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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말 당신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 스스로를 속인 적이 없습니까?
국내에도 상륙한 김구라의 '모멘트 오브 트루스(Moment of Truth)'라는 프로그램은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미국 폭스TV에서 방송됐던 이 쇼는 현재 국내 케이블 채널 QTV에서 방송중입니다. 일반적으로 막연히 '거짓말 탐지기를 이용한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식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보니 위력이 만만찮더군요.
물론 그동안 국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가끔씩 거짓말 탐지기가 소품으로 등장한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 짜고 치는 고스톱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반 장난이었죠. 그러나 일반인들이 등장하는 '모멘트 오브 트루스'는 좀 섬칫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썼던 글입니다.
<<한 20년 전쯤 그룹 서바이버가 부른 ‘모멘트 오브 트루스’(Moment of truth, 이하 MOT)란 노래가 히트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는 <베스트 키드>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영화 <카라테 키드>의 주제곡이었다. 이 ‘MOT’라는 제목을 다시 듣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이번엔 방송 프로그램의 제목이다. 케이블 채널 QTV에서 최근 방송을 시작한는 지난해 1월 미국에서 첫 시즌이 방송된 뒤 국내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꽤 소문이 돌았다. ‘독하디독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진행 방식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출연자는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전 거짓말 탐지기를 몸에 부착하고 ‘예/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50여 개의 질문에 답한다. 제작진은 그 중 스물한 개의 독한 질문을 골라 스튜디오에서 출연자에게 다시 묻는다. 스물한 개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모두 거짓말 탐지기에 의해 사실로 판정되면 1억 원(미국의 경우 50만 달러)을 손에 쥘 수 있다.
‘거짓말만 안 하면 1억 원을 줄게’라는 것은 상대가 어린이라면 ‘자, 1억 원 줄게, 가져’와 같은 의미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출연자들은 모두 성인이고, 제작진은 자선 단체가 아니다. 스튜디오에는 이 질문과 직접 관련이 있는 친구, 부모, 애인, 아내 등이 나와 있어 출연자를 난처하게 한다. 남편이 눈을 빤히 쳐다보는 가운데 “남편이 내 몸을 만지는 게 싫어 자는 척한 적이 있다”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것이다.
MOT, 즉 ‘진실의 순간’이라는 말은 ‘El Momento de la Verdad’라는 스페인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본뜻은 ‘투우사가 지친 소의 숨통을 끊기 위해 장검을 찔러 넣는 순간’을 말한다. 사실 사람들은 문제의 순간이 닥치기 전까지 사실이란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잔혹한 것인지를 잊곤 한다.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나 자신을 속일 수 없는’ 순간에 영원한 사랑의 꿈을 깨버리고, 믿었던 사람의 가슴에 비수를 박곤 한다. 이 프로그램의 선정성은 미국에서도 당연히 도마에 올랐지만, 사람들은 때로 가정 파탄이나 인간관계 단절의 위기를 무릅쓰면서도 출연 신청에 줄을 이었다.
자신은 정말 솔직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거짓말 탐지기라는 문명의 이기를 불신한 걸까. 한국에서 방송된 첫 회를 보고 나서,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공포는 사생활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질문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남자 출연자는 여자친구가 바라보는 앞에서 ‘돈 때문에 여자와 성행위를 한 적이 있느냐’ 는 질문에도 ‘그렇다’라는 솔직한 대답을 해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그는 너무도 간단해 보이는 질문 앞에서 무너졌다. 바로 ‘당신은 믿을 만한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이었다.
문명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상대방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나의 말을 신뢰할 것이라는 전제를 안고 살아간다. 저 질문은 “남에게 ‘내 말을 믿으라’고 말하는 당신은, 정작 당신 자신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의미다. 그는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했지만 거짓말 탐지기는 이 대답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정했다. 기계의 판정을 신뢰한다면 출연자는 거짓말을 한 것이거나, 그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오래전 심리학개론 시간에 들은 ‘일곱 개의 베일’ 이론이 떠올랐다. 사람은 평소 일곱 개의 베일로 자신의 본모습을 가리고 있으며, 가까운 사람일수록 베일을 하나씩 벗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혼자가 되었을 때에도 베일 한 장은 남아 있다. 마지막 베일은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벗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에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멘트 오브 트루스'는 이런 두려움을 되살아나게 했다. 이건 오락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내겐 어지간한 납량 특집보다 훨씬 소름이 끼쳤다. (끝)>>
미국 방송때도 화제가 됐던 인물의 출연 모습입니다. 로렌 클러리(lauren cleri)라는 여성이 출연했고 친정 부모와 남편이 나와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건 그 에피소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등장해서 "너는 남편이 아니라 나와 결혼했어야 했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는 남자는 로렌 클러리의 옛날 애인입니다. 말하자면 특별출연이죠. 로렌의 대답은 YES. 판정은 TRUTH. 이렇게 해서 로렌은 10만 달러를 확보합니다.
