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햇동안 본 영화들 중 좋았던 영화를 꼭 10편만 추리기 어려웠던 해가 더 많았습니다. 한국영화 10편과 해외영화 10편을 따로 꼽아야 하나 생각해 본 적도 있을 정도로. 그런 만큼, 올해같은 해는 정말 없었습니다. 10편을 채우기가 너무 힘든 해가 올 줄은.
물론 영화제들은 여전히 좋은 작품들에게 상을 안겼고 평론가들은 역시 걸작들을 꼽았지만 늙고 낡은 탓인지 이제 더 이상 공감할 수가 없더군요. 온갖 영화제들이 앞다퉈 '의미있는' 작품들에게 '의미있는' 시상을 하려 애썼지만, 재미는 없고 의미만 있는 영화가 상을 받은 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정치적 공정성/젠더/소수인종/소외자 이야기는 이제 그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내면 탐구도 이제 그만. 멀티버스/슈퍼히어로도 이제 그만. 의미 의미 의미 지겨워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 주세요. 재미만 있으면 관객들은 다시 극장을 찾을 여지가 충분합니다.
퍼스트 슬램덩크
굳이 줄거리를 설명해야 할까.... 백호의 빠른 성장으로 전국 대회 진출에 성공한 북산고. 1라운드를 신나게 통과하지만 역대 최강 산왕공고가 그 앞을 가로막는다. 1년 전 우승 멤버가 셋이나 주전으로 남아 있는 산왕. 아무도 산왕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는 상황이지만 겁없는 북산 5인조는 '우리가 악역이 되자'며 달려든다.
만화 <슬램덩크>의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기엔 두권 분량)인 산왕전을 한편의 영화로 만들었다. 대하 드라마의 허리를 뚝 잘라냈으니 그 앞의 서사나 각 인물의 캐릭터를 모르는 관객들에겐 다소 뜨악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잘 만들어진 이 영화 덕분에 오히려 슬램덩크를 몰랐던 세대가 만화 독자로 다시 유입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바람이 있다면.... 세컨드와 서드도 만들어 줬으면 하는 것.
화이트 타이거 (넷플릭스)
21세기에도 여전한 인도의 계급 사회. 최하 계층의 남자들은 그나마 좋은 직업인 '부잣집 운전기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부잣집 도련님은 "신분 같은 거 따지지 말고 친구처럼 대해 달라"고 하지만, 과연 그게 진심일지. 결국 사고가 터지고, 모든 사람들의 본색이 드러난다.
라민 바르하니라는 감독의 이름은 영화를 다 보고 알았다. 인도 감독인가 했더니 미국에서 나고 자란 이란계 감독. 이 영화 이후에 찾아 본 <라스트 홈 (99 Homes)>도 만족스러웠다. 이것이 아라비안 나이트 때부터 다져진 페르시아의 스토리텔링 실력인가. 문득 아스가르 파르하디가 떠올랐다.
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마코토의 속칭 '재난 3부작' 중 세번째. 큐슈 작은 도시에 사는 여고생 스즈메가 어느날 다른 차원을 여는 문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일본을 보호하는 다이진이 사라지면서 그를 회복하기 위한 모험이 시작된다. 서쪽 끝에서 거의 동쪽 끝까지 일본을 종단하며.
<너의 이름은>보다 <날씨의 아이>에서 놀라운 성취를 느꼈기 때문에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더 한층 발전을 기대했지만 그보다는 뒷걸음질치는 모습을 보여 살짝 실망. 하지만 그 자체로도 좋았다. 그들만의 스토리를 현대적인 이야기로 바꿔 놓는 일본의 기법은 이미 높은 수준에 올라 있다. 그런데 주인공들보다 다이진에게 더 공감하게 되는 건 왜일까.
스즈메의 문단속, 그런데 다이진은 불행해도 되는 걸까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오펜하이머
2차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순간.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들은 핵분열을 통한 가공할 에너지 분출을 무기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전쟁을 끝내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 나아가 지구상에서 전쟁을 없앨 수 있는 무기라는 명분으로 많은 사람들이 개발에 몰두한다. 그러나 이 개발 작업의 총 지휘자인 천재 오펜하이머는 그 폭탄이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이는 것을 보고 난 뒤...
그의 자서전 제목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너무나 적절한 명명이라는 생각. 그러나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니 크리스토퍼 놀란의 관심은 핵무기의 역사적 의미가 아니라 오펜하이머라는 독특한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관점에서 본 <오펜하이머>는 '어느 순진한 관종의 몰락기'.
오펜하이머, 관종의 추락에 대한 그리스 비극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미션 임파서블 7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
이미 할 얘기를 해 놓아서 별로 더 보탤 얘기가 없음. 아무튼 이 냉엄한 현실에서 과연 슈퍼히어로는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며, 어떤 식으로,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확실한 자리매김이 어느 영화보다 돋보였다.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원, 역대 최고의 MI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역시 굳이 더 보탤 얘기가 없다. 후배를 키우려면 토르나토레 같은 후배를 키워야.
토르나토레,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혼을 소환하다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서울의 봄
보고 리뷰를 쓸 때만 해도 이렇게 뒷심이 강한 영화일줄 몰랐다. '그래도 500만은 하겠지'가 가장 희망적인 기대였는데. 과연 어디까지 달려갈지.
