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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타 트렉: 더 비기닝'의 홍보 영상을 우연히 TV에서 봤습니다. 보고 나온 사람들이 무슨 질문엔가 '에? 정말요?'하고 반문하는 광경이 나오더군요. 뭘 물어봤는지는 좀 나중에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상영 시간이 126분(2시간 6분)이란 걸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이었죠.

'그렇게 긴 줄 몰랐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잇달아 나오는 걸 보면서 참 괜찮은 홍보 아이디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영화가 길지 않게 느껴진다는 건 그만치 흥미진진하다는 얘기니까요.

그러고 나서 직접 영화를 봤는데 놀랍게도 그 홍보 영상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마도 올해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가운데 이렇게 짧게 느껴지는 영화는 처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롤러코스터의 속도감과 적절한 유머가 '어, 벌써 끝이야?' 하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원작? 몰라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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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트렉'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은 없어도, 그런 드라마가 있었다는 걸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겁니다. 1966년 9월8일부터 미국 NBC TV에서 방송되기 시작한 스타트렉은 우주 공간을 무대로 한 최초이자 최고의 드라마로 공전의 인기를 모았습니다. 이 첫번째 시리즈(T.O.S, 즉 오리지널 시리즈라고 불립니다)는 4년만에 막을 내렸지만 그 뒤로 40년에 걸쳐 수많은 속편과 외전, 그리고 11편의 극장용 영화가 만들어지는 등 외형상으로 볼 때 조지 루카스의 '스타 워즈'를 능가하는 최고의 인기 우주 모험담으로 자리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인기를 모았다고 해 봐야 남의 나라 얘기긴 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국내에서 더빙 버전으로 이 드라마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AFKN 혹은 AFN은 수시로 이 시리즈를 다시 방송하곤 했지만 말입니다. 1970년대며 80년대에도 윌리엄 섀트너가 연기하는 커크 선장과, 레너드 니모이가 귀 뾰족한 스팍(스포크) 부함장으로 나오는 오리지널 시리즈는 계속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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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다시 패트릭 스튜어트가 피카드 함장으로 나오는 후속 시리즈, 또 그 뒤의 후속 시리즈가 줄줄이 나왔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시리즈의 상징은 바로 스포크 부함장이었죠. 레너드 니모이가 이 역할을 한 건 오리지널 시리즈의 4년 정도 뿐이었지만, 그 여파가 어찌나 강했던지, 일상 생활에서도 그를 외계인이라고 착각(?)하는 팬들 때문에 상당한 곤란을 겪을 지경이었다고 하는군요. 오죽하면 그의 자서전 제목이 '나는 스포크가 아니다'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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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귀 하나 떼고 본다 해도 사실 지구인같지 않은 얼굴.>

아무튼 '스타 트렉'의 장구한 역사에 대해서는 저는 말할 자격도 없고, 지금부터 연구할 기력도 없으니 이 정도로만 하겠습니다. 물론 이 정도도 몰라도, 영화를 보고 즐기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드라마 '로스트'와 영화 '미션 임파서블 3'를 통해 액션 블록버스터의 총아로 떠오른 J.J 에이브람스는 이 너무도 유명한 '스타 트렉'이야기를 가지고 누구도 해 보지 않은 일에 도전합니다. 바로 오리지널 시리즈 주인공들의 젊은 날, 즉 이들이 첫번째 시리즈에서 모험을 펼치기 전 신출내기일 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을 품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스타 트렉 오리지널 시리즈의 프리퀄인 셈이죠.

이 용어보다는 리부트(Reboot)라는 말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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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사실 원작보다 세월이 흐른 뒤에 나오는 프리퀄에는 몇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양들의 침묵'보다 11년 뒤에 나온 '레드 드래곤' 처럼, 오히려 시간상으로는 앞의 시대를 다루고 있는데 정작 주인공은 훨씬 늙어 보인다는 점이 대표적인 문제죠. 또 '스타워즈 에피소드 1' 처럼 '에피소드 4, 5, 6'보다 훨씬 앞의 시대인데 우주선의 디자인이나 영상의 화질 등은 훨씬 뒤의 시대처럼 보인다는 문제도 발생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시리즈는 '주인공들의 젊은 날'이라고 한정해서 새로운 배우들로 왕년 추억의 스타들을 모두 대체해버리고, 익숙한 우주선의 디자인이나 무장 등을 가능한 한 원작에 가깝게 유지합니다. 조종석이나 사용하는 무기, 순간 이동장치 등이 드라마와 거의 똑같아서 감탄했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주요 승무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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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체코프, 커크, 스코트, 맥코이, 술루, 우후라>