3개의 질문을 더 거치면 20만 달러를 받을 수 있는 상태. 이어지는 질문은 "남편과 결혼한 뒤 다른 남자와 성적인 관계를 가진 적이 있느냐"는 겁니다. 역시 대답은 YES, 판정도 TRUTH.
하지만 그 다음 질문은 생뚱맞게도 "당신은 좋은 사람(GOOD PERSON)입니까?"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로렌은 YES라고 대답하지만 판정은 FALSE입니다. 사회자는 "마음 속 어느 한 곳에서는 너도 너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냉정하게 말합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거짓말 탐지기를 그렇게 신뢰할 수 있을까?'하는 거였습니다. 실제로 했던 일에 대한 질문, 즉 '당신은 빵을 훔친 적이 있습니까?' 와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실과 거짓을 가리는 게 상대적으로 쉽다고 할 수 있겠지만 '당신은 여자친구의 용모를 다른 여자와 비교해 본 적이 있습니까?'와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의 사실과 거짓을 가리는 건 꽤 어려운 일일텐데 말입니다.
제작진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거짓말 탐지기는 각 질문에 대한 응답자의 대답이 '사실일 확률'을 결과로 내놓는다는 것이죠. 방송에 쓸 때 '사실일 확률' 혹은 '거짓일 확률'이 55%나 60%(즉 거짓말 탐지기의 판단이 틀릴 확률도 40-45%가 된다는 얘기죠)인 질문은 아예 방송에서 제외한다고 합니다. 최소한 80% 이상의 확실한 판정이 내려지는 질문만을 방송에서 이용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출연자의 인권에 대해서 제작진이 하는 대답은 "출연자는 언제든지 도전을 멈출 수 있다. 또 질문이 위험하다 싶을 때에는 참관인(가족이나 친구)도 1회에 한해 질문에 대한 응답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출연자가 자진해서 출연한 방송인 만큼 그 이상의 조치는 오히려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그까짓거 사실대로만 대답하면 되는게 뭐가 어렵냐"고 합니다. 하지만 3회까지 나간 이 프로그램을 보면 그 "사실대로만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라면 여기 도전하실 수 있겠습니까. 저는 죽었다 깨나도 못할 것 같습니다. ^^
국내에도 상륙한 김구라의 '모멘트 오브 트루스(Moment of Truth)'라는 프로그램은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미국 폭스TV에서 방송됐던 이 쇼는 현재 국내 케이블 채널 QTV에서 방송중입니다. 일반적으로 막연히 '거짓말 탐지기를 이용한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식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보니 위력이 만만찮더군요.
물론 그동안 국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가끔씩 거짓말 탐지기가 소품으로 등장한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 짜고 치는 고스톱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반 장난이었죠. 그러나 일반인들이 등장하는 '모멘트 오브 트루스'는 좀 섬칫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썼던 글입니다.
<<한 20년 전쯤 그룹 서바이버가 부른 ‘모멘트 오브 트루스’(Moment of truth, 이하 MOT)란 노래가 히트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는 <베스트 키드>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영화 <카라테 키드>의 주제곡이었다. 이 ‘MOT’라는 제목을 다시 듣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이번엔 방송 프로그램의 제목이다. 케이블 채널 QTV에서 최근 방송을 시작한
진행 방식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출연자는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전 거짓말 탐지기를 몸에 부착하고 ‘예/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50여 개의 질문에 답한다. 제작진은 그 중 스물한 개의 독한 질문을 골라 스튜디오에서 출연자에게 다시 묻는다. 스물한 개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모두 거짓말 탐지기에 의해 사실로 판정되면 1억 원(미국의 경우 50만 달러)을 손에 쥘 수 있다.
‘거짓말만 안 하면 1억 원을 줄게’라는 것은 상대가 어린이라면 ‘자, 1억 원 줄게, 가져’와 같은 의미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출연자들은 모두 성인이고, 제작진은 자선 단체가 아니다. 스튜디오에는 이 질문과 직접 관련이 있는 친구, 부모, 애인, 아내 등이 나와 있어 출연자를 난처하게 한다. 남편이 눈을 빤히 쳐다보는 가운데 “남편이 내 몸을 만지는 게 싫어 자는 척한 적이 있다”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것이다.
