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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드라는 이름을 듣고 "누구야?" 할 사람에겐 별 의미 없는 포스팅입니다. 딥 퍼플의 키보디스트라고 하면 좀 달라지겠지만, 역시 요즘 분위기로 봐선 "딥 퍼플이 뭐야?"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을테죠. 하긴 딥 퍼플이라고 해도 '하이웨이 스타'나 '스모크 온 더 워터'를 생각하는 사람에겐 별 관심 없을 공연입니다.

'존 로드 콘체르토-에이프릴(Jon Lord Concerto - April)'이라고 이름붙여진 공연을 다녀왔습니다. 이상하게 꼬인 일정 때문에 갈 수 있을까 걱정도 했고, 결국 시작 시간을 념겨 도착했지만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 마음은 뿌듯하기만 했습니다. 안 왔더라면 정말 소중한 기회를 놓쳐 버릴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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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같이 갈 사람을 꾀는 것부터 난항을 겪었습니다. 마나님과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존 로드라는 사람이 공연을 하는데..."
"그게 누구야?"
"딥 퍼플이라는 그룹에서 키보드를 치던 아저씨야. 딥 퍼플은..."
"나도 딥 퍼플은 알아. 그런데 별로 안 내키네."
"...스티브 발사모가 보컬로 같이 와."
"그건 또 누군데?"
"왜 전에 '게세마네' 잘 부르던 잘생긴 뮤지컬 스타 있잖아."
"아 그래?"

네. 존 로드 선생이 발사모의 덕을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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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드나 딥 퍼플의 역사에 대해 맘 먹고 얘기를 하자면 날밤을 새워도 모자랍니다. 일단 딥 퍼플이라는 이름과 거의 비슷한 무게를 갖고 있는 리치 블랙모어 선생을 빼고 나면 그들의 사운드에서 가장 큰 무게를 가진 사람은 이 로드 형님일 겁니다.

특히 전자 사운드의 개척기인 1970년대, 하먼드 B3와 C3 오르간으로 이 분이 보여준 절정의 무공은 당대 최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릭 웨이크먼이나 키스 에머슨 같은 거인들과 견줘 한 치의 손색이 없었다고나 할까요. 특히 록 사운드와 하먼드 오르간의 결합이라는 건 이 분에 의해 진정한 궤도에 올랐습니다.

리치 블랙모어를 제외한 나머지 딥 퍼플 멤버들이 존 로드의 사운드와 공헌에 대해 얘기합니다. 잠시 'Highway Star'의 솔로 부분을 직접 연주하기도 하죠.

 

내친 김에 그냥 원곡까지. 1972년 라이브입니다. 로드 형님의 얼굴은 막 피해가는군요.



로드는 딥 퍼플의 음악과 클래식의 결합을 위해서도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 결실이 1969년의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 같은 곡이죠. 메탈리카가 샌프란시스코에서 S&M을 하기 수십년 전에 이미 이들은 자신들의 히트곡이 아닌 독자적인 곡으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시도했던 겁니다.

이미 딥 퍼플 멤버들과 함께 두어 차례 한국에 온 적이 있지만 존 로드는 이번엔 스티브 발사모, 카시아 라스카(여)라는 두 보컬과 함께 왔습니다. 밴드는 국내 멤버들로 채워졌고 서울 아트 오케스트라가 협연했죠.

이날 연주 곡목은 이랬습니다.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 (3 movements)
Pictures of Home
One from the meadow
Bourre
Pictured within
The Telemann Experiment
Wait a while
Gigue

Encore: Soldier of fortune, Child in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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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사정으로 Concerto 2악장 때에야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그리 많이 놓치지는 않았습니다. 2부 시작부터 로드 선생은 마이크를 잡고 나서시더군요. 2부 시작 첫 멘트는 누가 영국 사람 아니랄까봐 "다들 바에 갔다 오셨나요?"였습니다.

(그쪽 나라에서는 인터미션 때면 다들 바에 가서 한 파인트 정도 맥주를 마시고 오곤 하죠. 불행히도 세종문화회관엔 그런 바가 없답니다.ㅋ)

Pictures of Home을 연주하자 다들 열광. 하지만 2부에서 딥 퍼플 시절의 곡은 이 곡 한곡 뿐이었씁니다. 나머지는 전부 로드 선생의 솔로 활동 앨범 수록곡들이었죠. 생소한 곡도 많더군요. 보컬이 없는 Bourre같은 곡은 집시의 멜로디를 골격으로 하고 있다는 설명, The Telemann Experiment는 바흐 시대의 작곡가인 텔레만의 멜로디 하나를 듣고 이리저리 변형시켜 만든 곡이라는 설명이 따라왔습니다. 이렇게 진행이 되다 보니 은근히 본 공연보다 앵콜이라는 떡밥 쪽에 더 마음이 쏠렸습니다.

마지막 곡인 Gigue는 대단히 규모가 큰 록 협주곡 형식이었습니다. 스스로 '크레이지 피스'라고 소개를 하더군요. 연주 중간에는 살짝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아메리카'와 드보르작 교향곡 9번 4악장의 멜로디를 섞여 연주하는 장난을 치기도 했습니다. 하여간 전반적으로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형님이었습니다.


드디어 예정됐던 앵콜. 객석의 아저씨 관객들은 "하이웨이 스타!" "번!"을 외치고 난리가 났습니다. 하지만 여유있는 미소의 로드 형님은 "그건 다음 기회에"라고 넘기며 "아마도 오늘 곡 중에서 유일하게 내가 작곡에 손대지 않은 곡일 것"이라며 'Soldier of Fortune'을 연주했습니다. 아아, 해 주시면 고맙기 짝이 없을 뿐이죠.

노래가 끝나고 로드 형님은 '한 곡만 더 하겠다. 이번엔 제목은 말하지 않겠다'며 다시 하먼드 오르간 앞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단 세개의 음표만 듣고도 객석은 들끓어 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처음 세 음만 듣고 이 곡을 모르면 감히 딥 퍼플 팬이라고 할 수가 없죠.




발사모는 그가 왜 뮤지컬을 떠난지 꽤 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최고의 예수로 꼽히는지를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 특히 Child in Time의 고음부에서는 절로 소름이 끼치더군요. 노래 중간에서 쉴새없이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노래하는 사람이 전성기의 길런이 아니라는 게 전혀 아쉽지 않았습니다.

모르시는 분이라면 발사모의 노래도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게세마네'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 노래가 끝날 때만 해도 아무도 이게 끝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공연의 제목이 'April'인데다 4월 아닙니까. 당연히 문제의 노래가 나올 줄 알았죠. 그런데 웬걸, 피곤하셨는지 로드 형님은 그냥 자리를 뜨셨습니다. '누가 공연 끝이래'는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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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행복했습니다. 귀가하는 차 안에서 Child in Time의 고음부를 따라하다가 동승자들에게 구박받은 사람이 저 하나만은 아니었을 듯 합니다.

문득 존 로드 선생을 위시한 당시 록의 거장들이 하먼드 오르간을 연주하던 시대가 그리워집니다. 창작력과 에너지가 온 사방에서 뭉클거리고 쏟아져 나오던 그 시대 말입니다. 그래서 골라 봤습니다. Procol Harum의 A Whiter Shade of Pale입니다. 매튜 피셔의 하먼드 오르간은 지금 들어도 영롱하기만 합니다.

 

언제건 다른 멤버들은 떨구더라도^ 리치 블랙모어와 존 로드가 다시 뭉쳐서 딥 퍼플의 사운드를 재현해 준다면 참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0이라는게 참 안타깝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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