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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의 정상 도전이 한껏 끓어올랐던 WBC의 분위기를 쫙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이지만, 아직 WBC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남아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과 하는 얘기지만,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후 한-일전에서 패하고도 이렇게 성원을 받은 것은 2009 WBC 대표팀 외에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체 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한-일전에서 지고도 박수갈채를 받게 했을까요. 문득 또 다른 도전자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지고 나서도 퉁퉁 부은 눈으로 "에이드리언!"이라고 외치던 남자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단지 영화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척 웨프너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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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전자

1975년 3월 24일, 미국 오하이오주 리치필드의 링에 오른 무하마드 알리는 도전자인 척 웨프너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5개월 전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무적의 철권 조지 포먼을 꺾고 WBA·WBC 통합 챔피언에 오른 알리가 36세의 한물간 백인 복서 앞에서 긴장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였다. 누구도 도전자가 3라운드 이상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웨프너는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5회를 넘겼다. 심지어 9회에는 알리를 다운시키기도 했다. 자존심이 상한 알리는 전력을 다해 웨프너를 맹폭했지만 도전자는 양 눈 위가 찢겨 피투성이가 된 채로 번번이 되살아났다. 마침내 15회, 경기 종료 19초를 남겨 두고 알리의 TKO승이 선언됐지만 관중은 오히려 웨프너의 투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왠지 낯익은 이야기인 게 당연하다. 무명의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은 이 경기를 보고 영감을 얻어 순식간에 시나리오를 썼고, 그가 직접 주연한 영화 ‘록키’는 대대적인 성공과 함께 이듬해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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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키’에는 그때까지의 다른 스포츠 영화들과 좀 다른 점이 있었다. 주인공 록키는 15라운드의 혈투가 끝난 뒤에도 자신이 이겼는지 졌는지를 묻지 않는다. 단지 무적의 챔피언을 상대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싸웠다는 게 자랑스러울 뿐이다. 이런 도전자 록키의 순수한 열정은 30여 년간 전 세계 수많은 관객을 감동시켰다.

웨프너의 투혼이 빛난 지 정확하게 34년 만인 지난 3월 24일, LA 다저스 구장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이 열렸다. 알리와 차이가 있다면 지난 대회 챔피언인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는 것. 하지만 한국은 예선에서 일본과 2승2패로 균형을 이뤘고, 결승에선 연장전까지 끌고 가는 명승부로 전 세계 야구 팬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어느 종목이건 일본과의 대결에서 지고도 이처럼 갈채를 받은 것은 아마도 이번 야구 대표팀이 유일할 것이다. 그만큼 선수들의 도전자 정신이 빛났고,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알리는 산 교과서였기 때문이다.

영화 ‘록키’의 마지막 장면. 15라운드의 사투 끝에 기진맥진한 챔피언은 진저리가 난다는 듯 내뱉는다. “다시는 너와 붙고 싶지 않아(Ain’t gonna be no rematch).” 아마도 WBC 결승에 임했던 일본 선수들의 심정도 딱 이랬을 터. 이렇게 챔피언의 진을 빼놓는 도전자라면, 이기든 지든 박수 받을 자격은 충분하지 않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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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대결이 벌어지게 된 건, 아무래도 '1차 방어전은 손쉬운 상대로 가자'는 생각의 반영일 겁니다. 척 웨프너의 당시 전적인 30승 9패. 한때 켄 노튼과도 싸워 본 적이 있었지만 당연히 졌고, 그는 복서 인생 내내 보디가드와 주류 세일즈맨으로 일했습니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복싱 훈련을 시작한 것은 '알리와의 타이틀전이 잡힌 뒤'였다는군요.

알리의 파이트머니는 150만불(당시로선 대단히 큰 돈이죠.^)인데 비해 웨프너는 10만불. 하지만 웨프너는 '지금까지 뭘 해서 번 돈보다 많다'며 대전에 뛰어들었습니다. 웨프너가 훈련을 하건 뭘 하건, 알리 쪽은 신나게 인터뷰를 하면서 상대를 백인으로 고른 것이 얼마나 흥행에 탁월한 선택이었나를 자찬하기 바빴다고 합니다.