MOT, 즉 ‘진실의 순간’이라는 말은 ‘El Momento de la Verdad’라는 스페인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본뜻은 ‘투우사가 지친 소의 숨통을 끊기 위해 장검을 찔러 넣는 순간’을 말한다. 사실 사람들은 문제의 순간이 닥치기 전까지 사실이란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잔혹한 것인지를 잊곤 한다.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나 자신을 속일 수 없는’ 순간에 영원한 사랑의 꿈을 깨버리고, 믿었던 사람의 가슴에 비수를 박곤 한다. 이 프로그램의 선정성은 미국에서도 당연히 도마에 올랐지만, 사람들은 때로 가정 파탄이나 인간관계 단절의 위기를 무릅쓰면서도 출연 신청에 줄을 이었다.
자신은 정말 솔직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거짓말 탐지기라는 문명의 이기를 불신한 걸까. 한국에서 방송된 첫 회를 보고 나서,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공포는 사생활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질문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남자 출연자는 여자친구가 바라보는 앞에서 ‘돈 때문에 여자와 성행위를 한 적이 있느냐’ 는 질문에도 ‘그렇다’라는 솔직한 대답을 해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그는 너무도 간단해 보이는 질문 앞에서 무너졌다. 바로 ‘당신은 믿을 만한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이었다.
문명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상대방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나의 말을 신뢰할 것이라는 전제를 안고 살아간다. 저 질문은 “남에게 ‘내 말을 믿으라’고 말하는 당신은, 정작 당신 자신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의미다. 그는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했지만 거짓말 탐지기는 이 대답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정했다. 기계의 판정을 신뢰한다면 출연자는 거짓말을 한 것이거나, 그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오래전 심리학개론 시간에 들은 ‘일곱 개의 베일’ 이론이 떠올랐다. 사람은 평소 일곱 개의 베일로 자신의 본모습을 가리고 있으며, 가까운 사람일수록 베일을 하나씩 벗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혼자가 되었을 때에도 베일 한 장은 남아 있다. 마지막 베일은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벗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에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멘트 오브 트루스'
미국 방송때도 화제가 됐던 인물의 출연 모습입니다. 로렌 클러리(lauren cleri)라는 여성이 출연했고 친정 부모와 남편이 나와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건 그 에피소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등장해서 "너는 남편이 아니라 나와 결혼했어야 했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는 남자는 로렌 클러리의 옛날 애인입니다. 말하자면 특별출연이죠. 로렌의 대답은 YES. 판정은 TRUTH. 이렇게 해서 로렌은 10만 달러를 확보합니다.
3개의 질문을 더 거치면 20만 달러를 받을 수 있는 상태. 이어지는 질문은 "남편과 결혼한 뒤 다른 남자와 성적인 관계를 가진 적이 있느냐"는 겁니다. 역시 대답은 YES, 판정도 TRUTH.
하지만 그 다음 질문은 생뚱맞게도 "당신은 좋은 사람(GOOD PERSON)입니까?"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로렌은 YES라고 대답하지만 판정은 FALSE입니다. 사회자는 "마음 속 어느 한 곳에서는 너도 너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냉정하게 말합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거짓말 탐지기를 그렇게 신뢰할 수 있을까?'하는 거였습니다. 실제로 했던 일에 대한 질문, 즉 '당신은 빵을 훔친 적이 있습니까?' 와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실과 거짓을 가리는 게 상대적으로 쉽다고 할 수 있겠지만 '당신은 여자친구의 용모를 다른 여자와 비교해 본 적이 있습니까?'와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의 사실과 거짓을 가리는 건 꽤 어려운 일일텐데 말입니다.
제작진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거짓말 탐지기는 각 질문에 대한 응답자의 대답이 '사실일 확률'을 결과로 내놓는다는 것이죠. 방송에 쓸 때 '사실일 확률' 혹은 '거짓일 확률'이 55%나 60%(즉 거짓말 탐지기의 판단이 틀릴 확률도 40-45%가 된다는 얘기죠)인 질문은 아예 방송에서 제외한다고 합니다. 최소한 80% 이상의 확실한 판정이 내려지는 질문만을 방송에서 이용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출연자의 인권에 대해서 제작진이 하는 대답은 "출연자는 언제든지 도전을 멈출 수 있다. 또 질문이 위험하다 싶을 때에는 참관인(가족이나 친구)도 1회에 한해 질문에 대한 응답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출연자가 자진해서 출연한 방송인 만큼 그 이상의 조치는 오히려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그까짓거 사실대로만 대답하면 되는게 뭐가 어렵냐"고 합니다. 하지만 3회까지 나간 이 프로그램을 보면 그 "사실대로만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라면 여기 도전하실 수 있겠습니까. 저는 죽었다 깨나도 못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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