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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처음 쓴게 10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정리된 이야기를 고치지 않았다는 데 갑자기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조금 내용을 손봤습니다. (202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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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스타들의 식성에 대한 얘기를 '송승헌이 설렁탕을 고르는 기준'이라는 제목으로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글의 댓글에 어떤 분이 질문을 던지셨더군요. 바로 '대체 설렁탕과 곰탕은 뭐가 다를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누구나 막연히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을 겁니다. 설렁탕은...이러이러한 거고, 곰탕은 저러저러한... 그런데 막상 말로 정리하려고 보면 말문이 막힙니다. 대체 뭐가 다르지?

궁금하면 못 참고 살아온 세월이 벌써 한두성상이 아닙니다. 수사에 착수해 봤습니다.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에 대한 추적보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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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 식당 이남장의 전형적인 설렁탕 모습)

일단 전문가들의 해석은 단호합니다. 많은 분들이 허영만 선생의 만화 '식객' 11권에 나오는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를 지적하셨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설렁탕은 뼈 국물이고, 곰탕은 고기 국물이다."

맛 전문기자로 10년을 보내신 요식업계의 거물 선배 기자께도 여쭤봤습니다. 역시 마찬가지.

"뼈를 고아서 만든 것이 설렁탕이고 고기와 내장로 국물을 낸 것이 곰탕이다. 그래서 설렁탕은 국물이 뽀얗고, 곰탕은 국물이 맑다. 국물이 투명하면 곰탕이라고 불러도 좋다."

명료합니다. 더 이상 토를 달 여지가 없습니다. 특히 전국적인 지명도를 자랑하는 곰탕의 명가 하동관의 투명한 국물을 생각하면 너무도 명백하게 구분됩니다. 일단은 이런 설명이 정설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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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세상에 곰탕이라고 불리는 음식이 하동관 곰탕밖에 없느냐,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동관 곰탕은 소위 서울식 곰탕의 대표라고 해야겠죠.

일단 하동관 못잖게 유명한 현풍할매곰탕이 있습니다. 영남지방에서의 강세를 바탕으로 서울에도 진출했죠. 물론 원조 논쟁이 아직도 치열하지만, 일단 현풍할매곰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음식은 죄다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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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한 집에 가서 물어봤습니다. 대체 곰탕 국물은 뭘로 내나요? 사골도 들어갑니까?

"그럼 곰탕 국물을 사골로 내지 뭘로 내요? 물론 내장도 넣고 고기도 넣지만."

전문가들은 설렁탕과 곰탕을 구분할 때, '사골곰탕'이라는 등의 말은 민간에서 잘못 쓰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상당수 지역에서는 사골 위주의 국물을 곰탕이라고 부릅니다.

게다가 '꼬리곰탕'이라는 표현 역시 제대로 정착해 있죠. 꼬리곰탕집 치고 국물이 말간 집은(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거의 없습니다. 꼬리곰탕도 분명히 곰탕이되, 뼈 위주의 국물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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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바로 옆에는 1972년에 개업했다고 큼지막하게 써 있는 유서깊은 설렁탕집이 있습니다. 얼마전부터 메뉴를 설렁탕으로 집중했지만, 그동안은 도가니탕과 꼬리곰탕도 함께 팔았습니다. 이 집에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죠.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가 뭡니까?

"국물은 같아요. 같은 국물에 건더기가 다른 거지."

한 지인의 증언에 따르면, 20년 전 쯤 충북 청주의 한 식당에서 메뉴판에 설렁탕과 곰탕이 나란히 있는 걸 보고 주인에게 대체 둘이 뭐가 다르냐고 물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의 증언은 이랬답니다.

"국물은 똑같소. 수육만 나오는지, 수육하고 내장이 같이 나오는지 차이지."

뭐 당시의 식당 주인이 한식 전문가는 절대 아니었다고 생각되지만, 아무튼 이런 통념도 설렁탕과 곰탕을 구별하는 데 기준이 될 수는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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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설렁탕에는 뼈는 물론이고 소 머리와 양지머리, 기타 소의 온몸 부위가 다 들어간다. 뼈가 주 재료이기 때문에 뽀얀 국물이 특색이다. (물론 선농단 제사가 기본이 됐다는 설은 현재에는 크게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태생이 서민의 음식이기 때문에 시커먼 뚝배기를 주로 쓴다. 

2. 곰탕은 기본적으로 내장과 고기로 국물을 낸다. 이와는 전혀 다르게 사골 위주의 국물을 곰탕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그것은 곰탕의 원형에 충실하다고 볼 수는 없다. 세상이 변하다 보니 경계가 흐려졌지만 분명 원래는 '설렁탕은 뼈가 들어가 뽀얀 국물, 곰탕은 내장과 고기로 끓여 맑고 투명한 국물'이 구분의 기준이다. 또 곰탕은 태생이 양반집의 귀한 보양 음식이기 때문에 놋그릇에 담겨 나오는 경우가 많다. 

3. 어쨌든 설렁탕이라고 불리는 음식은 그 기원이 언제든, 20세기 이후에 서울의 시장 음식(서울 구경을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틀이 잡혔기 때문에 전국으로 퍼진 뒤에도 어디서나 거의 비슷한 맛을 낸다. 서울을 벗어나 전국을 대상으로 할 경우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뼈 국물을 곰탕이라 부르는 지방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라는 말 자체가 서울을 기준으로 한 질문이기 때문에 '설렁탕은 뼈 국물, 곰탕은 고기 국물'이라는 구분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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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인터넷으로 기본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설렁탕과 곰탕을 구별하는 법'에 '소면이 들어 있으면 설렁탕, 소면 대신 당면이 들어 있으면 곰탕'이라는 말을 보고 웃었습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조사를 좀 해 보니 이게 웃을 수가 없는 얘기더군요. 재료나 전통을 가지고 설렁탕과 곰탕을 정확하게 가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오히려 국수의 유무만큼 선명한 구분의 방법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유명한 설렁탕 맛집인 이남장의 경우, 설렁탕 국물(뼈국물)과 곰탕 국물(고기 국물)을 따로 따로 끓여 적정한 비율로 섞습니다. 반면 곰탕 맛집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명동 하동관은 본래 고기와 내장으로만 국물을 냈지만, 언젠가부터 사골도 재료에 포함시킵니다. 물론 그 양으로 따지면 사골은 결코 주 재료가 아니고, 국물이 뽀얗게 변하지 않을 정도로만 들어갑니다. 

그렇게 점점 음식들이 섞여 가고,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본래는 분명히 다른 음식이었다는 것.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비슷한 내용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부분이 있다면 이 책을 참고하시라고 권합니다. 

더욱 깊숙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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