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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을 맞아 읽은 책이 몇권 있습니다. 뭐 여기 소개할만한 책도 있고, 아닌 책도 있는데 아무래도 재미로 따지면 새로 나온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1,2권 만한 책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아시는 분든 다 아시겠지만 이 책은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의 속편입니다. 이 책 제목을 지금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이 있다면, 인생을 헛사신 겁니다. 지금이라도 yes24나 리브로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사실 저만해도 상당히 늦게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접한 편인데, 읽어보고 나니 후회되는 부분이 꽤 있었습니다. 이걸 왜 지금에서야 보게 됐을까...하는.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성균관'의 배경을 잠시 설명합니다. 때는 정조 초기. 몰락한 남인 가문의 딸 김윤희는 홀어머니와 병약한 남동생 윤식의 생계를 위해 남장을 하고 서책 필사로 돈을 법니다. 그러다 필사 가격을 올려 받을 욕심에 어찌 어찌 해서 과거를 보게 되고, 어찌 어찌 하다 급제까지 해 성균관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간 성균관에서 윤희는 노론 벽파 좌의정의 아들이며 조선 최고의 꽃미남이자 천재(...죄송합니다. 설정이 그런걸 어쩌겠습니까)인 이선준, 천재 시인이지만 술과 쌈박질의 달인인 소론 문재신, 그리고 당파도 아리송하지만 사치와 주색잡기, 그리고 네트워킹의 달인 구용하를 만나게 됩니다.
뭐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커피프린스 1호점'이나 '바람의 화원', 심지어 '선덕여왕'에 이르기까지 '남자들의 사회에 들어간 여장 남자' 이야기가 꽤 보편화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풀어내는 사연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지켜볼만큼 재미있습니다. 아울러 여자인 윤희가 '대물'이라는 얄궂은 호칭으로 불리게 되는 과정까지도 무리 없이 풀어낼 만큼 작가의 필력이 뛰어납니다. 여기까지가 '성균관' 이야기.
2편인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은 우여곡절 끝에 성균관을 마치고 규장각에 들어가게 된 이들 4총사(책 안에서는 '잘금 4인방'이라고 불립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기생이건 양가집 규수이건 다들 오줌을 찔끔찔끔 싸게 된다는....)의 좌충우돌하는 사연을 그립니다.
문벌도 다르고 당파도 다른 네 인재를 남달리 총애하는 정조. 하지만 이들이 속해 있는 각 당파는 당연히 이들을 한데 묶는데 불만이 있고, 심지어 몰락한 남인 가문의 후예인 김윤식(행세를 하고 있는 윤희)이 규장각에 들어선다는 것 자체가 관료 사회에서는 파격에 가깝습니다.
이들을 불만스러워하는 조정에 대고 정조는 퉁명스럽게 "안 맞는다고 생각하면 테스트를 해서 떨어뜨리렴"이라는 식으로 반응하고, 관료들은 온갖 머리를 짜내 이들을 괴롭히려 하지만... 주인공들의 능력은 워낙 사기 유닛입니다. 세상에 못하는 게 없고, 모르는게 없습니다. 이선준의 폭넓은 지식과 식견, 윤희의 못잖은 실력과 최고의 필사력, 재신의 체력(?)과 문장력, 그리고 용하의 재력과 높은 경험치가 결합되면 난제라는게 존재하질 않습니다.
정은궐 작가에게 탄복하는 것은 규장각과 당시의 조정 구도에 대한 결코 가볍지 않은 연구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규장각' 도입부에서만 봐도 선준과 윤희 앞에 가로놓인 첩첩의 난제들은 결코 가볍지 않은데 그 난제들을 풀어가는 방법에 별 무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규장각'과 '성균관'의 가장 큰 차이는 정조의 이미지 부각입니다. 성질도 급하고, 막말도 하고, 머리가 좋은 만큼 머리 나쁜 신하들을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하는 인간적인 정조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얼마 전 발견된 어찰첩의 내용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렇다면 참 정은궐 작가는 선견지명을 갖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재미있는 책을 보신 기억이 있는 분이라면 남아있는 페이지가 점점 줄어들 때의 아쉬움을 아실 겁니다. 위안이 되는 거라면 줄거리나 마무리 방식으로 보아 아무래도 3부가 나올 것 같다는 점(책의 끝부분을 보면 3부의 제목도 '*** **들의 나날'이 될 거라고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만 스포일러에 해당하기 때문에 굳이 밝히진 않겠습니다), 그리고 머잖아 '성균관'이 드라마판으로 방송될 것 같다는 점입니다.
드라마 판권이 애저녁에 팔렸다는 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과연 누가 주인공이 되면 어울릴까를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제 생각에는 윤희 역은 똑떨어지는 배우가 있습니다.
바로 한효주양이죠. '어지간한 남자들만큼' 큰 키. 선량한 눈빛. 게다가 선비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똑똑한 말씨(이 대목에서 많은 경쟁자들이 탈락입니다), 고운 얼굴 선. 뭣 하나 빠지는 게 없습니다. 그냥 윤희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미리 얘기한게 아니라면, 지금 '찬란한 유산'으로 상한가를 때리고 있다는게 캐스팅의 난제로군요. 한효주 본인으로서도 해볼만한 역할일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선준 역에 맞는 배우가 도무지 떠오르질 않는다는 겁니다. 훌쩍 큰 키, 자상한 미소, 조선 시대의 천재 이미지에 맞는 지성미(네. 사실 이 부분에서 턱 막합니다), 적절한 나이... 제가 아는 남자 연예인 중에서는 이 조건을 충족시킬 사람이 영 떠오르질 않습니다.
굳이 생각하자면 조이병 정도? 그런데 제대할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겠죠.
재신 역도 만만찮은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탓에 딱 떨어지는 캐스팅을 하기는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사실 책을 봐선 '젊은 김영호' 정도의 이미지인데 조한선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분이 소지섭 얘기를 하시던데 아마 출연료 견적이 안 나올겁니다. 되기만 한다면야 하정우가 최고겠지만 말입니다.
용하 역은 비교적 폭이 넓습니다. 박용우 차태현에서 강지환까지 연출자의 스타일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의 용하와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젊은 배우 중에는 김동욱이나 이규한 같은 스타일도 이런 연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성균관' 드라마도 언제쯤에나 보게 될지 궁금합니다. 기다리기 지루한 분들은 '규장각'을 보시면서 시간을 보내셔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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