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회 백상예술대상을 마침내 마쳤습니다. IS 일간스포츠는 매년 두 개의 연예 시상식을 개최합니다. 하나는 매년 연말에 하는 가요 시상식인 골든디스크요, 또 하나는 매년 봄에 하던 TV-영화 시상식인 백상예술대상입니다.
올해는 다양한 사정과 요구 때문에 평소보다 2개월 정도 시상식 시기가 앞당겨졌습니다. 매년 백상이 전하는 것은 만개한 꽃바람 같은 것이었는데 올해는 날씨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비록 날씨가 따뜻해지는 천운은 따르지 않았지만, 수많은 스타들이 보여준 화려한 컬러는 봄 소식을 꽤 빨리 전한 것 같습니다.
물론 45년이라는 긴 역사에 비해 백상예술대상의 명성은 그리 강하게 부각돼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지나치게 많은 수상 분야가 발목을 잡았다고 봅니다. 과거의 백상은 TV와 영화 뿐만 아니라 연극과 뮤지컬, 라디오까지 포함하는 대형 시상식이었죠.
이렇게 시상 분야가 많아지면 후보 관리가 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수상자를 미리 발표하고, 그저 상을 받는 사람들만 오는 시상식이 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21세기에도 이런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었고, 3년 전부터 시상식의 분위기를 바꿨습니다. 일체 수상자를 사전에 공개하지 않게 됐고, 후보들의 참석도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단, 어제 시상식의 경우엔 사전에 자신의 수상 사실을 알고 있던 수상자가 딱 한명 있었습니다. 그 얘기는 저 밑에서.)
물론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어려움은 상상 이상이더군요. 꿈은 연기부문 40명(남/녀, 영화/TV, 최우수/신인)의 후보를 모두 앉혀 놓고 치르는 것이지만 아직 거리가 있습니다. 좀 더 자리를 잡으면 언젠가는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앉아서 보시는 분들은 절대 상상할 수 없겠지만, 물론 어제 시상식 정도의 스타들을 모으는 것도 주최측으로서는 뼈골이 빠지는 일입니다.)
우선 수상 결과부터.
제45회 백상예술대상 수상자 명단
■ 영화부문
▶대상=강우석(강철중:공공의 적 1-1)▶작품상=이형승 아이비픽쳐스 대표(경축! 우리사랑) ▶감독상=이윤기(멋진 하루) ▶신인감독상=이충렬(워낭소리) ▶최우수연기상(남)=주진모(쌍화점)▶최우수연기상(여)=손예진(아내가 결혼했다) ▶신인연기상(남)=소지섭·강지환(영화는영화다) ▶신인연기상(여)=박보영(과속스캔들) ▶시나리오상=강형철(과속스캔들) ▶푸르밀 인기상=주지훈(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박보영(과속스캔들)
■ TV부문
▶대상=김혜자(KBS 엄마가 뿔났다) ▶작품상(드라마)=정을영(KBS 엄마가뿔났다) ▶작품상(교양)=한재신(SBS 그것이 알고싶다 '독도의 선택')▶작품상(예능)=김석현(KBS 개그콘서트) ▶연출상=신우철(SBS 온에어) ▶신인연출상=부성철(SBS 스타의연인) ▶최우수연기상(남)=김명민(MBC 베토벤 바이러스) ▶최우수연기상(여)=문근영(SBS 바람의 화원) ▶신인연기상(남)=이민호(KBS 꽃보다남자) ▶신인연기상(여)=윤아(KBS 너는내운명) ▶예능상(남)=김병만(KBS 개그콘서트) ▶예능상(여)=박미선(MBC 일요일일요일밤에) ▶극본상=유현미(SBS 신의저울)▶하이원 인기상= 김현중(KBS 꽃보다남자) 윤아(KBS 너는내운명) ▶공로상=이순재(KBS 엄마가 뿔났다)
이번 시상식에서 후보들의 참여율이 가장 저조했던 분야가 TV 부문 남자 연기상과 영화 부문 여자 신인상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의 그림자가 너무 컸기 때문이죠. 송승헌, 송일국, 박용하 등 세 후보가 '김명민'이라는 이름 앞에서 좌절하고 참가를 기피한 가운데서도 이준기는 끝까지 식장을 지켰습니다. 꼭 우리가 주최측이라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참 멋진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어제 이준기를 보고 잠시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시상자로 나와 박솔미와 주고 받던 대화중에 나온 일입니다. 이준기가 박솔미의 출연작 '핸드폰'을 '휴대폰'이라고 얘기해 잠시 웃음이 터졌죠. 박솔미가 마무리 멘트로 "..그리고 핸드폰, 꼭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얘기하자 이준기는 "네. 잊지 않겠습니다. 절대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받았습니다.
