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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스톤>.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파라마운트 드라마. 현재 미국에선 시즌5가 방송중이다. (계속해서 테일러 셰리단의 작품을 보고 있음) 배경은 '현재'.
코스트너는 미국 몬태나주에서 ‘로드아일랜드주만한 크기의 목장’을 소유하고 있는 지역 토호 존 더튼 역. 더튼과 충실한 2인자인 장남 리, 변호사인 차남 제이미, 반항적인 카우보이인 막내 케이시,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천재 딸 베스의 4남매가 변해 가는 주변 환경 속에서 ‘트래디셔널 아메리칸 웨이 오브 라이프’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에서 다루는 전통적인 미국인의 가치를 가장 간단히 요약하면 ‘내 집과 내 가족은 내가 내 힘으로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인 것 같다. ‘정의’의 기준은 ‘네가 넘어오면 결과는 네 책임이다’고, 좀 더 나아가 ‘자기 방어’의 기준은 ‘나와 내 가족을 위협하는 요소는 무엇이든 제거해도 된다’가 된다.
이 ‘무엇’ 안에는 해충과 방울뱀, 인간이 모두 동등하게 포함된다. 존 웨인 영화 속 세계가 21세기에도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자못 충격적이다.
보다 보면 그렇겠구나 싶기도 하다. 몬태나 주와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경찰력을 비교해 보면 각각 201명대 250명,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몬태나 주엔 남한 4배 정도의 넓이에 100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 경찰 한 명이 약 115제곱킬로미터를 커버해야 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경찰에 신고...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니 <옐로우스톤>에선 ‘시체 버리는 장소’가 자주 등장한다. 한 인물이 “왜 늘 시체는 여기다 버리느냐”고 질문하는데, 대답이 이렇다. “여기서 사방 100마일 내에는 인가도, 경찰도, 보안관도 없기 때문이지.”
케빈 코스트너는 말보로 광고에 나오는 듯한 19세기적 카우보이 보스였다가, 적들을 거리낌없이 제거하고 증거를 인멸하는 냉혹한 범죄단체 수장이었다가, 결국은 전통적인 미국의 개척정신을 수호하는 신념의 화신으로 미화된다. 총 몇방 맞은 정도로 의사 신세를 지는 것은 수치고(정말 존 웨인을 보는 것 같다), 그의 적들조차도 결국은 그를 존경하게 된다(물론 대부분 그 전에 시체가 되어 황무지에 버려진다). 한국의 꼰대 아저씨들 따위는 그 앞에 가면 순진한 유치원생처럼 보일 듯한 느낌이다.
이런 가치관에 동의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고, 미국의 단면을 본다고 생각하면 매우 흥미로운 드라마다. ‘아무리 악인이지만 내가 인간의 목숨을 이렇게 빼앗아도 되는가’ 따위의 고민은 아무도 하지 않기 때문에 고구마가 없다. 진행도 빨라서 정신을 차려보면 5시즌 순삭.
물론 보고 있으면 버본이 마시고 싶어진다는 부작용도 있다. 티빙에 시즌5까지 있음.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서서히 테일러 셰리던 월드에 젖어들고, 다른 작품들까지 모두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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