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리즈시절'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됩니다. 대략의 의미를 알고 쓰시는 분도 있고, 그냥 남들이 쓰니까 쓰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가끔 꽤 엉뚱한 의미로 쓰시는 분들이 눈에 띄는게 조금 거슬립니다.
사실 '리즈시절'같은 말은 세월이 얼마가 흐르든 절대 사전 같은 곳에 등재될 말도 아니고, 누가 그런 의미에 크게 얽매일 말도 아닙니다. 하지만 '리즈 시절'같은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은 분명 그 사회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고, 왜 그런 말이 등장하게 되었는지 정도는 누군가 정리할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문화어 사전]이란 항목으로 나오는 글들은 그런 목적에 따른 것들입니다.
리즈 시절 [관용구]
뜻: 간단히 말해 ‘전성기’
2005년 박지성이 전통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을 때, 같은 맨유 소속이던 앨런 스미스를 두고 일부 팬들이 “앨런 스미스도 리즈 시절엔 날아다녔는데”라며 자신의 축구 지식을 자랑한 것이 유래다.
여기서 리즈(Leeds)는 영국의 프로 축구 클럽 리즈 유나이티드를 말하며, 이는 곧 ‘나는 박지성 때문에 영국 프로 축구에 관심을 가진 너희와는 달라’라는 잘난 척이다. 하지만 이후 ‘OOO의 리즈 시절’이라는 식의 관용구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연예인을 지칭할 때에도 널리 사용되며 ‘옛날’ ‘성형 전’, 심지어 ‘학생 시절’을 가리키는 말로 오용되는 사례가 눈에 띈다. 하지만 원 뜻은 어디까지나 ‘가장 빛나던 시절’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리즈 유나이티드는 21세기 들어 무리한 구단 운영으로 성적이 추락, 2004년 2부 리그로 강등된 이후 1부(프리미어 리그)에 올라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국내 축구 팬들이 안방에서 리즈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저 위 사진이 바로 리즈 유나이티드 엠블렘을 자랑스럽게 들어 올리고 있는 앨런 스미스입니다. 2000-2001 시즌 리즈를 UEFA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올려놓은 것이 앨런 스미스의 선수생활 중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즈가 몰락한 것은 위에서 적은 바와 같고, 팀 말고 앨런 스미스 개인으로 봐도 98-99 시즌 EPL에 데뷔해 리즈에서 뛴 첫 6년 동안 38골을 넣었고, 다른 팀으로 이적한 뒤 현재까지 10년 동안 10골을 넣었으니 확실히 리즈 시절이 그에겐 최고의 나날이었던 듯 합니다. 아무튼 당시엔 벤 애플렉을 연상시키는 미모가 매우 출중했군요.
결론적으로 '리즈 시절'이라는 말은 '가장 잘 나가던 시절'이란 뜻입니다. 그냥 '옛날', 심지어 '사람들이 잘 모르던 시절'이란 뜻으로 쓰시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진에도 '리즈 시절'이라는 제목이 붙어 돌아다니는데, 물론 재미있긴 하지만 이런게 '리즈 시절'은 아니라는 거죠.^^ 뭐 말의 의미라는 것이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니 계속 쓰이다 보면 아예 이런게 '리즈 시절'이란 뜻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송혜교는 여전히 리즈 시절의 한복판이군요. 시들지 않는 미모와 인기.
미란이[고유명사]
올란도 블룸의 아내인 세계적인 톱모델 미란다 커(Miranda Kerr)를 한국 팬들이 친근하게 부르는 이름. 퍼스트네임인 미란다와 한국 여자 이름인 ‘미란’의 발음 유사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런 식의 ‘한국식 명명’은 한국인 특유의 가족주의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레이 아나토미’로 유명한 캐서린 헤이글은 한국 소녀 네일리(Naleigh)를 입양한 덕분에 ‘김서린’이라고 불린다.
