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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쯤의 근미래 11월(좀 더 정확하게 하자면 2008년부터 2012년 사이입니다). 남북한은 경의선 개통에 합의하고 대통령(안성기)이 김정일 위원장(백일섭)이 도라산역에서 개통 기념식을 가지려는 찰나, 권총리(문성근)에게 일본 외상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옵니다. "일본은 경의선 개통을 허가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일본이 근거로 제시한 것은 경의선 철도 부설권을 일본에 영구 양도한다는 1907년의 대한제국 문서. 미국과 중국도 연이어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고 나섭니다. 이런 대통령 앞에 "그 문서에 찍힌 대한제국 국새는 가짜다. 일본의 거짓말을 증명할 수 있다"고 외치는 전직 서울대 사학과 교수 최민재(조재현)이 나타납니다.

대통령은 최민재에게 국새를 찾아 줄 것을 당부하지만 최민재의 대학 후배인 국정원 서기관 이상현(차인표)은 지금 일본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 대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느냐며 최민재를 공박합니다. 이러는 사이 한일간의 긴장은 점점 고조되기만 합니다.

(이상은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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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버호벤 감독의 <스타십 트루퍼스>를 보다 보면 영화 중간에 우렁찬 군가와 함께 흘러나오는 지구 정부의 선전물들이 등장합니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배달의 기수> - 물론 10.26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알 리가 없는 단어지만 - 였죠. <스타십 트루퍼스>를 보면서 이 선전물들의 의도를 오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구 정부의 파시스트적 성격에 대한 버호벤 감독의 유머였던 겁니다.

하지만 <한반도>를 보고 난 지금, 대단히 머릿속이 혼란스럽습니다. 과연 이 영화는 대체 어떤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저 보이는 대로만 이 영화를 받아들이자면,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주장은 국수주의라는 말도 온건하게 들릴 정도의 강경한 민족주의입니다. 민족의 자존심과 자주성, 이 두가지 가치를 저해하는 어떤 요소도 타도해야 할 악에 지나지 않는다는 선명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목소리가 너무도 선명해서, 차마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을 정도라는 데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만 되면 알아들을 수 있을 수준의 대화를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엘리트들인 대통령과 각료들, 그 보좌관들이 너무도 진지한 표정으로 나누고 있는 걸 보다 보면 혹시나 이 대화의 목표가, 그리고 이 영화가 노리고 있는 것이 이 영화가 표면적으로 내걸고 있는  '선명한 민족주의'에 대한 비웃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영화의 악역들인 일본과 그 하수인들의 지능이 <포켓 몬스터>의 로켓단 수준이라는 것도 진의를 의심케 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머리에 태극 수건을 질끈 동인 채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고귀한 이상에 동의하지 않느냐고,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 중에 한마디라도 틀린 말이 있느냐고 눈에 불을 켜고 물어보실 분이 나타날 것 같아 슬슬 겁이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기엔 이렇게 대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려서 보던 <배달의 기수>에는 공박할만한 그릇된 가치가 담겨 있었느냐고. 그리고 그 <배달의 기수>가 당시엔 재미있었는지 궁금하다고 말입니다.

영화가 담고 있는 가치를 논하기 전에, 그리고 영화의 플롯에 어떤 구멍이 나 있는지 말하기 전에(물론 솔직하게 말하자면 '구멍이 난 플롯'이 아니라 '아예 그물인 플롯'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한반도>는 지나치게 지루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50% 이상은 넥타이를 맨 아저씨들이 역시 초등학교 4학년 사회 교과서 수준의 대화를 진지한 표정으로 나누며 서로 공박하는 장면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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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나머지가 시원한 액션으로 채워진 것도 아닙니다. 유일하게 무력적인 캐릭터인 차인표는 채 탄창 한개분도 총을 쏘지 않고, 사람이 죽는 장면도 을미사변 신 외에는 없습니다. 그것도 일방적인 살육이니 구경하는 재미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대사가 재미있는 것도 아닙니다. 유일하게 웃음을 주는 캐릭터는 작업반의 이한위 뿐입니다.