제임스 T 커크 함장 - 크리스 파인
스포크 부함장 겸 과학장교 - '사일러'로 더 유명해진 재커리 퀸토
레너드 맥코이 군의관 - '반지의 제왕'의 에오메르 칼 어반 (못 알아봤습니다.^)
몽고메리 스코트 기관장 - '새벽의 황당한 저주'의 사이먼 페그 (기대한 그대로의 모습)
니오타 우후라 통신장교 - 조 살다나
히카루 술루 조타수 - 유일한 동양인 캐릭터. 존 조.
파벨 체코프 항해사 - 안톤 옐친. 개봉할 '터미네이터 4'에선 카일 리스의 어린 시절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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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이 스포크 역으로 거론됐다는..>

영화는 커크 함장의 아버지인 조지 커크가 위기를 맞은 전함의 임시 함장을 맡아 장렬히 전사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세월이 흘러 주인공들은 지구인과 외계인들이 결성한 우주 연합함대(스타플리트 Starfleet)의 승무원 양성 과정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스타플리트에 합류한 외계인 중에는 벌칸 행성 출신의 스포크가 있습니다. 인간에 비해 고도의 지성을 갖고 있는 벌칸인과 지구인 사이에서 태어난 스포크는 이미 스타플리트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맡고 있지만, 커크는 사고뭉치에 정학을 당하는 존재죠. 그런 그가 우연히 전함 엔터프라이즈에 타게 되고, 자신이 태어날 무렵 스타플리트에 닥쳐 왔던 위기가 재현되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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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타 트렉'은 원작의 존재 유무를 떠나 '60년대 느낌의 SF로 회귀'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1990년대 이후의 SF 판타지는 "유치해 보이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그리 자유롭지 않았지만, 이 영화는 아예 대놓고 "좀 유치해 보이면 어때. 재미있으면 그만이지"라는 태도를 아예 대놓고 과시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는 과학의 발달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낙관과 여유가 넘치던 시대였거든요. 그러니까 90년대 이후의 SF 영화들이 갖고 있는 리얼리티에 대한 집착, 현실에 대한 은유, 철학적인 깊이를 담으려는 시도 등을 싹 쓸어 버리고, '이건 그리스 신화나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엔터프라이즈 승무원들이 펼치는 신나는 모험담이면 돼'라는 자세를 꿋꿋하게 밀어부칩니다.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입니다. 드라마 '스타 트렉'에서도 우주를 누비는 베테랑 승무원인 주인공들이 모두 실수 투성이의 신참들이라는 건 참신하면서도 계속해서 웃음을 자아냅니다. 커크 함장 역의 크리스 파인도 오리지널 시리즈를 모두 봤지만, 거기 나오는 커크 함장의 신중하면서도 원숙한 함장 연기 보다는 '탑 건'의 톰 크루즈나 '스타 워즈'의 해리슨 포드 같은 연기를 지향했다고 하는군요. 실제 모습도 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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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영어 발음이 안 되는 러시아계 항해사 역의 안톤 옐친, 우주전함 워프를 시키지 못하는 조타수역의 존 조, 개발되지 않은 이론 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는 선각자 역의 사이먼 페그 모두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명연기를 보여줍니다.

이밖에도 행성 하나를 한방에 날려 버리는 규모의 거대한 액션, 인간 하나는 화면의 점으로도 표시되지 않을 정도의 대규모 우주 전투 등은 '이것이 J.J. 에이브람스의 스타일'이라는 식으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한마디로 체급이 다릅니다.

5월 이후 한국 영화든, 할리우드 산이든 볼만한 영화들이 쏟아져서 즐겁습니다. 아무래도 시간들을 쪼개서 극장을 좀 더 자주 찾으셔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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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에릭 바나가 이런 분장을 하고 악역으로 나온다는 게 참 충격적입니다만, 정작 놀라운 카메오는 두 사람입니다. 일단 스포크의 지구인 어머니 역으로 위노나 라이더가 나옵니다. 꽤 나이든 모습으로 나오는데, 주름은... 설마 분장이겠죠?

또 한 사람은 이 시리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레너드 니모이. 무슨 역으로 나오는지는 그냥 비밀로 해 둬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오리지널 시리즈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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