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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절끝에 이뤄진 WBC의 지상파 TV 생중계,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다행한 일입니다. 비록 14대2로 참패하는 굴욕도 있었지만 1대0의 짜릿한 대첩을 안방에서 지켜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방송사들은 절대 밑지는 장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지상파와 중계권을 보유한 IB 스포츠의 줄다리기는 치열했습니다.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경제난으로 방송사 사정이 어렵다. 광고주들이 몸을 사려 적자가 예상된다'는 주장과, '이 기회에 IB 스포츠의 콧대를 꺾어야 한다'는 두 가지 명분으로 초강경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그 결과 2006년 중계료보다도 싼 150만달러(약 23억원)에 지상파 3사가 돌아가며 중계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IB가 요구한 금액의 절반 정도죠. 하지만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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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WBC, 광고 없어서 못한다더니'라는 기사(http://isplusapp.joins.com/wbc/wbc_article.asp?aid=1107601&contcode=01070101)'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라운드 4경기를 소화한 결과 SBS는 10억원, MBC가 14억원, KBS가 10억원대의 광고 수입을 올렸습니다. 방송사들의 주장과는 달리 광고주들이 앞다퉈 광고 물량을 제시한 결과죠.

앞서 말한대로 3사의 중계료 합계는 23억원 정도이므로 3사가 공동 부담하면 사당 8억원 정도. 이미 3사 모두 1라운드에서 최소 2억원씩의 소득을 올렸습니다. 하나 더 보태자면 이번엔 대회 직전에 중계 여부가 결정되는 바람에 중계팀을 파견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출장비까지도 아낀 셈입니다. 2라운드 몇 게임만 중계하면 당초 IB 스포츠의 요구액을 다 줬더라도 흑자가 날 상황입니다.

아무튼 이런 결과는 '광고가 없다'며 3사 합계 중계료 130만달러(약 20억원)를 고집하던 방송사들이 결국은 잇속을 모두 챙겼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다행히도 중계가 실현돼 국내 야구팬들이 지상파로 중계방송을 볼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끝내 중계가 실현되지 않았더라면 그 욕을 어떻게 다 먹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중계방송 포기를 불사했던 KBS는 이번 1라운드에서도 염치불구 새치기를 감행했습니다. 3사가 돌아가며 중계하기로 한 합의을 무시하고, MBC의 몫이었던 마지막날 일본과의 1-2위 결정전을 KBS 2TV로 방송해버린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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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상파 TV들의 굵직한 해외 스포츠 중계의 역사를 기억하시는 분들에게 이런 식의 태도는 조금도 낯설지 않습니다. 마침 WBC 기간인 만큼, 다른 종목은 접어 두고 야구와 관련된 주요 방송권의 역사를 돌이켜 보자면 이렇습니다.

1998년, 박찬호의 경기 중계를 위해 지상파 방송 3사는 공동 대응을 약속합니다. 1년 전인 97년 KBS가 중계를 하면서 꽤 짭짤한 광고 소득을 올린 것이 소문났기 때문에 MLB도 높은 중계권료를 요구할 것이 예상됐기 때문입니다.

사실 KBS의 복이었던 것이, 96년 5승에 그쳤던 박찬호는 97년 KBS의 중계 기간 동안 14승을 올려 처음으로 두자리수 승리를 쌓으며 에이스로 부상합니다. 당연히 시청자의 관심과 광고가 폭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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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98 시즌을 앞두고 중계권을 채간 것은 신생 지역민방인 경인방송이었습니다. 이들은 킬러 콘텐트 부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고, 3대 지상파 방송사가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난을 이유로 MLB와 줄다리기를 벌이던 도중 베팅에 성공했습니다.

닭쫓던 개가 된 3사는 '외화 낭비'라며 갖은 저주를 퍼부었지만 박찬호는 경인방송의 중계 3년간 각각 15승, 13승, 18승을 올리며 전성기를 구가합니다. 경인방송의 봄날이었죠. 송월타올 광고의 인기가 치솟았던 것도 이 무렵입니다.

3년 계약이 끝나고 역시 3대 방송사는 공동 대처를 합의하지만 MBC가 한발 빨랐습니다. 몰래 독자 계약을 추진한 MBC는 경인방송이 감히 낼 수 없는 거액을 내고 4년간 메이저리그 중계를 따냅니다. 역시 KBS와 SBS의 저주는 이어진 수순이었고, 이들은 보복으로 MBC가 국내 프로야구를 중계하는 길을 막아버립니다.