바로 위 사진에 나오는,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저 화려한 배우들이 이 영화의 대사로 연기를 하고 있는 걸 걸 보면 베를린 필하모니가 <어머나>의 반주를 하고 있는 광경이(장윤정씨, 죄송합니다), 혹은 이창호와 이세돌이 상아 바둑돌로 알까기를 하고 있는 광경이 떠오르는 것은 저 혼자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럼 과연 이 147분 길이(내용 연결이 매끄럽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것도 상당 부분 과감한 커트를 거친 듯 합니다만)의 장편 영화를 통해 강우석 감독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앞서 도 말했듯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보이는 대로 '이런 강경한 민족주의적인 담론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주장들에 염증을 느끼게 하려는' 것인지가 매우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화가 담고 있는 주장이나 가치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 두고, 오로지 영화적인 재미에 대해서만 얘기하겠습니다. 최근 수년간 1년에 영화를 5편 이상 보시는 분, 극장에는 가지 않더라도 집에 OCN이 나오는 분들은 이 영화를 보시면 실망하실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영화의 흥행 성적은 매우 예측하기 힘듭니다. 과연 얼마나 많은 관객이 자진해서 이 영화를 보게 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의 관객 대다수는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분들이나, 급식 파문으로 어쩔 수 없이 오전수업을 하게 된 학생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참, 이현세 원작 <남벌>이 너무 난해해서 읽기 힘들었던 분들은 이 영화를 좋아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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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연대 추정의 근거: 이 영화가 다루는 시대의 마지막 '전직 대통령'이 우리가 잘 아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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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두(조인성)는 스물 아홉살까지 자기 조직 하나 꾸리지 못하고 형님 상철(윤제문) 밑에 빌붙어 있는 중간보스입니다.  집엔 병든 어머니와 철없는 두 동생이 있고 숙소에도 심복 종수(진구)를 비롯해 여섯명의 '동생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조직에서도 2인자 자리가 위태롭고, 아직도 웃통 벗고 떼인 돈 받으러 다니는 막일까지 하면서  '이제 딴 일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감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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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그에게 상철의 뒤를 봐 주던 돈줄인 건설업자 황회장(천호진)의 손길이 기회처럼 다가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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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3년째 시나리오를 완성 못하고 생동감있는 얘깃거리를 찾아다니던 초등학교 동창 민호(남궁민)를 통해 어린시절부터 짝사랑해온 현주(이보영)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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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찾아다니던, 인생 역전의 기회. 지긋지긋한 궁상을 한방에 날릴 기회를 맞은 병두는 결단을 내릴 준비를 합니다. 그런 그의 귀에 의리니 도리니 하는 게 들릴 리가 없습니다. (줄거리는 이 정도로.)



<비열한 거리>를 보고 '새롭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태어나서 주윤발이 나오는 영화나 한국 영화계를 수놓은 수많은 조폭 영화를 단 한편도 보지 않은 사람일 겁니다. 해외에서 태어나 자랐거나 명절때 TV를 볼 수 없었을 정도로 바쁜 사람이었던 모양이죠.

하지만 그러면서도 <비열한 거리>는 충분히 관객이 즐길 수 있게 합니다. 글자 그대로 아드레날린이 뚝뚝 떨어지는, 너무도 선명한 장르 영화이면서도 팬들을 질리지 않게 하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몇달 전 '장르영화'를 강력하게 표방했던 <사생결단>을 향해 "이봐, 장르 영화란 바로 이런 거야"라고 강의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남성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느와르의 성패는 아주 단순한 요소 하나에 달려 있습니다. 바로 영화를 보는 남성 관객들이 주인공의 안위를 걱정하느냐 마느냐, 이 단순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예'냐 "아니오'냐 입니다.

유하 감독은 이미 전작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이 부분에 강한 면모를 보여준 바 있습니다. 어딘가 똘똘하지 못하고 모질지 못한 주인공 권상우를 통해 남성 관객들은 자신들의 '뭘 몰랐던' 학창시절을 반추해 보고 추억에 젖으면서 동시에 권상우의 복수를 자기 일처럼 주먹을 쥐고 흥분하며 바라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열한 거리>에서도 조인성이 연기하는 병두는 외칩니다. 나만큼 절박하고, 나만큼 현실적으로 성공에 굶주려 있는 사람이 또 있느냐고. 세상에 나보다 나쁜 놈이 지천인데, 내가 여기서 조금만 더 나쁜 놈이 되면 안 되느냐고. 나보다 훨씬 더 나쁜 짓으로 긁어모든 것들을 내가 좀 빼앗는다고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고 온 몸으로 부르짖는 거죠. 바로 이 부분에서 병두는 <사생결단>의 류승범이나 <야수>의 권상우보다 훨씬 설득력있게 그려집니다.