이 계열에서 ‘석호필(石虎弼)’ 웬트워스 밀러를 빼놓을 수 없다. 밀러가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맡았던 캐릭터 이름인 스코필드를 한국식으로 변형한 이름인데, 사실 이 이름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캐나다 선교사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가 원조다. 스코필드 박사는 3.1운동을 서구에 알린 공로 등으로 1968년 건국훈장 독립훈장을 수상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 리스트는 1627년 풍랑에 밀려 도착한 네덜란드인 얀 벨테브레(Jan Weltevree)에 도달한다(흔히 ‘한국에 도래한 최초의 서양인’으로 오인되는 하멜보다 26년 빠르다). 끝내 조선을 탈출한 하멜과 달리 벨테브레는 박연(朴燕)이란 한국 이름으로 적응해 잘 살았고, 병자호란에도 종군했다. ‘하멜 표류기’에도 박연이 하멜의 탈주를 말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후 구한말엔 고종의 외교 고문 목인덕(穆麟德, 독일인 파울 폰 묄렌도르프), 영국 언론인 배설(裵說, 어니스트 베델), 연희전문 설립자 원두우(元杜尤, 미국 선교사 호레이스 언더우드) 등이 이 전통을 이었다. 물론 거스 히딩크의 애칭 희동구(喜東丘)도 이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뭐 한두분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거론하기는 그렇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가문을 꼽으라면 아에 '연희 원씨'라고 스스로 부르는 언더우드 패밀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원두우-원한경-원일한-원한광 박사에 이르기까지 4대가 120년간 한국과 인연을 맺은 집안이니 누가 이분들을 외국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희동구 이야기는 전에도 거론한 적이 있으니 링크로 대신합니다.^^
히딩크는 왜 희동구가 되었나? http://fivecard.joins.com/43
소공녀(小孔女) [명사]
뜻: 모공이 작아 HDTV의 압박을 견딜 수 있는 피부 미인
한자가 다른 ‘소공녀(小公女)’는 미국 여류 작가 프랜시스 버넷이 1888년 펴낸 소설 ‘Little Princess’의 일본 번역판 제목. 한국에도 같은 제목으로 소개된 뒤 아동문학의 고전으로 오랜 기간 동안 사랑받아왔다. 부유한 장교의 딸로 민친 기숙여학교 학생이던 사라 크루(Sara Crewe)가 아버지가 행방불명 된 뒤 학교의 하녀로 신분이 급전직하되지만, 강인하고 낙관적인 성격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이야기다.
하지만 2013년의 ‘소공녀(小孔女)’는 글자 그대로 ‘모공(毛孔)이 작은 여자’라는 뜻. HDTV의 등장 이후 많은 여자 연예인들이 ‘피부나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고화질’에 대한 공포를 호소해 왔고, 그 뒤로 피부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됐다. ‘도자기 피부’ ‘단백질 인형’ 등의 표현이 대표적이며 급기야 ‘소공녀’까지 등장했다.
2013년 5월 한 유명 피부클리닉에서 내원객 547명을 대상으로 ‘최강의 소공녀’를 설문조사한 결과 미스A의 멤버 수지가 35%의 지지로 당당 1위에 뽑혔다. 만 19세의 나이를 생각하면 불공평한 결과일 수도 있겠으나, 그만치 ‘아기 피부’에 대한 여성들의 염원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P.S. 소설 ‘소공녀’의 영원한 파트너인 ‘소공자(小公子)는 같은 프랜시스 버넷이 1886년 펴낸 ‘Little Lord Fauntleroy’의 번역판 제목. 두 작품이 한 작가의 작품이란 것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뉴욕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살던 소년 세드릭(Cedric)이 어느날 영국 귀족인 할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후계자가 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미국 여자와 결혼한 아들을 버렸던 완고한 할아버지가 영리하고 품성 좋은 소년 세드릭의 힘으로 인간미를 되찾게 되는 훈훈한 이야기다.
버넷은 ‘소공자’, ‘소공녀’는 물론 1909년작 ‘비밀의 화원(Secret Garden)’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물론 현빈 하지원 주연의 드라마와는 무관한 내용이다.
프란시스 버넷 여사는 작품세계와는 달리 매우 씩씩하게(?) 생긴 분이더군요.
아무튼 소공자, 소공녀, 비밀의 화원을 모두 같은 분이 썼다는 것 정도는 기억하셔도 좋은 일일 듯. 참고로 JTBC에서도 곧 전현무-오상진-오현경이 진행하는 '비밀의 화원'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됩니다. 아, 물론 이것도 소설과는 무관한 미스코리아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잘 찾아 보시면 보너스 사진이 있습니다. 인디애나 존스3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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