아마도 전 국민의 70%정도는 '물건을 흘리다'라는 뜻의 '잃어버리다'와 '기억이 사라지다'의 뜻인 '잊어버리다'를 혼동해 사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준기가 두 단어의 뜻을 정확하고 또렷하게 구별해서 사용하더군요.
여자 신인상 부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지난해 여자 신인 연기의 최고봉은 '미쓰 홍당무'의 서우와 황우슬혜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말부터 '과속스캔들'의 열풍이 불었고, 박보영의 이름이 너무 크게 부각됐습니다. 결국 다른 후보들은 '박보영에게 이번엔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린 듯 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느낀 것은 시상식을 준비하는 입장에선 뭐니뭐니해도 치열한 경합이 예상되는 구도가 가장 좋다는 겁니다. 특히 이번 영화 부문의 남/녀 연기상 같은 경우는 정말 치열한 경합이 이뤄졌죠.
'쌍화점'의 주진모도 '멋진 하루'의 하정우나 '공공의 적'의 설경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수상 소감 직전 잠시 눈물을 비친 주진모는 무대에서 내려온 뒤 "사람들이 상을 받으면 왜 우나 했는데, 내 이름이 호명되고 무대에 오르자 정말 가슴속에서 울컥 하는 것이 올라왔다. 눈물이 솟구치려는 찰나, 내 눈 앞에서 팔을 풍차처럼 돌리고 있는 조연출이 보였다. 그 광경을 보자 눈물이 쑥 들어가더라."
'팔을 풍차처럼'이라는 것은 생방송중에 흔히 볼 수 있는 수신호입니다. 현재 시간이 많이 오버되어 있으니 빨리 진행하라는 것이죠. 오래 전 한 배우는 조연출이 앞에서 풍차처럼 팔을 돌리는데도 무려 7분에 걸친 소감을 털어놓는 바람에 연출진을 기절시킨 적도 있긴 합니다만.
이날 시상식에서 자신의 수상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딱 하나. 바로 손예진이었습니다. 이건 담당 작가의 실수 탓입니다.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손예진은 이날 시상식 맨 마지막 순서에 장중호 일간스포츠 사장과 함께 대상 시상자로 결정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장 진행 작가가 대상 시상때 읽어야 할 약식 대본을 2부 시작 때 손예진에게 먼저 건네 준 겁니다(미리 읽어보고 연습해 두라는 뜻으로 가끔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대본 첫줄의 사장님 코멘트가 "손예진씨, 수상을 축하드립니다"였던 겁니다. $%&^*&^((&(&)) (생방송에서도 이 코멘트는 그대로 나갔습니다.)
물론 대본을 집필한 작가야 대상 시상이 여자 연기상 결과 발표보다 뒷 순서이니, 아무 상관 없을거라고 생각했겠죠. 대본을 전달한 작가 역시 모든 시상자에게 자기 코멘트를 미리 나눠줬으니 손예진만 예외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아무튼 지난 연말 청룡영화상 수상 때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모습으로 소감을 말했던 손예진은 미리 수상 사실을 안 덕분인지 훨씬 안정된 소감을 말했습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강우석 감독의 경우도 코믹합니다. 올해 백상은 평소보다 2시간 정도 늦은 오후 9시에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강우석 감독의 취침 시간은 오후 10시랍니다. 담당자의 강권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강감독은 감독상 시상이 끝나자 "그럼 내 순서는 끝났구나"라는 생각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고 했답니다. 그러다 담당기자와 마주친거죠.