물론 느와르 영화의 특성상 병두의 앞날이 결코 밝을 수는 없다는 걸 관객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병두가 현주를 감싸 안고 떠나는 외항선 위에서 배웅나온 종수를 향해 손을 흔드는게 마지막 장면이라면 보는 관객들이 더 당황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두가 조금이라도 성공한 모습을 보일 때 관객들은 더욱 안타까워집니다. 특히 병두가 건달들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의리를 강조할 때나 심복 종수와 뜨거운 눈빛을 나눌 때, 또 현주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얻어낼 때 이런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유리병처럼 깨지기 쉬운 것인지를 잘 아는 관객들(왜냐하면 병두 자신이 이런 것들을 얻어낸 과정이 모두 남들의 행복을 깨는 것이었기 때문에)의 마음 속은 점점 우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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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믿어서는 안되는 친구의 캐릭터로 바로 자신의 직업인 영화감독을 설정했다는 것은 유하 감독의 심각한 결벽증을 상징하는 듯도 하지만, 그로 인해 등장하는 극중극과 영화 촬영 장면은 매우 효과적입니다.  무엇보다 '한방'에 목숨을 걸고 부나비처럼 달려드는 건 조폭만의 일이 아니라는, 이 영화의 주제를 매우 설득력있게 전달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젊은 배우들의 호연은 이 영화의 힘입니다. 이제껏 연기 안되는 배우로 찍혀 있던 조인성이 일생일대의 호연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진구는 이 역할을 통해 그 나이에서 흔치 않은 연기파 배우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올인>과 <달콤한 인생>을 통해 보여준 재능이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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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영화의 마무리 즈음에 나오는 황회장의 노래 'Old and Wise'는 기가 막힌 선곡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튼 한국 느와르의 역사에서 <게임의 법칙>, <친구>로 이어지는 라인을 잇는 수작이라는 평을 아끼고 싶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강추입니다.



p.s.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Old and Wise>는 386세대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명곡이지만 요즘 세대에겐 낮설기 짝이 없는 노래일 겁니다(배철수씨가 자주 틀긴 합니다만). 특히나 가사는 수없이 많은 실연의 아픔에 대한 노래들 중에도 손에 꼽힐만한 명곡이라고 부를 만 합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는 약간 다른 의미로 쓰이죠.

한때 터키를 여행하다가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에 걸린 석양을 바라보면서 이 노래의 첫 가사, As far as my eyes can see가 너무도 마음에 와 닿아 짜안해 진 적이 있습니다. <비열한 거리>의 예고편에 왜 이 노래가 나오나 했더니 영화에서 매우 중요하게 쓰였더군요. 이 노래의 가사를 되새겨보는 걸로 끝을 맺겠습니다.





 

Old and Wise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저 멀리서
As far as my eyes can see
내게 다가오는 그림자들이 있습니다.
There are Shadows approaching me
그리고 내 뒤에 남겨질 사람들에게
And to those I left behind
나는 알리고 싶습니다.
I wanted you to Know
당신은 항상 나의 가장 깊은 생각까지도 공유했다는 것을,
You've always shared my deepest thoughts
그리고 항상 내가 가는 곳마다 따랐다는 것을.
You follow where I go


그리고, 오, 내가 나이들어 지혜로워지면
And oh when I'm old and wise
쓴 소리들도 내겐 별 의미가 없을 겁니다.
Bitter words mean little to me
가을 바람은 나를 그냥 지나쳐버리고
Autumn Winds will blow right through me
그리고 언젠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And someday in the mist of time
그들이 내게 당신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When they asked me if I knew you
나는 웃으며 말하겠지요. 당신은 내 친구였다고.
I'd smile and say you were a friend of mine
그리고 슬픔이 내 눈가로부터 사라지겠지요.
And the sadness would be Lifted from my eyes
내가 나이들어 지혜로워지면.
Oh when I'm old and wise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저 끝에서부터
As far as my Eyes can see
그림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There are shadows surrounding me
그리고 내 뒤에 남겨질 사람들에게
And to those I leave behind
나는 알리고 싶습니다.
I want you all to know
당신은 내 가장 힘든 나날을 함께 한 사람이었고
You've always Shared my darkest hours
나는 내가 죽을 때에도 당신을 그리워 할 거라고.
I'll miss you when I go


그리고, 오, 내가 나이들어 지혜로워지면
And oh, when I'm old and wise
나를 힘들게 했던 그 말들도
Heavy words that tossed and blew me
그저 가을 바람처럼 나를 지나쳐 불어갈겁니다.
Like Autumn winds will blow right through me
그리고 언젠가, 오랜 시간 뒤에,
And someday in the mist of time
그들이 당신에게 나를 아느냐고 물으면
When they ask you if you knew me
내가 당신의 친구였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Remember that You were a frined of mine
내 눈 앞에 마지막 커튼이 내려질 때 말이죠.
As the final curtain falls before my eyes
내가 나이들이 현명해지면.
Oh when I'm Old and w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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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사생결단', 황정민과 류승범의 낭비 조회(2268) / 추천(1)
등록일 : 2006-05-01 11:50:17



흐린 날이라 그런지, 일부러 노출을 줄였는지 칙칙한 부산의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뜨는 고전미 넘치는 <사생결단>이라는 로고. 흐르는 음악조차도 이소룡의 <용쟁호투>다. 70년대의 아우라가 도입부에서 뿜어나온다.

