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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미스라는 조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지도 꽤 오래됐습니다. 대략 정의도 내려져 있죠. 고등교육을 받고 대략 전문직이나 대기업 등 안정된 수입을 갖고 있는 30대 중반 ~ 40대 초반의 미혼 여성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입니다.
이들은 노후 설계보다는 자기 계발을 위한 지출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문화, 패션, 피트니스, 미용 등 여러 분야의 주 소비층으로 각광받고 있기도 합니다. 흔히 이들의 성경은 HBO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문화적 취향은 뮤지컬(흔히 골드미스들이 없으면 사라질 장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에서 아이돌 마니아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그런데 이 골드미스로 분류되는 분들과 직접 대화를 나눠 보면 주변에서 보는 것과 제법 다른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흔히 이들은 '70년대 이후 경제적 풍요 속에서 성장했고, 자기 꿈을 이루지 못한 어머니 세대의 집중 지원을 받아 남자 형제 못잖은 교육 투자를 받아 한국 최초로 본격적인 여성의 사회 진출을 이룩한 세대'로 표현되곤 하죠. 이런 시각 이면에는 이들이 '결혼보다는 사회적인 성공을 선택한 것'이라는 주장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는 분들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4일, 완전히 리뉴얼된 JTBC 시사 코미디 쇼 '개구쟁이'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습니다. 코미디와 다큐멘터리, 가짜 다큐멘터리와 진짜 전문가 토크가 오가는 구도는 다소 낯선 것이었지만,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속시원히 얘기해 보자'는 취지로 개편된 '개구쟁이'의 첫회 주제는 '당신은 왜 결혼하지 않습니까' 였습니다. 여기서 참 많은 이야기가 쏟아졌죠.
가장 핵심적인 답변은 '돈이 너무 들어서'였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소개된 바에 따르면 2012년 현재 커플당 결혼 비용은 1억7000만원대라고 합니다. 뭐 있는 분들에게는 별 돈 아니겠지만, 새로 모든걸 시작해야 하는 젊은 커플들에겐 매우 부담스러운 금액입니다. 아무리 부모님의 지원을 받는다 해도 말이죠.
일반적인 서민 계층의 경우, 이 '돈 때문에 결혼 못한다'는 남녀들은 아마도 시간이 갈수록 더욱 증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취업후 서울 시내 전세 마련에 17년 걸린다'는 등의 메시지를 보면 더욱 그 심각성이 두드러집니다.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것은, 이런 금액 정도는 충분히 지불할 능력이 있는(당장은 아니더라도 미래 소득을 감안하면 충분히 선지출이 가능한) 전문직 종사자들의 결혼 연령은 왜 늦어지고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특히 위에서 얘기한 '골드미스'의 등장은 이렇게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A-B-C-D 이론이 등장합니다. +
사회학 혹은 심리학 분야에서 이 ABCD 이론은 너무나도 상식화되어 있는 이론입니다. 더구나 지구상 인류의 수많은 문화권에서도 거의 예외 없이 맞아 떨어지는 이론이기도 합니다.
핵심은 이렇습니다. 남녀를 모두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A,B,C,D 네가지 그룹으로 나누면(그룹의 수는 별 의미 없습니다. A,B,C 세 그룹으로 나눠도 마찬가지), 남자 A그룹과 여자 B그룹, 남자 B그룹과 여자 C그룹, 남자 C그룹과 여자 D그룹의 통혼이 가장 보편적인 혼례가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은 여자 A그룹과 남자 D그룹이 독신으로 남을 가능성이 가장 높아지더라는 것이죠.
따라서 각 문화권에서는 여자 A그룹과 남자 D그룹에게 '독신으로 살아가는 법'을 시스템화하기도 합니다. 인도 불가촉천민 집단은 어려서부터 남자에게 요리와 빨래 등 가사 활동을 가르치고, 과거 제정 러시아의 한 시대에는 여자 중 최고 서열에 속하는 공주들은 아예 결혼하지 못하고 수도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하가(下嫁)라는 것을 부정해버린 것입니다.
