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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완전히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이런 영화가 또 있었나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데이빗 핀처는 잘 알려진대로 '에일리언 3'에서 '세븐', '파이트 게임'을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묵직한 작품들을 남겨왔습니다. '살인의 추억'을 보고 나서 만든 듯한 '조디악'에서는 좀 달랐지만 그의 영화 세계는 보는 사람이 눈치채든 그렇지 않든, 언제든지 과감한 시각적 모험을 시도했습니다.

이번에 그가 시도한 영화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 남자에 대한 거였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비주얼만 요란한 영화들을 가리켜 'CG로 떡칠을 한 영화'라고 비아냥대기도 하죠. 하지만 핀처는 'CG로 떡칠을 하건 말건' 그건 좋은 영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몸소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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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1차대전 승전 기념 축제가 열리던 1918년 어느날, 한 소년이 80세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곡절 끝에 양로원 앞에 버려진 아이는 선량한 도로시 부부를 만나 벤자민(나중에 브래드 피트가 되죠)이라는 이름을 얻고, 자신이 타인과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잘 자라납니다.

7세에서야 걷기 시작한 벤자민은 십대의 어느날, 예쁜 소녀 데이지(뒷날의 케이트 블랜칫)를 만납니다. 데이시 역시 노인의 모습인 벤자민을 낯설어하지 않고, 두 사람은 친구가 됩니다. 그로부터 점점 젊어지는 벤자민과 정상적으로 나이를 먹는 데이지의 평생을 가는 사랑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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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입니다. 남들이 겪는 세월을 거꾸로 가는 사람. 1922년에 나온 원작과 영화의 얼개가 어떻게 다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영화의 기발한 소재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거의 3시간에 걸친 이 영화를 관통하는 소재는 '남과 나의 다름'에 대한 비유입니다.

만약 나이를 거꾸로 먹는 사람이 실제로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는 살아가면서 어느 세대와도 진정한 유대나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울 겁니다. 유소년기에는 마음이 젊은 데 비해 몸은 늙어서 어느 한 쪽과도 어울리기 힘들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노년기에 접어든다면 젊은 겉모습 때문에 양쪽 모두와 어울리기 힘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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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유일하게 그가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차이를 잊을 수 있는 시기는 인생의 한 복판, 중년일 겁니다. 그때가 유일하게 다른 사람들과 외모와 나이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죠. 이 짧은 시기를 위해 앞의 반생을 보낸 그는 그 시기가 지나면 다시 모든 사람들과 이별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셈입니다.

이런 남과 다름에 대해 벤자민 자신은 한번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좌절하지도 않죠. 거기에 연연하지도 않고 충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남의 시선 따위를 의식할 틈은 그에겐 없습니다.

물론 '벤자민 버튼...'은 이런 벤자민이 느끼는 본질적인 슬픔을 그때마다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미덕도 갖고 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은 누구나 그의 외양을 보고 그를 판단하지만 역시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그 다름이 사람 누구나 갖고 있는 개별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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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이 한폭의 동화에 다른 영화 한 편이 겹쳐집니다. 바로 '벤자민 버튼...'의 시나리오 작가 에릭 로스를 스타로 만든 '포레스트 검프'죠. 포레스트 검프가 남과 다른 부분이 지능이었다면 벤자민 버튼의 다름은 남들과 반대인 외모입니다. 하지만 둘 다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둘 다 자신들이 왜 남과 달라졌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런 신세 한탄에 시간을 낭비하는 일 따위는 없습니다. 두 사람 모두 남들이 보기에 '열등한 인자'라고 할만한 것들을 타고 났지만 스스로는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죠.

검프와 버튼이 다른 점이 있다면 일생의 한 사람, 진정 사랑한 여인의 의미입니다. 검프에게 그 여인은 어린 포레스트만 남겨줄 뿐, 평생을 아쉬움 속에서 지내다 사라지지만 그나마 버튼은 반생을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검프와는 달리 이들 커플은 처음부터 인생의 한 시기 외에는 함께 살 수 없는 운명이죠. 이들 커플이 아이를 낳고 해로하기에는 세상의 벽이 너무 높습니다. 정상적으로 점점 늙어가는 아내와, 언젠가는 자신의 아이들보다 더 젊어질 남편이 함께 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동화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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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로스의 성숙을 느끼게 하는 부분은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벤자민의 노년에 대한 부분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된 벤자민(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과 그를 바라보는 데이시의 모습은 오랜만에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감동을 자아냅니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벤자민 버튼의 모든 세대를 브래드 피트 혼자 연기하지는 않습니다. 5명의 다른 배우들이 각자 연령대에 맞는 역할을 연기합니다. 물론 피트의 특수분장이 한몫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특히나 50-60대 정도로 분장한 피트의 모습은, 물론 지금까지도 몇만번 들은 얘기겠지만, 로버트 레드포드와 너무나 흡사해서 감탄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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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에서 유일한 아쉬움은 케이트 블랜칫이 예쁜 여자 역으로 나온다는 것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연기력으로 자기 몫을 합니다. 틸다 스윈튼은 여전히 현실에 있을 법 하지 않은 신비로운 역을 맡았고, 줄리아 오몬드는 결국 1990년대 한때의 각광이 거품이었음을 증명하더군요.

몇몇 평론가연하는 기자들이 '그래도 좀 지루했다', '러닝타임이 너무 길었다', '밋밋했다' 등의 관점을 내놓고 있던데 한번 정말 그런지 직접 겪어 보시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얼핏 그런 말에 관람을 포기했다가 진짜 좋은 영화를 놓치는 경우는 매우 흔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영화를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벤자민의 인생 역정에 자신의 연령대를 투영해 보는 것일 듯 합니다. 과연 저 나이 때의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혹시 내가 나이에 비해 너무 성숙하거나 너무 미숙해서 동년배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을까. 지금의 나는 과연 나의 동세대와 얼마나 어울리고 있을까. 이런 자문자답과 함께,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원하는 모습으로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면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해야 할 몫은 충분히 다 한 셈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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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아기가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사이에서 태어난 딸 샤일로입니다. 이 영화에는 뒷부분에 벤자민-데이지 사이의 딸 역으로 잠깐 출연합니다. 물론 1년 전 모습이니 이 사진보다 훨씬 어려 보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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