록키가 아폴로와의 경기를 앞두고 아내에게 하는 유명한 대사, "내가 15회가 끝날 때까지 쓰러지지 않고 있으면 그건 내가 건달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라는 말도 실제로 웨프너가 아내에게 한 말이라고 하는데, 이 말을 스탤론이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웨프너에게 물어본 것이 아니라는 건 확실합니다. 웨프너는 나중에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의 스토리를 도용했다'며 스탤론을 고소하기 때문이죠. 결국 스탤론은 알려지지 않은 액수의 돈을 주고 웨프너와 화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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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프너의 예상 밖 선전은 위에 쓴 바와 같습니다. 문제는 9회 알리를 다운시켰을 때. 자신의 코너로 돌아온 웨프너는 세컨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웨프너: 봤어? 내가 다운시킨거?
세컨: 그래. 그런데 저 사람 진짜 뚜껑 열린 거 같은데.

한마디로 10회부터 14회까지 웨프너는 '샌드백처럼 맞았다'고 합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알리가 얼마나 KO를 노렸을지는 안 봐도 알만 하죠. 결국 영화와는 조금 다르게, 알리는 TKO 승을 거둡니다.

알리와의 대전이 웨프너에게 유명인의 자리를 줬지만 그는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도 계속 링에 올랐지만 다시는 유명 선수와 붙지도 못했고, 나중에는 앙드레 더 자이언트와 친선경기(이종격투기가 없던 시절이라...)를 벌이는 등 그저 그런 일거리들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튼 그 뒤로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어진 듯 합니다.

웨프너의 인생을 바꾼 일전과 WBC 결승 한-일전의 날짜가 같다는 건 참 묘한 인연인 듯 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랬겠지만, 9회말 이범호의 동점타가 터졌을 때의 환희는 승리나 다름없더군요. 엄밀히 말해 이날 경기는 이미 져 있는 경기였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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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5라는 안타 수에서도 보듯 일본은 수없이 많은 찬스를 날려 버렸습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꼬여도 정말 더럽게 꼬이는' 경기였죠. 반면 한국은 얼마 되지 않는 찬스를 모두 살려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운을 보여줬습니다.

게다가 한국의 전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봉중근, 정현욱, 임창용이 모두 조금씩 불안했지만 바꾸지 않은 것은, 구위 면에서 이들보다 나은 투수가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양팀간의 전력차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네번째 대결, 2라운드 1-2위 결정전입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여유 전력을 가동한 경기였죠. 한국은 장원삼 임태훈 등 대표팀 내의 2진 투수들을 냈고, 일본 역시 그동안 가동하지 않던 투수들을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일본과 한국의 (대표팀 내) 2진 경기에선 일본이 압승이었습니다. 이날 경기는 승패 자체에는 큰 의미가 없었지만, 선수 층의 두터움에서 일본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경기였던 거죠.

게다가 한국이 박찬호 이승엽 박진만 등 베테랑이 빠진 팀이긴 했지만 일본은 이번 대표팀 정도의 팀을 두 팀 이상 마련할 수 있을 정도로 풍성한 야구 저변을 갖고 있습니다. 대표팀 안에서도 1진과 2진의 기량 차이가 있는 한국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뭐 김광현에 대한 그간의 분석과, 세번째 나온 봉중근에 대한 분석 등 정보파악과 분석력에서도 어쨌든 한국보다 한수 위라는 것 역시 인정할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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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회에서 두 나라가 무려 다섯번의 대결을 벌이게 된 이번 대회의 진행 방식은, 그래서 한국인들에게는 극악무도한 대전방식이라고 지탄을 받지만 엄밀히 말하면 보다 야구 본연의 성격에 맞는, '진짜 강자가 이길 수 있는' 진행방식이기도 합니다. 야구란 서로를 알면 알수록 진짜 실력이 나오는 경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토너먼트 방식의 약점을 극복하고 가능한 한 경기 수를 늘려서 같은 팀이 여러번 맞붙을수록 요행은 사라지고 실력에서 앞서는 팀이 이길 가능성이 높아지게 하는 건 어찌 보면 현명한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꽤 짜증이 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결승에서 그렇게 선전했다는 건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닙니다. 상대의 방심으로 러키 펀치를 터뜨린게 아니라, 승리에 대한 집념과 투지가 전력차를 밀어내 버린 경기였다는 거죠. 그래서 그토록 큰 감동과 박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겁니다.

'록키' 이후 수많은 영화들이 '위대한 패배'를 모티브로 삼아 크게 성공했죠. '쿨 러닝'에서 '우생순'까지 사례는 충분히 있습니다. 승리만이 전부가 아니란 걸 가르쳐준 것이 '록키'의 공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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