략 정했다. 

교토의 지리 기준은 일단 도시 중앙에서 살짝 동쪽을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가모 강을 인식하는데서부터 시작한다. 대부분의 교토 시내는 가모 강 서쪽, 그러니까 지도상으로 가모 강 왼쪽에 있다. 교토 역, 시조 가와라마치 등 대부분의 번화가는 강 서안이다. 

그 반대쪽, 헤이안 신궁에서 더 동쪽을 히가시야마(한자로 동산, 즉 동쪽 산) 지역이라 부른다. 저 에이칸도/난젠지 지역을 기준으로 북쪽으로는 유명한 '철학의 길'이 이어지고, 그 끝무렵에 역시 유명한 은각사가 있다. 철학의 길 자체가 유명 관광 포인트이므로 체력이 좋은 분들은 에이칸도에서 시작해 북으로 대략 1시간 정도 걸어가는 코스도 생각해 볼만 하나, 저질체력 부부로서는 딱 봐도 무리데스. 아무튼 계획은 그렇고, 늘 그렇듯 여행은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는 거다.

아침의 제법 쌀쌀한 공기 속에 도착한 에이칸도 정문은 글자 그대로 관광엽서 같은 모습이다. 

젠린지는 한자로 선원사( 禅院寺), 에이칸도는 한자로 영관당(永観堂). 853년 창건. 본래 이름은 젠린지이지만 7대 주지인 에이칸 永観이라는 고승이 사원을 크게 증창시키면서 아예 그 이름이 절 이름을 대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쉬운 말로 천년고찰 천년고찰 하지만, 말 그대로 1200년이 되어 가는 고찰이다.

물론 그 이후에도 계속 개축되고 번창했기 때문에, 특정 양식을 이야기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개장 30분 전부터 줄이 500미터는 족히 늘어져 있다. 

주차장을 한바퀴 감고

이 표지판은 꽤 유용한 것 같다. 사람들이 어디가 줄 끝인가 헤매지 않고 직행할 수 있다. 

그래도 수백년간 단풍철이면 인파에 시달려 온 에이칸도 스님들의 놀라운 효율성으로 줄은 척척 줄어들고,

드디어 입장. 아까 그 입구와 비슷해 보이지만, 여기서부터 진짜 에이칸도가 시작된다. 

헤헤

딱 들어서면서부터 주위를 압도하는 빨간색 물결.

'단풍의 에이칸도'라는 별명은 17세기부터 기록에 존재한다고 한다. 

아침 햇살을 맞은 단풍이 정말 곱다. 

 

대략 이런 느낌.

사실 중간에 신을 벗고 들어가라는 곳이 있어서, 전날 고다이지에서 겪은 대로 '건물 안에 뭐 볼게 있겠니'하고 지나쳤는데, 사실 여기는 절대 지나치면 안되는 곳이었다. 

그 이유는,

밖에서 건물을 구경하다 보니 이런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건물과 건물이 이런 식의 회랑과 난간으로 죽 이어져, 회랑을 걸으면서 단풍이 우거진 정원을 구경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구조였던 것이다. 이 회랑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고, 15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그러니 이 '단풍의 에이칸도'는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큰일날 뻔 했네. 되돌아가서 건물 안으로 일단 들어가려 했는데, 그 전에 '보물 다보탑'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일단 게단을 올라가 본다.

그 위에서 보이는 에이칸도의 지붕들.

이것이 다보탑. 전날 갔던 조잣코지의 다보탑과 거의 똑같은 모습이다. 역시 탑 상부는 볼 수 없는 구조다. 

교토가 평지라는 것을 한방에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구도.

한 50미터나 올라왔을까? 그런데 이렇게 저 끝까지 보인다.

이런 식으로 교토 시내 전망대 역할을 한다. 

자, 다보탑 구경을 했으니 에이칸도의 단풍 회랑으로 뛰어든다.

글자 그대로 '뛰어든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이런 느낌.

햇살 때문인지 실제 보는 것보다 살짝 색감은 흐릿한데, 아무튼 이 회랑이야말로 왜 이 절이 '단풍의 에이칸도'라고 불리는지 실감하게 해 준다. 정말 지끔까지 본 어떤 정원보다 단풍과 건물이 이뤄내는 조화가 뛰어나다. 

여기부터는 일종의 중정 개념. 지금까지가 단풍 숲 속을 건물과 전각이 갈라놓고 있는 느낌이었다면, 여기는 건물 안쪽 뜰을 단풍이 채운 느낌이다. 즉 단풍이 건물을 품은 것과, 건물이 단풍을 품은 것의 차이 정도. 

여기도 마루처럼 생겼지만 외부로 노출된 회랑과는 달리, 창문이 끼워져 있다. 

옛날이라면 장지문이었겠지. 

선을 그어 놓으면 더 예뻐 보이는 이 신기한 느낌.

걸어가면서 찍은 느낌.

사실 왼쪽의 방 안에는 일본의 국보급 전통 회화들이 다다미방의 문틀이나 벽장을 장식하고 있는데, 왼쪽은 촬영 불가. 안타깝다. 아무튼 그런 국보급 회화들로 채워진 방을 구경하는 것도 감동적이다.

이런 느낌의 그림들. 16-17세기 화가 가노 모토노부 狩野元信 의 작품이라고 한다. 일본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성이 '가노'인 화가가 매우 많다는 것을 알텐데, 그들이 모두 한 집안으로 이뤄진 가노파의 화가들이고, 가노 모토노부는 그 집안을 일으킨 2대 화가 정도 된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그림들이 방마다 이어진다.

바깥쪽에서 보면 이런 느낌. 

그 중정의 요염함을 한눈에 보기가 쉽지 않은데,

중정이 끝나는 부분에서 보면 대략 이런 뷰가 나온다.

 

 

환상적이다.

그리고 모퉁이를 도는데 묘한 표지 하나가 눈길을 끈다.

'고려등롱'. 일본어를 모르고 한자로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400년 전 조선에서 건너온 물건이라니, 대략 임진란 때 온 물건.

400년 전에 건너왔다고 하니 조선시대 것인지, 고려시대 것인지, 혹은 더 오래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이제는 여기에 자리를 잡았다.

인연이 있어 뵙습니다, 석등님. 

(에이칸도는 다음 회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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