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가 일본 드라마 '동창회-러브 어게인 증후군'을 모태로 한 JTBC 수목드라마 '러브 어게인'의 주연으로 발탁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문득 생각난 작품이 있었습니다.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김지수는 2년 전, '도쿄 타워'라는 드라마의 주인공 물망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도쿄 타워'라는 제목은 좀 흔합니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건 아무래도 오다기리 조 주연의 영화 '도쿄 타워'(2007)죠. 어머니와 아들의 찐한 사랑 이야기인 이 영화는 같은 제목의 드라마를 모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지수가 물망에 올랐던 2004년작 영화 '도쿄 타워'는 이와는 좀 다른 얘깁니다. 20대 초반 청년과 40대 유부녀(극중에선 엄마의 친구로 설정)의 비련 이야기였죠. 일본 최고의 인기남 중 하나인 오카다 준이치가 주인공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모태로 한 한국 드라마 '도쿄타워(물론 가칭입니다. 한국 드라마 제목을 '도쿄타워'라고 붙일 수는 없는 일... '남산 타워' 였으면 그것도 코미디였을 것이고...^^)'는 남녀 주인공까지 캐스팅되는 등 제작 초읽기 단계까지 갔지만 결국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남자 주인공 물망에 올랐던 J군이 갑작스레 심각한 문제에 휘말렸기 때문입니다. 의혹은 사실로 밝혀졌고, J군은 긴 자숙에 들어갔고, 드라마는 무산돼 버렸습니다.
김지수가 출연한 그 많은 작품들 가운데 유독 이 두 작품을 놓고 얘기하는 이유는... 아마도 일본 문화에 관심있는 분들은 금세 눈치채실 수 있을 겁니다. 일본 드라마 '동창회'와 영화 '도쿄 타워'의 주인공이 구로키 히토미라는 같은 배우이기 때문입니다.
쿠로키 히토미라고 쓰는게 정확한 발음에 가깝겠지만 어쨌든 아직 한국의 일본어 표기법은 첫 음에서 '쿠'와 '구'는 모두 '구'로 쓰게 되어 있습니다. 1960년 생. 일본의 독특한 문화 요소인 다카라즈카 출신입니다. 모든 등장인물을 여성들이 소화하는 다카라즈카는 일본 연예계의 엘리트 코스로 불리기도 합니다. 구로키 히토미를 비롯해 '여왕의 교실', '보스'의 아마미 유키(아마도 '일본의 고현정'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합니다)나 미녀 배우 단 레이 같은 경우가 다카라즈카 출신의 대표적인 여배우로 꼽히죠.
다카라즈카의 특징은 남자 역을 맡은 배우는 미모와 관계 없이 다소 중성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연기가 몸에 배고(아마미 유키를 보신 분이라면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여자 역 전문 배우는 여성스러움을 극대화한 연기의 달인이 됩니다. 구로키는 대표적인 다카라즈카의 여자 역할 배우였다고 합니다.
나이를 봐도 알 수 있지만 구로키는 스타가 된게 오래 전의 일입니다. 아마도 좀 나이드신 분들은 1990년대 말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물결과 함께 자주 거론됐던 '실락원'이라는 영화를 기억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실락원'은 남편과 갈등을 겪던 청순한 유부녀가 훨씬 연상인 중년의 잡지 편집장과 불륜을 겪는 이야기입니다. 흔히 '일본의 안성기'라는 식으로 비교되는 야쿠쇼 코지가 남자 주인공을, 구로키 히토미가 여주인공을 맡았죠. 주인공들의 이름값에 비해 상당한 수위의 노출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화제였고, 국내 도입을 놓고 '수준높은 예술영화'냐 '왜색 에로영화'냐 하는 논란이 상당히 거셌습니다.
아무튼 이 영화가 1997년작이니 지금부터 15년 전. 이미 37세였던 구로키는 50대가 된 지금도 중년 여성의 로망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마 국내 시청자들에게 알려진 드라마를 꼽자면 일본판 '하얀 거탑'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구로키는 한국 드라마로 치자면 장준혁(김명민) 박사의 애인인 카페 사장(한국에선 와인바 주인) 역을 맡았습니다. 한국판에선 김보경이 연기한 역할이죠.
구로키는 올해도 '추정유죄'라는 드라마에서 주역을 맡았습니다.
출연작들을 훑어보면 배우의 이미지가 대략 그려집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여자'의 느낌을 가진 배우죠. 특히 '세월이 흘러도 늙지 않는 여자'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일본을 대표하는 '방부제 복용 배우'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40대의 나이에도 20대 남자와 연애할 수 있는 여자'의 대표자로 꼽히기도 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앙케이트 조사에서도 젊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모시고 싶은 여자 상사', 3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모델로 삼고 싶은 중년 여성' 등의 상위권에 단골로 뽑힙니다. 1991년 결혼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남편의 신상 등은 잘 알려지 있지 않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 있으면 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여담이지만 일본 연예계와 연예 저널리즘의 관계는 한국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대단히 많습니다. 가끔 보면 놀라울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이쯤 되면 김지수와 구로키 히토미의 비교가 그리 무리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시게 될 겁니다. 나이를 무시한 방부제 미모, '연하남'이라는 코드, 꾸준한 인기, 여성들의 선망. 물론 12년의 나이 차이가 납니다만, 구로키 히토미를 통해 대략 12년 후 김지수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아무튼 현재의 모습은 오늘 밤에도 방송되는 '러브 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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