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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크리스마스용 포스팅이 보입니다. 크리스마스용 영화 관련 포스팅도 넘쳐나죠. 주관적으로 뽑은 베스트 크리스마스 무비 순위 등등. 뭐 역시 뻔합니다. '러브 액츄얼리', '세렌디피티',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로맨틱 홀리데이' '그린치' '007 언리미티드(The World Is Not Enough)'...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달달한 영화들의 줄세우기죠.

그래서 약간 색다르게 구성해봤습니다. 제목은 '7편의 크리스마스 영화를 통해 정리한 한 남자의 일생'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구나 크리스마스 때에는 기적이 일어나 인생의 전기를 맞는 꿈을 꿉니다. 아무튼 일곱 편의 영화 속 주인공이 모두 같은 인물이라고 가정하고 그가 일곱 번의 크리스마스를 통해 어떻게 변신해가는지 살펴보자는 의도입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분들도 보시면 내용을 보시면 이해가 갈 겁니다. 자, 그럼 첫번째 영화부터 시작합니다.



1.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Tokyo Godfathers,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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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제목은 이렇지만,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에겐 '도쿄 갓파더스', 혹은 '도쿄 대부'로 더 익숙한 작품입니다. 콘 사토시 감독의 2003년작이며 초강추작입니다.

존 웨인 주연의 1947년작 '3 Godfathers'의 리메이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작은 황야에 버려진 아기 하나를 발견한 세 명의 무법자가 어찌 어찌 하다가 자기 목숨을 버려 가면서 아기를 보호한다는 내용으로 저도 어렸을 적 TV에서만 본 작품입니다.

콘 사토시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까칠한 노숙자, 은퇴한 게이, 가출 십대 소녀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쓰레기통에 버려진 아기를 발견하고 친부모를 찾아 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감동, 웃음, 액션,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는 걸작입니다.

...뭐 이런 얘기가 전부가 아니고, 아무튼 우리의 주인공은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인생이 고해라는 걸 깨달은 셈입니다.



2. 나홀로 집에(Home Alone,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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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설명은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전혀 애정이 없는 영화입니다. 참고로 저는 '톰과 제리' 보면서도 톰을 응원한 사람입니다. 매컬리 컬킨 같은 꼬마를 보면 그냥...

...아무튼 우리의 주인공은 갓 태어났을 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소년으로 자라납니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집에 도둑이 들면 울거나, 오줌을 싸거나, 도망치거나 하겠지만 이 당돌한 소년은 무시무시한 폭력으로 대항합니다. 영화니 망정이지 실제 상황이었다면 도둑들은 화상으로 죽고, 맞아 죽고, 계단에서 굴러 목 부러져 죽고, 못 밟아 죽고, 과다출혈로 죽고, 이 소년은 어린 나이에 찰리 맨슨의 후계자로 위키피디아에 등재됐을 지도 모릅니다.

어째 다음 영화로 '양들의 침묵'이 나와야 할 것 같은 분위기지만 이 소년의 폭력성(!)은 약 30년  동안 잠잠하다가 어느 해 크리스마스에 다시 살아납니다.




3. 패밀리 맨 (Family Man,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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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밖에 모르는 월가의 거물 니콜라스 케이지가 크리스마스 전날 밤, 사랑하던 여인 티아 레오니와 헤어지지 않았을 때를 가정하고 꿈을 꾼 뒤 인생의 의미를 찾는 내용입니다. 수전노 스크루지가 꿈을 꾸고 나서 새 삶을 찾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의 패러디죠.

사실 제가 독신이던 시절, 이 영화는 꽤나 가슴을 무겁게 했습니다. 라디오 출연때 이 얘기를 했더니 황정민 아나운서 왈, "내가 아는 독신남 하나는 지난 10년간 크리스마스 때마다 케이블 채널에서 이 영화를 보고, 볼 때마다 운다더라"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이 영화엔 남자의 가슴을 찡하게 하는 뭔가가 있는 모양입니다.

예를 들면 이 영화의 첫 시퀀스입니다. 하룻밤 파트너 아가씨에게 "오늘 저녁에도 만날까?" 했다가 "뉴저지에 사는 부모님을 만나러 가야 해. 크리스마스 이브잖아"라는 말에 머쓱해진 니콜라스 선생. 괜히 파바로티가 부르는 '여자의 마음(La Donna Mobile)'를 100평짜리 아파트에 쩌렁쩌렁 울려퍼지게 틀어 놓고 팔까지 휘저으며 따라 부릅니다. 남자들은 압니다. 본능적으로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저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면서 지극히 성공지향적인 인물로 다시 태어난 우리의 주인공은 이렇게 해서 바람둥이가 되고, 꿈을 꿔서 인생 역전의 기회를 맞지만(영화의 결말과는 조금 다르게) 결국 다시 혼자가 됩니다. 그래서...?




