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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기대도 하지 않다가 반가운 얼굴이 나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MBC TV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에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가 나오시더군요. 한때 MBC 뿐만 아니라 한국 예능의 큰 흐름을 이끌었던 스타 PD였고, 최근에는 저술가로 변신하신 분입니다. 아프리카를 다녀 오신 경험을 쓰셨더군요.

사실 PD가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온다는 것은 좀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게다가 현재 MBC 예능의 주력인 여운혁 CP 계열의 직계 선배이고, MBC 예능국장을 역임하신 분이라는 점, 그리고 현재 예능 PD로 일선에 복귀를 앞두고 있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무릎팍 도사'에 이 분이 출연한 것은 지나친 전관예우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그건 방송을 보기 전 얘기고, 어제 이 분이 풀어 놓은 이야기 보따리를 생각하면 충분히 나올만한 분이었다는 걸 수긍하게 될 겁니다. 특히 '양심냉장고'와 '이경규가 간다'가 당시 온 국민에게 줬던 감동을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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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라는 방송사는 드라마건 예능이건, PD를 스타로 만드는 데 있어 다른 방송사들보다 항상 한발 앞선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중에서도 김영희 PD는 90년대 중반의 MBC를 대표하는 예능 PD였죠. 그 위로는 송창의 주철환 은경표와 같은 거물들이 있었고, 이후에는 고재형 여운혁 김태호로 예능 스타 PD의 명성이 이어집니다.

이 분을 처음 뵈었을 때가 주철환 전 OBS 사장의 조연출일 때였으니 참 오래 전 일입니다. 그 무렵이 바로 이 분이 '몰래카메라'를 열심히 찍고 계실 때였죠. 방송에서도 이범학의 몰래카메라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몰래카메라'라는 포맷을 처음 도입한 사람은 송창의 PD(현 tvN 대표)였지만, 이범학과 이경규가 등장한 '몰래카메라'는 주철환 PD가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지휘봉을 넘겨 받은 첫 회의 기획이었습니다. '퀴즈 아카데미'를 연출하던 주 PD가 '일밤'으로 옮겨가면서 '퀴즈 아카데미'의 포맷을 오락 프로그램에 응용한 것이었죠.

이 얘기는 지난번에 상세히 소개한 적이 있으므로 여기선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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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예능 스타 PD의 계보에서 김영희 PD와 주철환 PD는 유독 밀접한 관계입니다. 바로 MBC 예능에 면면히 계승되는 '교양파'의 전범을 만든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능도 생각하면서 봐야 한다' 혹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가운데서도 뭔가 느끼고 생각할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당의정 이론'의 대표자들이죠.

물론 엄밀히 말해 이런 이론을 주창한 사람은 주PD지만 이를 실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구현한 사람은 김PD였던 겁니다. '남는 것이 있는 예능'은 이른바 '양심냉장고'와 '이경규가 간다', 그리고 신동엽의 '신장개업'과 '러브하우스', 또 '느낌표'의 '기적의 도서관'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사람들은 TV가 그저 웃기고 울리고, 화려하고 요란한 세상만을 펼쳐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며,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노력하고, 작은 힘을 모아 큰 힘으로 승화시키는 힘을 발휘한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성공 뒤에는 김PD의 힘이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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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여의도 MBC 3층에 있던 예능국의 '일밤' 회의실에 가 보면 이 분은 깨 있는 모습보다 잠자는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회의실 한켠에 아예 야전 침대가 있고, 거기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었죠. 방송에서도 '예능국장이 되자 집무실에 야전침대를 갖다 놨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이미 평 PD일 때부터 회의실에는 침대가 있었습니다. "왜 매일 주무시느냐"는 농 섞인 질문에 "송기자, PD 해봐. 간이 상해"하던 그분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양심냉장고'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당시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정지선을 칼같이 지켰습니다. '누군가 보고 있다'는 생각, '잘하면 횡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래. 이게 원래 지켜야 하는 선이었지' 하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파고 든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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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이경규와 김PD는 수없이 많은 작은 영웅들을 발견해 냈습니다. 그 많은 주인공들 중에서 지금도 생각나는 사람은 지하철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 앞에서 망설이는 할머니(네. 이 분이 바로 설정이죠)의 짐 보따리를 선뜻 들고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간 한 국군 장병이었습니다.