20세기 후반 들어서는 아예 통계적으로 이 이론을 검증하려는 시도들이 수없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 가설이 맞다는 것을 입증하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대략 요약하면 남자의 경우에는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결혼에 도움이 되었지만, 여자의 경우에는 별로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아래 링크로 인용한 조사는, 개방후 중국 상하이 지역의 남녀를 A,B,C 집단으로 나눠 분석한 것입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중국 남성들은 결혼에 앞서 '자신의 통제력'을 중요한 요소로 삼았고, 여성들은 '존중의 대상'으로서의 남성을 추구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A그룹 여성의 경우, 같은 커뮤니티의 A그룹 남성들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로 '이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대한 불안감이나 야심에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위치에서 볼 때 대부분의 A그룹 남성들도 이들에게는 '신통찮은 녀석들'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 연구는 이런 A그룹 여성들의 경우 상당수가 '외국인'에게 눈을 돌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하이는 교수, 사업가 등 다양한 층위의 외국인들이 있고, 특히 영어에 능통해진 A그룹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이들과 맺어지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것이죠. (매우 그럴듯하고, 낯익은 얘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http://ezinearticles.com/?The-ABC-of-Shanghai-Girls---A-Lesson-in-Loneliness&id=1327315
대략 반만년 인류 문화사가 입증하고 있는 이 추세에는 사실 해결책이 없습니다. 권위주의 시대라면 A그룹 여성과 D그룹 남성의 수를 강제로 줄여 균형을 맞추는 방법이 있었겠지만, 누구나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현대 문명 시대에 이런 식의 강제 균형은 불가능할 것이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어쨌든 설명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고학력/고연봉/고연령 남성군은 여전히 어리고 예쁜 여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반대로 여성은 아무리 '고학력/고연봉/고연령이라 하더라도 자신보다 우월한 사회경제적 지위의 남성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인 듯 합니다.
결국은 사람이 변해야 이런 문제가 사라질 수 있겠죠. 남성들이 생각을 바꿔 자신들과 동등한 사회적 성취를 이룬 여성을 파트너로 생각하는 시대가 오거나, 한편으로는 성공한 여성들이 자신보다 열등한 지위의 남성들을 피부양자로 생각하고 수용하거나(네. 실제로 일본에서는 골드미스들과 어린 꽃미남들의 커플링이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통적인 부양-피부양 관계의 파괴인 셈이죠.^^), 어떤 식으로든 전통적인 남녀 관계의 틀과는 다른 형식의 관계들이 늘어나야 할 듯 합니다. 물론 그렇게 되는 것이 필연이라거나, 혹은 반드시 지금보다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겠지만 말입니다.
'개구쟁이'는 이밖에도 다양한 문제들을 웃음으로 풀어냈습니다.
약혼자의 과거 남친은 이해해도 혼수 깎자는 말은 이해 못 하는 남자나,
결혼이 일종의 서바이벌 마켓이 된 것을 풍자하는 '위대한 며느리'(물론 '위대한 탄생'의 패러디입니다.ㅋ) 처럼 말입니다.
어쨌든 '개구쟁이' 첫회는 우리 사회의 이런 고민을 파헤치는 데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평을 얻고 있습니다. 비록 첫회다 보니 약간 정리되지 않은 부분도 있고, 조금 더 파고 들어야 했을 부분을 수박 겉핥기처럼 스치고 지나갔다고 볼 부분도 있겠지만 어디 첫 술에 배가 부를 수 있겠습니까. 차차 나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사실 다음주, 개편 2회차가 더 기대되긴 합니다. 이날의 주제는 '거짓말'. 특히 선거철이다 보니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대한 심도 있는 비판이 가해질 듯 합니다. 코미디를 통한 비판이 불편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원래 코미디란 사회 풍자에서 출발한 것임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 희극이나 희극인이 몸담고 있는 세상에 대한 날선 비판이야말로 진정한 코미디의 출발점이라는 건 다들 알고 계시죠?
(어쩌면 다음주 '개구쟁이'는 회사 높은 분들이 보시면 놀랄 수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대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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