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게 인생의 중요한 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음식에 관심은 많지만 맛집 관련 블로깅은 상당히 자제해 왔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세상 천지의 맛집 고수들 사이에 감히 낄 자격이 있나 싶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최근들어 맛의 세계에 가끔씩이라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아무래도 '미각스캔들'이란 프로그램의 영향이 큽니다. 어느새 JTBC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된 '미각스캔들'은 그 말하기 힘든 맛의 세계를 수업중인 무사처럼 성큼성큼 누비고 있습니다. 물론 그 선두에는 '트루맛쇼'의 김재환 감독이 있습니다.
'미각스캔들'의 사령관 역할을 하고 있는 김재환 감독은 연출 못잖게 문필가로도 명성을 날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겨레21'에 기고한 글 때문에 권 아무개씨의 말 많던 해외 경력이 다시 한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죠. 카메라 못잖게 글도 매섭습니다.
그런 김재환 감독이 '미각스캔들' 홈페이지에 다시 글을 올렸습니다. 제목은 '최종병기 MSG'. 제목부터 의미심장합니다.
어떤 내용일지 대략 짐작이 가시겠죠.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놀라운 내용이 많으실 겁니다. 한번 읽어 보시죠.
MSG를 검색해보면 이런 설명이 나온다. ‘1908년 이게다 박사는 일본인이 좋아하는 국물 맛의 성분이 다시마의 글루타민산(Glutamic Acid)임을 밝혀내고 그 성분을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자신의 발명품을 ‘아지노모도’란 이름으로 상품화했는데 그 강렬한 맛은 사람들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요리사가 아니라 화학자가 발명한 마법의 맛, MSG(Monosodium Glutamate)의 시작이었다.
1960년대부터 MSG 과다섭취로 인한 두통, 메스꺼움 등 이른바 중국음식증후군에 대한 경고가 잇따랐고 유해성 논란이 끊이질 않지만 우리나라 식당에서는 절대 MSG의 마법을 포기할 수 없다. 한식 요리사들을 만나보면 순수하게 재료 본연의 맛을 우려내 국물을 내려면 지금 음식값으로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거라고 말한다. 게다가 다들 화학조미료를 쓰는데 혼자 사용하지 않으면 MSG에 인이 박힌 소비자들이 그 식당을 외면할 것이다. 국제소비자연맹(IOCU)이란 단체는 10월 16일을 ‘화학조미료 안 먹는 날’로 정했다는데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이 소비되면 이런 날까지 정했겠는가.
통계를 살펴보니, 우리나라 MSG생산량 중 국내출하량은 2006년 1,910만 톤에서 2008년 1,242만 톤으로 오히려 준 것으로 나타났다. 마트에 가보니 심지어 MSG를 주로 생산해 성장해온 회사에서도 MSG를 쓰지 않은 조미료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라면과 같은 가공식품에도 MSG를 뺐다는 문구가 큼직하게 붙어있다. 광고만 봐서는 다 웰빙이다.
그럼 정말 MSG 사용량이 줄었을까? No! 이건 식품회사들의 마케팅 꼼수다. 옛날에 잘나가던 연예인 MSG양이 전신성형하고 개명해서 다시 걸그룹으로 데뷔한 거다. 식품 뒷면의 성분표기를 보면, ‘복합양념’ ‘00 시즈닝’ ‘감칠맛 조미분’ ‘00 분말’ ‘00 베이스’ ‘향미증진제’란 다양한 명칭의 변형 화학조미료들이 첨가돼있다. 단지 MSG라 불리는 오리지널 ‘L-글루타민산나트륨’만 빠진 것이다. MSG를 기본 원료로 하는 복합조미료 생산량 통계를 보면 2006년 2,910만 톤에서 2008년 5,377만 톤으로 급증했다.
우리나라 식당과 식품회사들은 절대 최종병기 MSG를 포기할 수 없다. 먼저 포기하면 먼저 망한다. 만약 우리나라 모든 식당에서 한날 한 시에 화학조미료가 다 사라져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요리사와 식당의 수준이 확실히 드러나게 될 테니 무척 재밌을 것이다. 비싼 가격을 받는 유명 파스타 집에도 화학조미료를 쓰는 나라니 일반 식당들은 오죽 하겠는가.
TV는 화학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천연조미료 식당’들을 좋아한다. 방송사 맛집 소개 프로그램의 스테디셀러 아이템이다. <트루맛쇼> 제작 당시 그 중 몇몇 음식점의 시료를 수거해 연구소에 테스트를 맡겨 보니 모두 다 꽤 많은 MSG가 검출되었다.
