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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무한도전'에 나왔던 명카드라이브의 '냉면' 열풍이 몰아치는 핑계를 대고 냉면 얘기를 써 봤습니다. 아, 물론 박명수와 소녀시대 제시카가 부른 '냉면'은 '차가운 얼굴'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한자로 쓰면 '冷面'이죠. 중의적인 표현의 가사가 신선합니다. 일각에서는 '30분만에 쓴 노래'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이런 발상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제가 냉면에 환장한 사람이라는 걸 이미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실테니 자세한 내용은 링크로 대신하겠습니다. 아무튼 오늘의 주제는 대체 왜 한국에서, 하필이면 한국에서 냉면이라는 음식이 꽃을 피웠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똑부러진 대답이 나오기엔 글의 분량이 너무 짧습니다. 진짜 답은 읽는 분들이 내려주셔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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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간 '냉면'이란 노래가 급격한 인기 물살을 탔다. '차디차 몸이 떨려/ 질겨도 너무 질겨/ 그래도 널 사랑해'라는 단순한 가사의 쉬운 노래지만 지난 11일 MBC TV '무한도전'에서 소개된 뒤 무서운 기세로 각종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장마철의 끈끈한 더위가 노래의 인기에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여름만 오면 유명한 냉면 전문점 앞에 줄을 서는 일이 반복된 것일까. 작가 성석제에 따르면 김유정이나 이효석의 1930년대 저작에도 냉면 식도락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특히 이효석은 1939년 쓴 '유경식보'에서 '평양냉면은 유명한 것으로 치는 듯하나 서울 냉면보다 희지 못하다'고 쓰고 있다. 김찬별의 '한국 음식, 그 맛있는 탄생'에 따르면 여름 냉면집의 단체 식중독 기사가 1929년부터 거의 매년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니 냉면이 외식 산업의 선두 주자로 나선 것도 만만찮게 오래된 일인 듯하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냉면이란 음식이 대체 어쩌다 한국에서 이런 인기를 누리게 됐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더위로 치자면 훨씬 더운 나라 천지고, 국수 사랑으로 따져도 결코 한국에 뒤지지 않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스파게티의 나라 이탈리아에도 식혀 먹는 국수가 있긴 하나 샐러드에 파스타를 얹는 정도다.

이웃 중국과 일본의 대표 음식 중에도 차가운 국수는 쉬 눈에 띄지 않는다. 중국엔 량몐(凉麵)이니 렁반몐(冷拌麵)이니 하는 음식들이 있지만 그냥 초보적인 비빔국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과 옌볜의 영향으로 동북식냉면이니 조선냉면이니 하는 음식들이 침투하고 있다.

일본에도 히야시추카(冷やし中華)라는 차게 식힌 라멘이 있지만 이름만 봐도 자국 음식 대접을 못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냉면만큼 보편화된 품목을 찾자면 장에 찍어 먹는 메밀 소바 정도다. 그러나 이 역시 한국처럼 벌컥벌컥 육수를 들이켜며 더위를 쫓는 음식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평양냉면 매니어들은 여름 아닌 한겨울이 제철임을 지적한다. 싸늘한 동치미 육수를 싹 비운 뒤, 거리로 나가 찬바람을 맞으며 “아, 시원하다(물론 '씨원하다'라고 써야 더 느낌이 온다)”고 중얼거리는 바로 그 맛. 대체 한국인들은 어쩌다 이런 별난 습성을 갖게 된 걸까. 한국인의 냉면 유전자가 궁금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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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예전에 냉면에 대해 썼던 글 안내입니다. 이른바 냉면 챌린지.

일단 여기선 생략했지만 냉면의 역사는 최소한 조선시대까지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형태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제가 수시로 우려먹는 김찬별 선생의 명저 '한국음식, 그 맛있는 탄생'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오미자로 국물을 우려낸 냉면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19세기 이후의 문헌을 보면 사 먹는 냉면은 쇠고기, 돼지고기, 닭뼈 등으로 육수를 우려 낸 것이고 집에서 해 먹는 냉면은 깻국이나 콩국에 말아 먹는 것이라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조상들은 냉콩국수와 냉면에 큰 차이를 두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 냉면이란 음식은 독특합니다. 이렇게 차가운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다는 발상 자체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기도 하죠. 혹시 윗글을 보다가 왜 요즘은 국내에서 세를 꽤 넓혀가고 있는 중국냉면 이야기가 안 나오나 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문제는 이 중국냉면이라는 것이 이름과는 달리 사실상 한국 음식이라는 데 있습니다. 중국냉면을 직접 만들고 있는 화교 주방장들조차도 "중국사람은 이런 음식을 모른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짬뽕'이라는 음식이 없듯(이 음식은 일본 나가사키에서 만들어 진 것입니다), 중국냉면 또한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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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볼 수 있는 이 '중국냉면'의 형태는 대략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이건 나중에 다시 한번 집중소개하겠습니다.^^ 아무튼 제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중국에는 본래 차가운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 풍습이 없습니다. 중국인들이 먹는 량몐은 대략 이렇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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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윗부분에 이탈리아 이야기가 나오는데, 오래 전 이탈리아의 한 소도시에 갔을 때 한 노천 카페에서 흥미로운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더운 날이어서 콜라를 주문했는데, 잔과 콜라 병을 갖다 주더군요. 그런데 콜라는 냉장고에서 꺼낸 것은 분명했지만, 기대만큼 차지 않았습니다. 또 당연히 잔에 얼음이라도 채워다 줄 걸로 생각했는데 그냥 빈 잔이었습니다. 웨이터를 불러 얼음을 좀 갖다달라고 했더니 잠시 묘한 표정을 짓더군요.

현지 생활이 10년 넘은 동행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사람, 아마 여기서 일하면서 얼음 달라는 사람은 처음 봤을 거야." 실제로 그때 그 카페 안의 손님들 중 얼음이 들어있는 잔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이었는데도 다들 그냥 미지근한 물잔을 들고 있더군요. '아이스 워터'가 기본인 미국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잠시 후 나타난 웨이터는 얼음통도 아닌 사발에 얼음을 담아 와서, 얼음집게도 아닌 숟가락으로 얼음을 떠서 제 잔에 넣었습니다. 딸랑 한 개를 넣더니 "더 드릴까요?"하고 물어보더군요. 잔에 가득 채우라니까 '오 마이 갓' 하는 표정으로 얼음을 딸랑 딸랑 채우곤 어깨를 으쓱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 동네 사람들은 '아주 찬 음식도, 아주 더운 음식도' 건강에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더군요. 뭐 세계적인 건강식이라는 지중해식이니 그런가 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에게 이가 시린 냉면 한 사발을 보여주면 과연 뭐랄지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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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처음부터 예고했지만 답은 없습니다. 그냥 더운 여름에는 시원하게, 추운 겨울에도 더 씨원하게 살 수 있도록 냉면을 만들어 주신 조상님들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p.s. 명카드라이브의 '냉면'도 좋지만 역시 냉면 노래는 '한 촌사람 하루는 성내와서/ 구경을 하는데/ 이골목 저골목 다니면서/ 별별것 보았네' 가 제격이죠. 이 노래는 미국의 구전가요인 Vive La Compagnie에 작곡가 박태준이 가사를 붙인 것입니다. '맛좋은 냉면이 여기 있소/ 값싸고 달콤한 냉면이오/ 냉면 국물 더 주시오/ 아이구나 맛 좋네'. 절로 침이 넘어갑니다.

'냉면'으로 녹음된 곡은 없군요. 그냥 곡조만 들으시기 바랍니다. 앞의 30초 정도를 지나가면 노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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