얼굴도 늠름하게 잘 생겼던 이 장병은 "할머니를 보는 순간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가 생각났다"는, 쪽 빠진 멘트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선물을 받고 난 마지막 말까지도 "혼자 휴가 나와 미안한데, 동료 전우들에게도 한턱 내야 겠다"는 환한 웃음으로 마무리하더군요. 장동건이 나온 들, 이영애가 나온 들 이보다 멋진 방송을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이처럼 김PD와 이경규의 실험은 "톱스타 없이도 시청률 1위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전례를 확실하게 남겼습니다. 물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실험과 도전은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낳을 수밖에 없었고, 그걸 극복한 건 아이디어에서 끝나지 않는 끈기와 뚝심의 힘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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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도 일본 후지TV 연수 얘기가 나오던데, 이분이 일본 연수를 다녀와서 하신 얘기 중에 아직도 기억나는 대목이 있습니다. 10년 이상 전의 얘기라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일본에 가니 우리와 큰 차이 없는 방송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인력이 우리의 몇 배나 됐다. 예능 프로그램 하나 만드는데 PD가 10명, 스태프가 60명이 넘었다. 현지인들에게 '우리는 이런 걸 PD 2-3명이 한다'고 했더니 다들 놀라면서 '아, 한국 PD는 슈퍼 PD다'라며 칭찬을 하더라. 그런데 그날 저녁, 술자리에 갔는데 선임 PD가 한마디 하는거야. '사실은 일본도 몇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더 높은 품질을 위해 급속도로 투입하는 인력이 많아진거다. 다 필요해서 늘렸다.' 그러니까 낮에는 예의상 그렇게 얘기했던 거지."

2009년, 한국 예능 프로그램도 2시간짜리 주말 버라이어티를 만드는 데 모두 합치면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투입됩니다. 하지만 예전의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국장 아닌 김PD의 복귀 출사표는 마냥 반갑습니다. 뭐 늘 성공하는 프로그램만 만드신 건 아니지만^^ 이번에도 한 건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p.s. 혹시 이 글 보시게 되면 책 한권 보내주세요.^^



댓글
  • 프로필사진 검둥맘 앗 저도 해봐도 되나요 앗싸 1등? ㅎㅎ
    어젯밤에 방송 보면서 추억(?)의 양심냉장고 떠올리며 무척 반가웠더랍니다
    언니 칭구들이 양심냉장고 타겠다고 야밤에 시내를 배회하며 정지선 지켜서기 릴레이를 펼치기도 했었다죠 ㅋㅋ
    2009.07.09 09:40
  • 프로필사진 송원섭 수고하셨습니다.^ 2009.07.09 09:44
  • 프로필사진 뭉식유선생 2등?
    호호호^^

    김피디님.. 참 유머러스 분이었던거 같은데~
    격식없고 캐주얼하고.. ^^
    2009.07.09 09:57
  • 프로필사진 송원섭 개인적으로 아시는군요. 2009.07.10 08:52
  • 프로필사진 카스 그런데 옛날에 여기저기 나온 걸 보면 수염도 길고 체형도 약간 비만형인듯 했는데,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하신 듯...? 2009.07.09 10:15
  • 프로필사진 송원섭 다이어트를 하신거겠죠.^ 2009.07.10 08:53
  • 프로필사진 namaste 저도 어제보며 참 여러가지 생각, 많이 했는데.. 대단한 분이시라는 존경심도 들고, 그러더군요.

    그나저나.
    형님과 예능PD들과의 인연, 참 깊고도 넓으신 듯 하시다는!-그런데 거의 M본부 PD들과 인연이 있으신가봐요^^-
    2009.07.09 10:25
  • 프로필사진 송원섭 뭐 주로 한게 그거니.. 2009.07.10 08:53
  • 프로필사진 후다닥 어제 방송 보는 내내 참 유쾌하고 열정적인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지선 지키기 한참 할때 사무실앞에서 촬영하던거 생각납니다.
    모 자동차회사 직원들이었던거로 기억하는데 정지선 지키기
    하다하다 안되니까 본인들이 직접 차끌고 나와서 시도했는데
    결국 차 한대가 안지켜서 실패하는거 보면서
    그 운전하던 아즈씨 흉을 오지게 봤더랬습니다..
    요사이 MBC 예능이 무도를 제외하고는 완전 바닥을 기는
    분위기이던데 복귀후에 과연 어떻게 변할지 기대됩니다.
    2009.07.09 10:29
  • 프로필사진 송원섭 네. 일밤의 암흑기죠. 2009.07.10 08:53
  • 프로필사진 강가리 결국 왕의 귀환이지요.. 위기의 M본부 예능을 살리라는
    특명을 받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만드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프로그램 뭐 이런말이 기억이 나네요..