요즘은 정말 훌륭한 식당에서도 화학조미료를 쓴다. 수십 년째 종로구 팔판동에 있는 정육점 한 곳에서 최고 수준의 암소를 납품 받아온 우래옥과 하동관도 MSG를 사용한다. 주방에 들어가 식자재를 꼼꼼히 살펴본 황교익 선생님에 따르면 우래옥 평양냉면에 메겨진 11,000원이란 가격은 전혀 비싼 게 아니라고 한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최고의 식당에서 최상급 식재료로 맛을 낸 그 훌륭한 냉면 육수에도 최종병기 미원이 투하되는 게 우리나라 요식업의 현실이다. 우래옥에서는 손님들의 입맛이 간절히 원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하고, 하동관에서는 젊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MSG를 쓰고부터 장사가 더 잘됐다고 하지만, 우리는 피부미인 김태희의 쌩얼도 보고 싶다.
내가 먹는 게 내 몸을 구성한다. 만약 당신이 좋은 식자재와 아주 적은 양의 화학조미료를 쓰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을 받는 양심적인 식당을 알고 있다면 주인 분에게 정말 감사해야 한다. 나만 알고 있는 좋은 밥집은 소중한 공간이고 은밀한 즐거움이다. TV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재료 본연의 맛에 집중하는 식당이 진짜 맛집이다. 그 식당이 문 닫지 않도록 자주 가서 드시라. 좋은 소비가 좋은 사람들을 격려한다. (끝)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의 MSG에 대한 태도는 사뭇 이중적입니다. 먹는 음식에 MSG가 들어가 있다고 하면 눈을 크게 뜨고, 집에서 먹는 음식에 어머니나 아내가 MSG를 썼다고 하면 한숨을 쉬거나 잔소리를 합니다.
하지만 유명한 홍대앞 조폭떡볶이 집 조리 광경은 수만명이 봤을텐데, 그때문에 그 떡볶이의 매상이 떨어졌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가게를 차려 들어가기 전, 트럭 장사를 할 때 이 집의 떡 리필 장면은 그 자체가 볼거리였습니다. 커다란 솥에 떡 한보따리를 넣고 나서 커다란 바가지로 설탕 한 바가지, 미원 한 바가지를 넣는게 순서였습니다. 네. 떡볶이가 괜히 맛있는게 아니었죠.
마찬가지로, 조금만 맛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자신이 MSG를 써서 음식을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밖에서 먹는 식당의 음식 맛에 MSG가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고급 식당과 저급 식당의 음식 맛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MSG의 마력이죠. 단지 고급 식당은 재료 7에 MSG 3으로 소기의 맛을 낸다면 하급 식당은 재료 3에 MSG 7로 비슷한 맛을 낸다는 차이가 있을 겁니다.
한국 음식에는 MSG가 많이 들어가지만 외국식 요리에는 안 들어갈거라고 순진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유명한 양식 레스토랑에서도 베이스가 되는 닭 육수(치킨스톡)는 통조림 제품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는 MSG가 듬뿍 들어 있죠.
태국이나 베트남에 가면 왜 이렇게 음식이 입에 짝짝 붙는지 모르겠다는 분들, 다 이유가 있습니다. 두 나라는 세계적으로 MSG의 생산/소비가 선두권에 있는 나라들입니다. 한국에서만 조미료 쓰는 게 아닙니다.
물론 MSG라는 물질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게 아니란 사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마, 새우, 꽃게 등 "집어넣기만 해도 국물 맛이 확 살아나는" 식재료들은 모두 MSG의 전물질이라고 할 수 있는 글루타민산을 다량 함유하고 있습니다. 흔히 이들 '천연 재료'를 가공해서 만든 '천연 조미료'라는 것들 역시 성분은 화학 조미료와 마찬가지라는 얘깁니다.
결국 성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용하는 양이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식품영양학자들은 'MSG가 해롭냐, 아니냐는 논쟁은 소금이 해롭냐 아니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소금을 넣지 않고 맛을 낸다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 소금도 많이 먹으면 고혈압이나 기타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비유죠.
그래서 윗글에서도 '조금 쓰는 정도'를 문제삼지는 말자는 얘기가 나옵니다. 적당히 넣어서 우리의 입맛이 좀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면, 굳이 그걸 배척할 이유는 없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들이 붓듯 사용하는 식당들은 좀 자제할 필요가 있고, 소비자가 일단 현명해져야 그런 식당과 그렇지 않은 식당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달콤한 떡볶이를 1인분 2천원에 먹으려면 MSG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5천원짜리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주인이 MSG를 쓴다고 욕하면 그 또한 도둑놈 심뽀입니다. 그리고 혹시 MSG 거의 안 쓰고 좋은 재료로 맛을 내는 곰탕이 한 그릇에 2만원이라면(실제로 있습니다.^^), 그걸 도둑이라고 욕해선 안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공지, '미각스캔들'은 매주 일요일 밤 11시에 방송됩니다.^^
이 사진이 안 들어가면 실망하실 분들이 꽤 많을 듯 하여... 이제 만족하시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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