물론 이건 그냥 포장지에 불과하다. 이 영화 안에 70년대는 없다. 장르 영화, 혹은 느와르에 대한 애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으며 그저 느낄 수 있는 것은 감독의 불필요한 사회적 책임감 뿐이다.

마약 중간판매상 이상도(류승범)는 황금구역인 연산동을 관리하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 어느날 살짝 맛이 간 형사 도진광(황정민)으로부터 협박을 겸한 유혹을 받는다. 못이긴 채 도진광에게 협력하지만 이상도에게 돌아온 것은 쇠고랑 뿐. 그런 그에게 도진광은 다시 협력을 요청해온다.

두 주인공이 쓰레기 중의 쓰레기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약범 집안의 자손인 이상도는 어려서부터 약 심부름을 하며 자랐고, 충성이며 우정, 의리라고는 모르는 캐릭터다. 그에게서 조금이라도 인간미를 느끼게 하는 부분은 마지막 시퀀스에서나 등장한다.

도진광은 투박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신경쇠약의 증세를 보이는 형사(이 부분이 이 영화 최대의 실패 요인이다). 선배 형사가 마약범 장철의 염산 세례를 맞고 죽은 뒤부터 그는 정신병자가 되어 살아간다. 갑자기 그는 장철을 잡지 못한 것이 그의 인생을 꼬이게 한 계기라고 생각하게 되고, 엄청난 집착을 보인다.

최호 감독은 시사회 직전 "장르영화를 만든다고는 하지만, 그 장르영화가 사회를 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번역하자면 "내가 만든게 아무 생각 없는 양아치 영화인 것 같지만, 나는 나름대로 그 시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으려고 노력했다"는 뜻이다. '사생결단'을 보고 있으면 노력했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리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다.

잘 만든 양아치 영화에는 저절로 그 시대가 담긴다. 공연히 더 큰 노력을 기울이면 그때부터는 관객이 영화를 외면하기 시작한다. 시대가 담기지 않았다면, 그건 그 시대의 양아치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는 뜻이고, 그런 영화는 애당초 성공할 수가 없다.

이 영화를 본 거의 모든 사람들은 '두 주인공이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나쁜 놈들이라 정 줄 곳이 없다'고 말한다. 솔직히 소악당이 대악당을 무너뜨리는, 즉 '덜 나쁜 놈이 더 나쁜 놈들을 잡는' 영화는 쌔고 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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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화들의 공통점은 소악당 캐릭터에 관객들이 애정을 기울일 수 있게 하는 세심한 배려가 따른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소악당들에게 애정을 갖는 것이 불합리한 일이 되지 않도록, 대악당은 진정한 악당으로 그려져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진짜 악당인 대 마약상 장철은 별 존재감이 없다. 그는 이상도나 도진광에 비해 별로 나쁜 놈으로 그려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영화 안에서 장철은 그저 머리가 약간 좋은 약장사에 불과하다. 별로 미움받을 소지가 없고, 이상도나 도진광에 비해 별로 더 나쁜 놈이 아니다.

당연히 장철을 잡아야 한다는 데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 그나마 도진광에 비해 조금은 애정이 가는 캐릭터인 이상도는 느슨하게 '좋은 악당'으로의 변신을 노리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후반부의 느린 진행은 엔딩 크레딧을 구원의 신호로 여기게 만들 정도로 지루하다.

결말에 대해 얘기할 수는 없지만, 총소리가 울리고 나면 참으로 허무한 마무리가 기다리고 있다. 전혀 독창성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페이소스도 없고, 해소의 쾌감도 없다. 과연 이런 결말을 위해서 두 시간 동안 그렇게 힘겹게 달려왔나 하는 허탈감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등장인물들을 이런 파국으로 몰고 가는 감정에 대해 납득이 갈 만한 과정이 보이질 않는다.

류승범과 황정민의 연기는 글자 그대로 불을 뿜고, 누가 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두 인물이 마주보고 앉아서 국어책만 읽고 있어도 충분히 볼 거리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마지막 30분이 완전히 관객의 맥을 뽑아놓는다는 것은 역시 감독의 실수다.

p.s. 황-류도 황-류지만, 온주완은 잘 몰랐던 배우인데 이번 영화에선 정말 훌륭했다. 그 또래에서 보기 드문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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