"김기자, 나 이제 할일 다 했으니까 가도 되지?"라고 말하는 강감독에게 기자는 진땀을 빼면서 "안됩니다. 제발 제 얼굴을 봐서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켜 주십쇼"라고 설득을 했습니다. (대상 수상자가 중간에 가 버리면 정말 대형 사고죠.^^) 이때 담당기자가 복도에서 강감독을 마주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지금 생각해보면 모골이 송연합니다.
뭐 생방송을 하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생기기 마련입니다. 2006년에는 시상자로 결정돼 있던 남상미가 늦게 오는 바람에 맨 앞줄에 앉아 있던 김아중이 방송 시작 3분전에 대리 시상을 한적도 있습니다. 게다가 예능상 수상자 유재석은 수상 8분 전에 현장에 도착하기도 했죠. 이럴 때 주최측은 피가 마릅니다.
올해도 시상식 진행 대본에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신애가 수애로, 김준이 김범으로 잘못 쓰여져 있어 아찔한 상황을 연출할 뻔 했습니다. 그밖에도 사소한 꼬임으로 준비된 것을 다 보여주지 못했지만.... 이런 기억은 갖고 가 봐야 아무 소용이 없으니 빨리 잊는게 상책입니다.
기타 수상 결과에 대해서는 이만하면 잘 됐다고 자평합니다. '엄마가 뿔났다'에 너무 상이 몰린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지난해 '엄마가 뿔났다'가 국민들에게 해 준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상을 받을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수현 작가가 몇해 전 '시상식 은퇴'를 선언하지만 않았어도 극본상까지 돌아갈 뻔 했죠.
이번 시상식에서 가장 잘한 게 있다면 F4를 한 자리에 모은 겁니다. 뭐 저희가 잘 해서라기보다는 F4의 인기가 극도로 치솟은 가운데서 열린 첫 메이저 시상식에 이들이 오지 않는다면 다른 걸 아무리 잘 해봐야 허전한 행사였겠죠. 그래서 'F4를 모아라!'가 이번 백상의 가장 중요한 미션이 됐습니다만, 정말 넷 다 모으는 데에는 상상 이상의 공이 들었습니다.
'꽃보다 남자'의 촬영 일정이 당일 오전에 오후 스케줄을 모르는 식으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네 사람 모두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는게 참 기적같은 일이죠. 자리를 빛내 준 네 사람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 뿐입니다. 특히 구준표군은 생애 첫 시상식에서 넘어지는 멋진 추억도 남겼습니다.
물론 진선미 삼총사를 포함해서 . ^^
아무튼 하루밖에 안 지났지만 백상을 생각하니 다시 쓰러져 잠들고 싶은 생각 뿐입니다. 짜증을 유발하는 얼굴들도 잇달아 떠오릅니다. 시상식을 준비하는 입장에선 '내가 상도 안 받는데(혹은 받을 가능성이 별로 없는데) 왜 가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생방송 2시간 전까지 '수상 내역을 알려달라'며 졸라대는 사람만큼 끔찍한 사람들이 없기 마련이죠. 이런 사람들이 없는 우리나라 좋은나라가 과연 언제나 찾아올지 궁금합니다.
p.s. 어제 현장에서 진행이 꼬여 한껏 짜증나 있는 상황에서 출연자의 길을 막고 질문하던 리포터 한 분을 밀쳤습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정말 바보같고 어처구니없는 짓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도 뒤늦게 사과했지만,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p.s.2. 어제 시상식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 옆 사람이 절로 생각나더군요.
한쪽은 장근석, 한쪽은 전 Guns and Roses의 기타리스트 Slash입니다. (원피스에 나오는 로브루치의 캐릭터도 아마 슬래시에서 따온 것일 듯 합니다.)
베스트 드레서는 각자 골라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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