서울의 봄, 세상에 영웅이 있음을 보여준 영화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노량
의외로 별로라는 평이 너무 많아 놀란 영화. '이순신이 왜 끝까지 전쟁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이순신을 전쟁광처럼 그렸다' '이순신이 박정희냐("...난...괜찮다..." 때문인 듯)' 등등의 평. 당시 이순신의 입장이라면 이게 과연 전쟁의 진짜 끝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는 점이 관객에게 제대로 어필되지 못한 것 같다. 그것만 이해해도 이런 몰이해는 없었을 것 같은데. 더 친절했어야 하는 것인가.
노량, 압도적인 피날레, 시리즈의 최고작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파벨만스
우리 시대 최고의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이젠 그도 '내가 어쩌다 영화를 직업으로 택하게 되었냐 하면'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을 것이다. '수퍼8'이 그의 유년기 이야기라면 이건 청소년기 이후의 성장기인 셈. 이제 노장이 된 스필버그도 '엄마 이야기'를 할 때면 조금 자신에게 너그러워 질 필요도 있었을 것 같다. 아무튼 스필버그가 가슴 속 깊이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잘 들었고, 자신의 영웅을 되살려낸 마무리도 아름다웠다.
약간의 느슨함이 느껴지지만, 이 또한 추억의 이름으로 충분히 이겨낼 만 했다. 물론 평년의 기준으로 이 영화가 정말 한 해를 대표하는 영화에 들만 하냐고 따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평생의 즐거움에 대한 예우로라도.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역시 우리 시대 최고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그의 작품을 보러 가며 문득 구로자와 아키라의 <꿈>이 생각났다. 80대에 접어든 노장의 신작을 볼 수 있는 기회(당시만 해도 일본 영화의 극장 정식 개봉은 허락되지 않았다)라는 말에 꽤 먼 어느 대학 교정까지 찾아갔더랬다. 그러나 보고 난 소감은... '세계 영화의 한 시대를 이끌었던 거장의 은퇴작이 고작 이런 것이라야 한단 말인가'라는 비참함.
구로자와가 유작을 예감하고 만든(물론 그 뒤에도 몇편 더 만들었다) 작품인 <꿈>에서 유년기의 꿈으로 퇴행하듯, 미야자키 역시 은퇴를 공언했던 <그대들...>에서 유년기의 꿈 속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다행히 그 꿈은 솔직했고, 어지럽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 전의 작품들과 같은 흐름이라 좋았다. 각각의 장면들이 무슨 의미를 띠고 있고, 그 전의 어떤 작품들과 어떻게 이어진다는 어지러운 주석들도 필요 없어 보인다.
어쩌면 '나를 따라하는 자는 죽는다', 이 말 한마디가 하고 싶었는지도.
그리고 제작 연도 때문에 조금 애매해서 따로 언급하는 영화.
울프 콜 (The Wolf's Call, French: Le Chant du loup, 2019)
사실 2023년에 본 영화중 당당히 베스트에 올릴 만한 작품이었지만 2023년에 2019년작을 꼽는 것은 좀 심하다 싶어 번외로 뺀다. 냉전시대의 유물이자 가장 확실한 핵 전쟁 억지력, 즉 '최후의 보복'인 SLBM 장착 핵 잠수함의 이야기인데 길게 설명하는 것 보다 안토닌 보드리 감독의 프랑스 판 <크림슨 타이드>라고 요약하는게 이해가 빠를 것 같다.
물론 <크림슨 타이드>가 수작이었던 만큼, 비슷한 소재를 다룬 <울프 콜>이 긴장감 면에서 그보다 못했다면 아예 개봉과 함께 묻혀 버렸을 것이 당연한 상황. 하지만 반대로 <울프 콜>을 본 사람이라면 이제 더 이상 <크림슨 타이드>를 이야기하지 않을 정도의 작품이라고 감히 평가한다. 오마 샤이, 마티유 카소비츠 등의 얼굴도 반갑다.
나는 부정한다(Denial, 2017)
이런 영화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넷플릭스를 통해 본 영화. 과연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은 실재했던 사건인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상식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음모설을 뿌리며 먹고 사는 기생충들이 존재한다. 한 음모론자가 홀로코스트를 가르치는 여교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영국 법에 따라 여교수는 홀로코스트가 실재했던 사건임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음모설, 가짜 뉴스, 가짜 역사...에 진짜 지식인들이 맞서 싸우는 방법을 보여주는 실무 교과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영화. 다혈질 여교수 역의 레이첼 와이즈보다 그 주위를 둘러싼 냉정한 변호사 군단의 연기와 역시 담담하기 짝이 없는 믹 잭슨의 연출이 돋보인다.
기타:
신작들에 실망하고 옛날 영화들을 하나 하나 찾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금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그냥 봐 줄 수 없는 영화들도 많았지만 아나톨 리트박 감독의 <바르샤바의 밤(a.k.a 장군들의 밤, The night of the Generals, 1966)>과 조셉 L 멘키위츠의 <맨발의 백작부인(The Barefoot Countess, 1956)>이 대단한 작품이었음을 새삼 느꼈다. 개인적으로 멘키위츠는 <지난 여름 갑자기>만으로도 최고의 감독이었지만, 이 작품 역시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 왕년의 일본 액션 스타 이치카와 라이조 주연의 <나카노 스파이 학교(陸軍中野學校, 1966)>도 대단히 매력적인 영화였다(이 영화를 베낀 몇편의 한-일 영화들이 떠올랐다). 속편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오시마 나기사의 <청춘 잔혹 이야기(靑春殘酷物語, 1960)>도 좋았지만 내게는 스가와 에이조 감독의 <야수는 죽어야 한다(野獣死すべし, 1959)>가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 역시 내게 이 시절 최고의 배우는 나카다이 타츠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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