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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기무치 파동'이 결국 본인의 실수 인정과 사과로 끝났습니다. 전말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일본 후지 TV의 인기 프로그램 '톤네루즈'에 출연한 정우성이 한국의 음식 이름을 'kimuchi chige'라고 쓴 패널을 들어 올리는 장면이 방송되면서 시작된 사건입니다.

김치찌개를 표시하는데 왜 굳이 김치(kimchi)라고 쓰지 않고 일본식 표기인 기무치(kimuchi)라고 표기했느냐는 것이 이 방송을 본 국내 네티즌들의 지적이었죠. 그런데 정우성의 소속사는 초기 대응에서 또 한번의 실수를 합니다. "kimuchi라는 글자는 정우성이 쓴 것이 아니라 일본 방송의 스태프가 쓴 것"이라고 발뺌한 것입니다.

결국 정우성이 이것이 거짓말이었음을 직접 밝히면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습니다. 정우성은 남자답게 사과를 했고, 이번 사건은 해외에 진출한 한국 스타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네. 사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억해둬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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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가 어느 나라 음식이냐고 물으면 우리는 코웃음을 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만의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세계인을 대상으로 볼 때 과연 김치와 기무치 중 어느 쪽이 더 인지도가 높을지, 김치가 한국 원산인지 일본 원산인지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을 지 단언할 수 없습니다.

한국이 '당연히 김치는 한국이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일본은 '기무치'라는 상품을 통해 '김치는 한국산, 기무치는 일본산'이라는 식의 노선을 취해 세계 시장을 차지해갔습니다. 결국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한국이 황급히 노력해 이뤄낸 것이 2001년 CODEX의 식품명 공식 표기 선정입니다. 이때부터 kimuchi라는 상품은 사라지고, 모두 kimchi라는 이름을 쓰도록 공식적으로 지정된 것입니다. 즉, 세계가 공짜로 '김치=kimchi'를 인정해 준 것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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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kimchi라고 표기한다고 해서 반드시 세계 시장에서 한국산이 일본산이나 중국산보다 우수한 상품으로 평가된다는 법은 없으니 김치 전쟁은 지금도 진행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식품인 kimchi가 자칫하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kimuchi라는 표기로 알려질 수도 있었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악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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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식품 시장에서 이런 식의 원산지 빼앗기 다툼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보드카=러시아의 국민주'라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지지만 1977년대에는 폴란드가 "보드카는 폴란드에서 처음 탄생한 술이므로 폴란드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은 술에 보드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고 공식적으로 청원한 바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구 소련 측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폴란드가 고문서와 기록 등을 들어 이 주장을 본격적으로 관철하려 해 두 나라 사이에 '보드카 원조 전쟁'이 일어난 적도 있습니다. 결국은 러시아가 100년 정도 앞선 보드카 생산 기록을 제시함에 따라 '보드카 원조는 러시아'라는 내용이 공식 인정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이런 세상입니다. 그래서 정우성의 kimuchi는 그동안 kimuchi를 몰아내고 kimchi를 표준으로 하기 위해 애쓴 분들의 노고에 대한 결례로 여기지는 것입니다. 사소하지만 의미는 꽤 큰 차이였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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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 사건은 최근 영화 '지.아이.조-전쟁의 서막'에 출연한 이병헌의 한국어 대사와 맞물려 묘한 느낌을 줍니다. 이병헌은 일본 캐릭터도 되어 있는 자신의 역할 스톰 섀도우를 '한국인 출신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해 자신의 아역인 소년에게 직접 한국어 대사를 지도하는 열의를 보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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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흐름으로 따지자면 닌자인 스톰 섀도우는 일본인이라는 쪽이 훨씬 자연스러웠겠지만 어쨌든 이병헌은 이 대작 영화를 통해 자신이 한국인임을 좀 더 확실히 해 두려 했고, 혹시나 일부 국내 팬들이 일본인 역할을 연기하는 데 대한 반감을 갖지 않을까 의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생각이 미쳤다는 건 정우성의 경우와 절대적인 차이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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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레이서'에 출연한 비가 역시 자신의 캐릭터 이름인 '토고 칸'을 '태조 토고 칸'으로 바꾼 것 역시 같은 시각에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임을 뜻하는 태조, 일본 식의 성 토고, 그리고 징기스칸에서 따온 듯한 칸으로 이 이름은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아닌 '아시아인'을 의미하는 이름이 됐죠.

이걸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비는 자신의 이름이 한글로 부착된 유니폼을 고집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한국인의 아이덴티티를 좀 더 선명하게 하겠다는 의지입니다. 국내용 프로모션이든, 국제용 프로모션이든,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여기에 비하면 정우성의 기무치 사건은 그가 한국의 얼굴로 해외에 나가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국내 팬들에 대한 배려는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낸 셈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번 사건이 주는 교훈입니다.

물론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정우성의 사과를 인정하되, 해외에 진출하는 한국 스타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비슷한 종류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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