4. 러브 어페어(An Affair to remember 1957, Love Affair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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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리 그란트-데보라 카, 워렌 비티-아네트 베닝 두 번의 커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만나자고. - 자연스럽게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과 연결되는 전설적인 멜로 영화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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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둥이 남자가 인생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은 여자를 우연히 만나, '우리의 사랑이 식지 않는다면 6개월 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만나자'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여자는 나오지 않고... 평생을 갈 것 같던 오해는 어느 크리스마스에 아름답게 다시 태어납니다.

아마도 현대 관객들에게는 1994년판의 비티와 베닝이 더 취향에 맞겠지만, 그 원작의 아름다움도 이에 못지 않습니다. (아, 물론 보진 못했지만 프랑스 영화인 진짜 오리지널도 있습니다.)

영화에서 데보라 카가 불렀던 'Our Love Affair'를 조쉬 그로번이 부릅니다. 원곡을 알건 모르건, 이 목소리와 이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실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이 남자의 인생에도 평화가 찾아오는 듯 하지만 그 다음 영화는...?



5. 다이 하드(Die Hard,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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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사랑에도 조금씩 금이 가고, 여자는 남자가 있는 뉴욕을 떠나 LA로 일하러 가버립니다.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아내를 만나러 LA에 간 남자는 아내가 있는 건물이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점거되는 광경을 목격하죠.

어쩌겠습니까. 아내를 구해야죠. 그런데 신기한 건 자신이 이런 상황에 너무나 잘 적응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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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본인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너무나 잘 알지 않습니까? 그가 어린 시절, '나홀로 집에' 있을 때 저질렀던 그 잔혹한 만행들을. 그 꼬마가 커서 이제는 힘과 경험, 총기 사용법까지 익혔으니 그저 상대 테러범들이 불쌍할 뿐입니다.

...몇년 뒤, 공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나홀로 집에'를 보지 못한 악당들은 너무도 가련하게 시체조차 찾기 힘든 죽음을 맞습니다. 또 다시 크리스마스 이브에. 몇 차례나 테러의 위협을 물리쳐 영웅이 된 남자는 정계로 진출합니다.



6. 러브 액추얼리(Love Actually,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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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서도 가장 유쾌했던 건 영국 총리가 된 휴 그랜트가 비서를 유혹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워킹 타이틀=휴 그랜트라고 불려도 좋을 만한 그의 명 연기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테러를 진압하더니 갑자기 웬 영국 총리냐고 항의하시는 분들, 네. 그 분들을 위해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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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인공, 미국 대통령 빌리 밥 손튼이 되어 영국 총리가 눈독 들이고 있던 비서에게 추근댑니다. 그 결과가 미국에 대항하는 영국의 자주 정책(?)으로 나타나죠. 뭐 어느 쪽이면 어떻습니까. 아무튼 정치를 하는 겁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총리 관저에서 '미국 대통령에 맞선 용감한 총리'라는 라디오 방송의 칭찬을 듣던 휴 그랜트가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춥니다. 노래는 포인터 시스터즈의 올드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걸즈 얼라우드의 'Jump'.





7. 34번가의 기적  (Miracle on 34th Street 1947, 1973,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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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는 실제로 존재할까요? 영악한 아이들은 일찍 그 정체를 알아차리지만 그래도 어린이들은 꽤 믿는 편이라고 합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미국의 수많은 백화점들이며 각종 기구에서 '아르바이트 산타클로스'를 고용하죠. 할일없는 노인들에게 소일거리를 주는 셈이기도 합니다.

그중 하나를 진짜 산타라고 믿는 소녀, 소녀를 위해 진짜 산타임을 고집하는 노인, 그러다 이 노인이 법적으로 자신이 산타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선의를 가진 어른들이 노인을 도우면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세 편의 영화가 있지만 아무래도 우체국 두 남자의 장난(?)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오리지널 1947년판의 문제 해결 방식이 가장 유쾌하고 인상적입니다.

...당연히 우리의 주인공, 대통령직(총리직...?)도 말아 먹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자신이 지나치게 충동적인 삶을 살았다는 걸 반성하고 아르바이트 산타로서의 직무에 충실해집니다. 마지막에나마 세상에 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말이죠.

이렇게 해서 이 남자의 인생에도 마지막으로 평화가 찾아옵니다. 참 파란만장한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크리스마스 때면 10년에 한번 꼴로 인생이 변하는 남자라니. 하긴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여러분의 인생이 바뀔만한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겠군요. 기대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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