그러나 MBC가 새치기에 벌을 받았는지 박찬호는 계약 첫해인 2001년에만 15승을 올렸고, 2002년 텍사스로 이적한 뒤에는 9승, 1승, 4승으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재활에 투입합니다. 당연히 KBS와 경인방송이 누렸던 광고 특수는 없었습니다. 2002년 김병현이 36세이브를 올린게 유일한 위안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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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린 박찬호의 중계권은 아무도 탐내지 않았고 독점 중계권을 가진 IB스포츠의 자체 채널인 Xports가 중계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이 해에는 최희섭이 있었습니다. 최희섭은 이해 LA 다저스에서 한경기 3홈런을 터뜨리는 등 15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미래에 대한 기대를 부풀립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2006년 시즌을 앞둔 당시, 3대 지상파 방송사는 IB 스포츠의 중계권 독점에 항의하는 뜻으로 연합 전선을 펴고 있었지만 KBS가 슬쩍 계약에 성공합니다. 최희섭의 선전과 박찬호의 부활이 기대되던 상황입니다.

즉시 다른 방송사들은 KBS의 신의 없음을 맹렬히 비판하고 나섰습니다(정해진 수순입니다). KBS는 당시 3사가 합의한 내용, 즉 'IB스포츠와 개별적으로 접촉하거나 구매를 의논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명백하게 어긴 것으므로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KBS의 역공은 입이 딱 벌어지게 했습니다. 이들은 "우리만 IB와 접촉한게 아니다. 다른 방송사도 이미 개별적으로 접촉하고 있었고 오히려 우리가 늦게 들어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뒤로도 다른 방송사들이 그게 사실이니 아니니 한참 시끄러운 말이 오갔습니다. 어쨌든 KBS가 상대적으로 큰 돈을 낸 것도 사실이고, 합의를 깬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이해 최희섭은 마이너리그로 강등돼 죽을 쒔고, 박찬호도 그닥 신통치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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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펴본 것도 사실 빙산의 일각입니다. 그동안 거쳐간 수많은 국가대표 축구 월드컵 예선전, 아시안컵, 월드컵 본선 등의 중계권에서 오간 실랑이와 새치기, 뒷돈 올리기 등은 이루 다 주워 담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합의는 지키는 쪽이 바보가 되어 온 것이 지금까지 한국 지상파들이 주도한 중계권 다툼의 교훈입니다.

이번에 KBS가 방송 3사를 대표해 IB스포츠와 협상을 진행한 것도 결국은 경제 상황 악화로 인한 방송 3사의 몸사리기 외에 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경기가 지난해 초만 같았더라도 KBS가 협상을 진행하는 사이 다른 방송사가 새치기로 끼어들어 거액을 주고 독점 중계권을 따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런 방송사들이 이번에는 모든 과거를 잊고 '외화 유출을 막고 IB 스포츠의 고액 중계료 요구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주장하며 WBC 중계를 무산시킬 뻔 한 걸 생각하면 참 속이 끓습니다. 그야말로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일 뿐이죠. 한마디로 국민의 볼 권리고 뭐고는 이들 방송사에게 아무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얘기를 하자면 방송 중계권료가 전부가 아닙니다. 지지난주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이 "나는 원래 독립제작사 PD다. 오늘 상 받는 자리지만 이 얘기는 해야겠다. 방송사들, 그동안 내가 방송사에 납품한 프로그램들의 저작권을 돌려달라. 너무 하는거 아니냐"며 수상소감에 항의를 덧붙이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드라마든 다큐든, 지상파를 통해 실려 나간 프로그램의 저작권에서도 지상파는 절대 갑입니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 현재 3대 지상파 방송이 누리는 독점적 지위에 대해 말하자면 끝이 없어서 여기선 이만 하겠습니다. 어쨌든 이번에는 동기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외화 절약도 크게 한 셈이니 그 돈으로 좋은 데 쓰길 바랍니다.

아무튼 마지막으로 할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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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중근 만세! 그저 이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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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모습이나 다시 보게 됐으면 합니다. (태극기 꽂는 행동 자체에 대해선 찬반이 있지만, 그냥 '저런 감격스러운 모습'의 뜻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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