    복귀작의 아이템이나 성공여부가 관심이 갑니다..
    연예인들 얘기 이젠 그만하고 .. 다른 것도 다시 한번 시도해 볼 때가 생각합니다..
    2009.07.09 11:07
  • 프로필사진 랜디리 전혀 뜬금 없는 댓글인데;

    http://www.kafcanadaeast.org/bbs/view.php?id=freeboard&no=977

    예전 유행했던 '코리안 프로그레시브 드러머' 의 정체가 밝혀졌었네요. 알고 계시는 거면 죄송;;;
    2009.07.09 12:24
  • 프로필사진 송원섭 안봐도 신중현씨랑 활동했다는 그 교포 얘기지? 2009.07.10 08:54
  • 프로필사진 nohwon 양심 냉장고, 신장개업, 러브하우스,그리고 기적의 도서관.
    경박하고 호들갑스런 예능이 아닌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예능.
    그래서 많은 시청자들이 좋아했었지요...

    요즘엔 그런 프로그램 보기가 쉽지 않은 듯합니다.
    김영희PD가 이미 너무 많이 보여줬기 때문일까요?^^

    아마도 그런 프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 팍팍한 세상에 다시금 훈훈한 감동과
    더불어 사는 세상임을 느끼게 해 줄 그런 방송.
    하나 제대로 터뜨려 주기를~~~
    2009.07.09 12:28
  • 프로필사진 경아 안철수 출연에 이어 강호동이 진땀 흘리는 모습 ㅋ~ 2009.07.09 13:05
  • 프로필사진 비밀댓글입니다 2009.07.09 13:08
  • 프로필사진 echo 그 무섭기로 소문난 쌀집 아저씨가 저렇게 편안한 인상이시군요.
    정말 반갑네요. 다시 나오신다니.^
    2009.07.09 13:35
  • 프로필사진 송원섭 어느 동네에 소문이 그렇게..? 2009.07.10 08:54
  • 프로필사진 선우재우부 역시 글의 핵심은 뒤에 있군요.
    책 읽고 나셔서 PD가 겪은 아프리카 이야기를 포스팅해 보시는 건 어떠실 런지.......^^;;
    책 소개도 되고.......
    2009.07.09 14:20
  • 프로필사진 푸우 보기보다 실제로 나이가 있으셔서 이젠 40,50이 우리 아빠 또래와는 달리 퇴직이 아닌 일할 나이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살 빼니 더욱 어려보이는 것 같아 저 또한 다이어트 열의가 불끈 ^^)

    아직도 정지선에 설 때면 양심냉장고를 정말 거짓말 안하고 '늘' 떠올립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선 안에 꼭 설 수 있도록 노력하고요.

    어제 스타 기 팍팍에 사원증이 나왔을 때 세트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뭔가 말하던 모습에서, 예상치 못한 후배의 선물에 보는 저 또한 기분이 따뜻해지더라고요.

    다시 한 번 마음이 따스해지길 기대해볼랍니다. ^^
    2009.07.09 15:42
  • 프로필사진 송원섭 ^ 2009.07.10 08:55
  • 프로필사진 ...! 기억납니다..정지선 지키시던 부부의 모습을보며.쨘~했었던...이제,주말저녁 재미와 잔잔한 감동이 있는 좋은 예능프로 볼수 있었으면...좋겠습니다~^^ 2009.07.09 16:39
  • 프로필사진 아자哲民 늦게나마 챙겨보았습니다.방송중 소개되는 김영희PD에 필모그래피를 보니 제가 모두 보았던 프로그램이더군요.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김영희 PD와 함께 제 연예오락시청도 클로징 되었나 봅니다. 다시 복귀한다면 관심있게 지켜봐야 겠습니다. 그렇다고 닥복사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
    2009.07.09 20:50
  • 프로필사진 Harryc 쌀집아저씨께서도 많이 늙으셨군요...
    잠을 많이 주무셨어도 간이 많이 상하셨나봐요.
    사진으로 봐서 그런가..? ㅎㅎ
    2009.07.09 23:23
  • 프로필사진 릴케 요즘 인터넷에 악플들이 너무 많아서 인터넷도 잘 안 하게 되는데 생각하면서 보는 예능프로가 지금까지 계속 이어졌다면 우리 사회가 좀 달라졌을까요? ^^ 2009.07.10 21:27
  • 프로필사진 윤호매니아 옛 기억이 새록 새록~
    어릴 때는 예능 프로 참 좋아했는데 말이죠~^^


    그나저나 빨리 우리 방송 현장도 나아지길 바라고...
    감동 주는 좋은 예능 프로가 나왔으면 좋겠네요.

    주철환님의 책도 꼭 읽어봐야겠어요~^^
    2009.07.15 17:05
  • 프로필사진 skywalker 러브하우스때 참 많이 감동 받았는데. 그래서인지 이 모씨의 이번 일이 더욱 슬프게 느껴지더라고요.

    차라리 뭔가 오해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2009.07.21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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